그래야 네가 똑바로 자라거든
사랑이 채찍질이 되어버리는 불상사
어떤 내담자들은 과도한 보호와 사랑을 받아, 정말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부모님들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이는 타고난 얼굴이 정말 예뻐.
이렇게 예쁜 얼굴, 살만 빼면 완전 연예인이 될텐데"
"살만 빼면 더더 예뻐질거야. 나가서 운동하자!"
그렇게 어릴 때부터 끌려다니면서 하기 싫은 운동을 억지로 하고,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엄마아빠에게 '더' 사랑받으려면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부모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시니까,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고 뚱뚱해지면 나쁜 아이니까. 진짜 내가 원해서 하는 다이어트가 아니다. 그 속에 자기자신은 없다. 목표도 목적도, 계획조차도 내가 자의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억지로 참다보면 터진다.
지독하게 미워하는 그 놈을 닮은 자식
어떤 내담자들은 반대다. 부모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을 너무 닮아서인지, 혹은 내가 싫어하는 가족 중 누군가를 닮아서인지 대놓고 아이를 미워한다. 공부를 잘 하면 잘난 척 한다고 싫어하고, 못하면 멍청하다고 미워한다. 자기 감정이 좋지 않을 때 이유없이 화를 내고 때리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아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으니 혼자서 다 해내야지.
공부도, 일도, 몸도 다 완벽하게 만들어야만 해. 이겨야해"
그렇게 끝도 없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계속된다. 이 혹독한 세상에게 인정받으려면 완벽해야 하니까. 부모에게는 예쁨도 사랑도 관심도 받지 못했지만, 완벽한 몸매와 완벽한 능력을 갖추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전에는 결코 사랑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는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으리라고 믿기에 영원히 다이어트와 자기관리를 한다. 아무리 해도 만족스럽지 않고, 아무리 해도 나를 충만하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더 굶고, 더 운동하고, 더더 혹독하게 나를 밀어붙인다.
그러다가 먹지 않음을 지속하는 경우도 많다. 먹지 않으면 평생 받아보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게 남자친구이건, 친구이건, 가족이건 상관없다. 평생 미움만 받았는데 안 먹고 말라가면 모두들 걱정한다. 그 걱정어린 관심이 얼마나 달콤하고 얼마나 따뜻한지... 절식과 거식은 오랜 기간 유지되다보면 결국 폭식으로 터지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다르지만 다다르는 곳은 똑같다.
잘해주고 칭찬하면 거들먹거리거든
나는 또 다른 케이스였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본인들이 사랑받고 자라본 적이 없어서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몰랐고, 자신의 정서가 불안정해 스스로의 감정을 케어하는 것도 벅찬 분들이었다. 사랑받아본 적이 없으니 자존감이 높지도 않았고, 스스로에게도 혹독한 기준을 적용했다. 그러니 자식들에게도 그 높은 잣대를 들이대며 항상 채찍질했다. 칭찬도, 스킨쉽도, 애정표현도 할 줄 몰랐고, 잘해도 더 잘하라는 채찍만 휘둘렀다. 채찍은 부모님에게 사랑의 표현이었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잘한다 잘한다하면 진짜 잘하는 줄 알고 노력 안 해"
말을 안 들으면 맞아야 말귀가 통한다며 매를 들었고, 매를 들기 시작하자 자신의 감정에 폭발해 발로 밟거나 따귀를 때렸다. 아이였던 나는 점점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되어갔다. 내가 풀죽어 있으면 어둡다고 짜증냈고, 신나하면 까분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정작 엄마는 스스로 양육을 잘하고 있다고 항상 이야기했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던 셈이다. 나는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잘못된 일들은 다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 아파도 참고, 힘들어도 말하지 않았다. 섭식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습관이 있다.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힘들거나 아픈 것을 속으로 밀어넣고 참는다.
참는 것. 그것은 단순히 아픔이나 학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전반에 '참는 행위'가 녹아든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일이다. 나는 작은 베란다가 딸린 반평짜리 방을 혼자 썼는데 그 방에 보일러 설정이 잘못되어 있던 것을 모르고 약 4년 동안 한 겨울에도 보일러가 들지 않는 방에서 잠을 잤다. 베란다에는 쌀이 푸대로 보관되어 있어 여름에는 쌀벌레가 날아들고, 겨울에는 찬 바람이 들었다. 늘 골골대며 아팠던 것이 춥게 잠들어서였는지, 그 때는 아이였으니 몰랐다. 엄마는 아직도 그 때 일을 이야기하며 '왜 춥다고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단순하게 대답할 수 없는 이야기니 그냥 웃고 넘어간다. 어떤 통증이나 불편함도 어차피 다 같은 것이었으므로, 참고 또 참는 것만이 아이였던 내가 삶을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성인이 되어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이러한 억누름의 양육방식이 잘못되었었다는 것을 알아갔다. 그리고 당시 부모님의 환경이 어려워서, 당신들의 정서가 불안정하고 경제적 여건과 우울증과 여러 정신적인 문제들이 결합되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계속된 의문점이 있었다.
부모님은 어떻게 저렇게 자신있게 스스로의 양육방식이 옳다고 믿어왔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나에게 지나치게 동일시를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얼마전까지만해도 '네가 곧 나잖아', '우린 한 영혼이나 마찬가지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까무러칠 노릇이었다. 아직도 자식과의 정서적 분리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한만큼 나를 사랑했고,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만큼, 자기 자신의 단점을 싫어하는 만큼 나를 싫어했다.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거나 기분이 나쁘면 동일시하는 대상인 나에게 원인을 돌렸고, '네가 태어나서 내가 이렇게 불행한 인생을 살아,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이라는 메세지를 계속해서 보냈다. 사실은 '나 자신(엄마)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불행하고 힘들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스스로를 채찍질 하듯이 자식도 채찍질했고, 그러면서도 잘 자라기를, 크게 되기를 바랬다.
가장 혼란스러운 케이스이다. 사랑받는 것 같기도 한데, 미움받는 것 같기도 하고, 마구잡이로 신체적 훈육을 하는데 현명한 양육을 하고 있다고 계속해서 듣는다. 어떤 기준에 맞추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양육방식은 올바르다고 하니 내가 나쁜 아이인 것 같다. 정서적 유형에서 회피형이 되기 쉽다. 이도 저도 잘 모르겠으니 그냥 도망치는 것이 편한 것이다.
엄마의 기준에 맞추려면 원래 타고나길 튼튼한 하체도 하늘하늘 가녀려져야 하고, 양은 조금 먹어도 잘 먹어야 했고, 무엇보다 아프지 말아야 했다. 이 혼란스러운 기준을 나도 모르게 내면화해 내 타고난 식탐과 체형을 부정하니 내 모든 삶의 기준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그래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 먹는 것은 삶의 가장 기본이 된다. 먹는 것에 대한 욕심과 호기심부터 꾹꾹 눌러버리고 부정하면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삶 전반의 '나'를 탐색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억누르고 억압하던 버릇은 여전히 그대로
나는 이십대를 지나면서, 폭식증과 함께 진짜 사춘기가 온 것 같다. 사춘기란, 부모로부터 정서적인 독립을 하고 '나'만의 자아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때까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랐다. 식탐을 누르듯, 내 넘쳐나는 호기심과 활동력과 감정과 그 모든 것들을 꾹꾹 눌러 억압해왔으니까. 그게 말 잘듣고 착한 아이였으니까.
이십대가 되었다고 갑자기 억눌러오던 것들을 펼치고 다닐 수는 없다. 여전히 살아오던 버릇대로 억누른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디면서 온갖 스트레스와 새로운 관계들, 새로운 어려움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모르는 상태다. 엄마에게 사랑받는 기준도, 방법도 모르는데 세상이 원하는 것을 대체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른다. 정말 아는 게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나를 찾아가야 할까.
엄마 말 잘 듣는 아이는 내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기만하다가, 갑자기 세상에 홀로 내던져져서 내가 원하는 인생과 일과 사랑을 찾아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편안해 하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도 모른 채. 대학 친구들은 이미 자신만의 가치기준이 명확했고, 어느 회사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떤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지까지 다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나는 더욱 더 혼란스러웠고, 나만 멍청하고 뒤떨어진 것 같았다. 내가 아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 뿐이었다. 먹고 입고 자는 것.
내 욕구를 인지하는 일은 그 중에서도 가장 억압받았던 먹는 일부터 일어났다. 사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금지되었던 것들을 먼저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반항심 가득한 ‘사춘기’였다.
착하지 않은 아이는 '먹지 말라'고 했던 것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