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도 고생, 못해도 고생
같이 고생할까 혼자 고생할까
삶이 '당장의 만족감'에는 이르지 못할지언정, 나의 삶을 성장시켜 온 것은 결혼이었다.
섭식문제는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긴다. 무엇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지, 내 정체성이 몸매인지 지식인지 성취인지 모르는 말랑말랑한 마음을 단단하게 굳혀가는 과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자면 '마음고생'이 필요하다. 가슴 아파보고, 상처도 받아보고, 누군가를 위해 온전히 희생도 해보아야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나'의 정체성이 생긴다.
섭식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낮고, 자신의 아픔은 속으로 삼키고 감정은 먹는 것으로 덮어버린다. 그래서 사실 누군가가 필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고통을 객관화하고, 나서서 해결해보려는 의지가 생기게 된다. 그게 나 자신의 일이라면 또 꾸역꾸역 혼자 참아낼테니까.
가족이 죽을 병에 걸리면 건강이 가장 중요해지고, 가난해서 아이에게 좋은 옷 한 벌 사주기 어렵다면 돈이 중요해지며, 이 과정에서 나만의 가치가 생겨난다.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심리상담의 과정과 똑같다.
심리상담에서는 상담환경에서 상담사 혹은 집단원과 부딪히고,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 유지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한다. 심리상담이라고 하면 마치 따뜻한 엄마가 늘 위로만 해주는 환경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프고 회복하는 관계적 과정을 안전한 환경에서 연습하는 것 뿐이다.
마찬가지로, 가족이라는 안전한 관계 속에서 피터지게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안도하면서 단단한 관계, 단단한 자아를 만들어간다. 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단단하고 완전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개념을 가지고, 그 자체로도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 완성되지 않은 자아개념이 섭식문제의 본질이고, 결국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남편이 안전한 관계라고?
상담에서 자아를 키워가듯, 가족 내에서 자아를 단단히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안 그래도 낮은 자존감에, 그 누구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은 이 세상에, '남편이 안전한 관계야?'라고 반문할 수 있다.
요즘은 실제로 이상한 사람도, 무서운 사람도 많고, 헤어지는 것이 나은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신중하게 잘 골라야 한다.
얼마나 많이 가졌나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생활에서 반드시 닥칠 수많은 문제들을 나와 함께 해결해 볼 만한 의지가 있는 사람인가다.
사실 남편보다도, 결혼에서 안전한 울타리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욕심도, 악의도 없다. 그저 엄마의 관심만이 유일한 소망이다. 지독하게 고립된 결혼생활에서 아이들은 내게 잠시나마 반짝이며 행복감을 주었다. 내가 지켜내야 했고, 결혼관계 유지의 목적은 아이들이었다.
사회에 나가 경쟁적이고 평가적인 눈초리들에 맞서 단단한 척 버텨내다가, 집에 돌아가 한없이 나만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을 만나면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더 많은 성취는 했을지언정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었겠지, 매일 생각한다.
그러니 혼자 밖에 나가 관계연습을, 문제해결을 하는 것보다는, 가족이라는 집단 내에서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며 내 자아를 공고히 만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렇게 치고받고 투닥거리며 살다보니 어느 새 아이가 자라 조잘조잘 대화 나눌 수 있고, 철학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라는 자아가 단단하게 굳어진 만큼 나를 꼭 닮은 또 하나의 자아가 곁에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남는 것은 결국 가족
이 글을 쓰고 있던 며칠 간, 심각한 어지럼증에 걷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가 되어 병원을 찾았다.
2-3년 전 이석증을 진단받았던 터라 이석증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열심히 검사해보더니 이석증은 아니라며, 하지만 자기네들도 뭔지 모르겠다며 혈관확장제와 안정제를 처방해주었다.
어쨌든 혈행의 문제이니 혈관확장제를 쓰고, 어지러움과 구역감이 동반되므로 구역질을 가라앉히기 위해 안정제를 써보자는 것이었다.
약은 먹지 않고 바로 한의사를 찾았더니 목 뒤쪽의 혈관이 짓눌려서 꽉 막혀있다고 했다. 뒷목에 침을 맞았더니 체한 속이 확 뚫리는 것처럼 뻥 뚫리는 느낌이 나면서, 일부는 혈관이 터져서 피가 줄줄 흘러 등을 덮었다. 피가 흐르지 못하고 꽉 막혀있다가 건드리니 혈관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대로 혈관이 막힌 채 안정제만 계속 먹었더라면 점점 뇌에 혈액과 산소공급이 감소되어 뇌졸증이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지럼증은 바로 사라졌다. (참고로,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도 컴퓨터와 책을 하루종일 보니 거북목이 심하고, 목관리는 따로 하지 않아서 생긴 병이다. 애초에 체질적, 유전적으로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하지정맥도 있다)
이쯤 되자 처음에는 그냥 이대로 편안히 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프고 지치고 힘든 삶에서, 암처럼 많이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떠날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았다.
그리고 어지럼증은 없어졌지만 잔여 후유증으로 하루 이틀 더 아프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루종일 구토하고 괴로운 상태가 되자 좀 억울해졌다.
나는 손을 잡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아이들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투닥거리기보다 손 한 번 더 잡아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살아야겠다고 외쳤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기도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한다. 하늘에 계신 분들에게 '알았으니까 그냥 살아볼게요. 그동안 고생한 게 억울해서라도 살아야겠어요. 남은 날들 동안은 좀 덜 아프고 더 많이 껴안고 살아봐야겠어요'라고 외쳤다.
그랬더니 갑자기 하루 만에 증상이 사라졌다. (물론 체력적으로는 회복이 안되었다. 계단 한 층 올라가서 눈을 감고 일분은 있어야 한다)
무슨 중장년층의 일기같지만, 아기는 아직 세 돌이고 근력운동에 집착하는 마흔 하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일찍이 죽음을 생각해 보았을 때, 결국 마지막을 함께 해 주고 손 잡아주고 편안히 떠나게 해 주는 것은 내 고생의 결과물들(자식놈들과 남편놈)이다.
그냥 고생 안하고 싶어
사는 것은 이러나 저러나 힘들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 힘들다. 다 큰 남편을 키우는 것은, 좋은 아빠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어려워서 자꾸 공부하고, 나의 내면을 돌아보며, 경제적으로도 능력을 키우려고 애를 써야만 단단한 내가 만들어진다. 방탈출 미션에서 갇혀야 머리를 쓰듯이, 문제가 닥쳐야 급해서 뭐라도 한다. 도망만 쳐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사서 고생을 해야만, 싸우고 이겨내야만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삶의 여러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아이가 죽고 사는 문제에 닥쳤는데 내 다이어트와 내 몸매나 내가 먹고 싶은 디저트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눈 앞에서 아이의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있고 하루 한시간도 잘 수 없는데 내 몸무게 신경 쓸 겨를이 어디있겠는가. 과자, 빵, 치킨, 먹을까 말까 사올까 말까 먹고 토할까 말까 고민할 사치따위는 없다.
섭식문제는 일종의 성장통이다. 지금은 섭식문제가 인생의 전부같지만, 이것이 나를 잠식해 잡아먹어버릴 것 같지만, 그 너머에는 더 거대한 문제들이 자리잡고 있고 그것들을 겪고나면 섭식문제는 어린 시절의 성장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그 성장통이 온갖 오염된 식품들로 인해 더 벗어나기 어려운 심각한 병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이기에 전문적인 치료가 존재하는 것이다.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제대로 된 교육만 제공된다면 깊어지기 전에 벗어날 수 있다.
혹시 30대 이후에도 아직도 섭식문제가 남아있다면, 안정적인 결혼생활에도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것은 행동관리만 해주어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다. 이 경우는 식사패턴의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