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하면 스트레스 없을까?
이런 저런 직업 다 해본 것으로 치자면 고민베어만한 사람도 없다. 심리치료도 했고, 연구실에도 있었고, 잡지기자, 리서치 회사, 꽃집 운영, 카페 운영, 공연기획, F&B 커머스, 식당알바, 카페알바, 학원강사, 문화센터강사, 일반/고액 과외, 심지어 노점까지 하기 싫은 일도 해보고 하고 싶은 일도 다 해봤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했냐 묻는다면 '아니올시다' 이다. 스트레스는 주업무 외의 외부적인 요소들에서 오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자고로 사직서를 품에 넣고 회사를 다닌다고 했다. 꿈꿨던 일이었을지라도 막상 입사하거나 시작하면 고난의 연속이다. 돈이 엮여있으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인과관계다.
혼자 브런치에 끄적끄적 쓰는 것은 배설하는 행복감이 넘치지만, 책이나 기사를 요청받으면 그렇게 하기가 싫고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카페창업을 꿈꾸지만, 카페 컨설팅을 해보면 결론은 모두에게 다 똑같다. 우아하고 평온해보이는 카페운영은 사실은 자영업 지옥 불구덩이일 뿐이다.
그러니까, 행복한 직업이라는 것은 사실 없다. 뭘 하든 자의냐 타의냐, 평가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이슈일 뿐이다. 무슨 일을 해도 결과적으로 돈을 번다면 스트레스는 필수다.
폭식말고 엄청난 대안들이 생겨야 스트레스 해결하며 살 수 있는거죠?
며칠 전 한 내담자가 질문을 해왔다. 섭식장애가 나으면서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푸는 대안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냐고. 대체 그 대안들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런 건 없다.
많은 일을 겪고 성장할수록 내가 만들어내는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는 것일 뿐.
물론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푸는 대안들은 많다. 뻔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정신건강을 진정으로 다스려주지는 못한다. 진짜 정답은, 같은 사건에 대해 그것을 얼마나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느냐는 내 마음의 방향이다.
스트레스는 기대와 욕심에서 나온다. 갖고 싶은 것을 못가짐으로써, 하고 싶은 것을 못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칭찬해주고 인정해줄 것이라는 기대, 남친이, 남편이 하루도 빠짐없이 내 얼굴만 들여다보고 예뻐해줄 것이라는 기대, 내 앞날에 행복만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심, 더 좋은 집을, 차를, 날씬한 몸을 갖고 싶은 욕심.
기대와 욕심의 중용이 곧 건강함의 시작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점을 보탠다면, 내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들을 찾아내어 그 요인이 가장 최소화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끊임없이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피상적인 대화를 하고, 또한 그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매우 힘든 사람이었다. 상사에게 평가받으면서 내 가치기준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 또한 지독하게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카페나 꽃집처럼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고가는 직업을 내려놓았고, 회사에 소속되기보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하냐면
하지만 우리가 도인도, 종교인도 아니고 아무런 목표없이, 기대없이 살아가기는 불가능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선택과 집중이다. 돈도 많고 놀 시간도 많고 외모도 예쁘고 건강하고 사랑도 받고 인정도 받고 지적이고 우아하고 이 모든 것들을 다 한 번에 가지려고 하기보다, 이 중에 내가 목표로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분명한 목표가 나에게 성취와 안정과 건강을 가져다주고, 그 목표를 향해 오래오래 달려가다보면 돈과 인정도 따라오게 된다.
얼마 전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구혜선이 나온 것을 보았다. 예쁜 얼굴에 늘 칭찬과 사랑만 듬뿍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배우생활을 하면서 연기를 못한다는 것으로 엄청난 욕을 먹었다.
그러니 구혜선은 혼란스러워진다. 배우가 내 길이 아닌가? 다른 걸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건가?
댓글 중에 하나라도 칭찬이 있었던 것들을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려보고, 글도 써보고, 영화제작도 해보고, 뭘 해도 칭찬은 돌아오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기 어려워지자 강아지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에게라도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전문적이고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지 않아도 되는 학생이 되었다. 나이 마흔에. 못해도 크게 비판받지 않는, 결과로 인해 욕먹지 않는 학생의 자리가 가장 편안했으리라.
오은영 박사님은 '아직 데뷔 때의 그 나이에 머물러있는 것 같다'며 조언한다. 하고자 하는 일의 폭을 좁히라고. 마흔 정도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정립해야 하는 나이라고 못을 박는다.
온갖 것들을 쥐어들고 다 잘하려고 들면 다 엉망진창이 되기 마련이다.
옛날 직장인들은 다 과로했다. 그게 국룰이었다.
몸이 망가져야 회사를 위해 충성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야 이기적이지 않았다. 그래야 승진할 수 있었다. 오래오래 회사에서 버티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래 버텨봐야 50을 넘기지 못한다. 120세 시대에 인생의 반까지도 못 채우고 나올 회사에다가 몸을 바치지 말자. 내가 병들어 일할 수 없을 때 회사는 나를 가차없이 버린다. 그것이 시장의 규칙이다.
자영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아프지 않을 만큼의 노동 (하루 9시간)을 할 때, 규모가 커도, 사람을 많이 써도, 매출이 높아도 결국 사장의 순이익은 평균 300만원에서 400만원이다. 수없이 많은 자영업자들을 만나보았고, 관찰해본 결과다. 돈이 아쉬워서 좀 더 일하면 순이익이 좀 더 늘어날지언정 병원비도 함께 늘어나 결국 제로가 된다.
과로해서 몸이 피곤해지면 마음도 어려워진다. 작은 일에도 분노가 생기고 억울하다. 나만 먹고 싶은 것 못 먹는 것 같다. 스스로 신체적인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프게 되고, 그래서 돈 잘 벌고 있던 직업을 그만뒀다고 하니 사람들이 기겁을 한다. 아니 아무리 아파도 먹고 살려면 하던 일은 계속해야 하지 않느냐고.
돈이 나오는 직업, 버리기 아쉬운 관계, 내가 오랜 시간 터 닦아놓은 환경, 이 모든 것들을 내 정신건강을 위해 정리할 줄 아는 대담함도 필요하다. 아깝다고 계속 쥐고 있으면 더 엉망이 될 뿐이다.
충성할 것은 피상적인 인간관계나 평생 몸과 마음 바친 직장이 아니라 건강이다.
결국 신체적으로 가볍고 건강하면 화도 덜난다. 누가 뭐라고 비난하고 시비를 걸어도 자책이나 분노부터 하기보다 '그 사람'의 정신건강이 위태로워서라거나, 그의 몸이 힘들어서 그런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니 운동하고 배달음식 덜 먹고 유기농 집밥으로 먹어야만 한다.
도파민 세상이다. 핸드폰만 열면 도파민이 분출되는 영상들이 넘쳐나고, 편의점에 가면 달콤하고 맵고 짠 중독음식들이 가득하다.
짜릿한 도파민을 맛보면 스트레스는 반대로 더 강렬하게 고통스럽다. 도파민 자극에 더 자주 노출될수록 인내심도, 차분함도,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정세포들도 다 죽는다.
당장 눈앞의 쾌락보다, 너른 내 인생의 숲을 관망하고 정리할 줄 아는 시선이 필요하고, 또 필요한 시대다.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하며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내 자존감이 단단하고, 욕심과 기대에서 자유롭고, 나의 객관화와 더불어 세상사람들에 대한 객관화가 이루어지면 스트레스는 줄어들게 된다는 정리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 특히 직업이라는 요소는 현명하게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족처럼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니 최대한 영리하게, 행복감을 건질 수 있도록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 방법이야말로 심리학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해 온 분야다.
다음 글에서 행복한 직업을 찾는 법에 대해 이야기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