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결혼
벚꽃은 끝났어. 이제부터 방탈출!
참 뻔한 얘기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아줌마가 되어 아이 교육에 열을 쏟는다.
왠지 이 억척스럽고 똥고집 덩어리일 것 같은 '아줌마'의 라인에 편승하기가 참 싫다. 나도 그랬다. 브런치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서 남 걱정하는 시간들이 우스웠고, 자신의 발전보다는 아이 성적에만 매달리는 모양새들에 비슷해지기 싫었다.
무엇보다 내 심리적인 문제들이 아이에게 전이될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팔자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될리 없다. 휘몰아쳐 사막같던 서른, 마음은 나약하고 돈도 없었던 나는 결혼이라는 그럴 듯해 보이는 길로 덥썩 접어들고 말았다. 그것도 남편을 만난지 4개월만에.
결혼에 대한 환상도, 계획도 없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결혼이라는 것은 그냥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글은 결혼을 권하려는 목적도, 말리려는 목적도 없다. 최악의 상황이 몰아쳐도 내가 선택을 얼마나,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 그래서 그것이 과연 내게 괜찮은 옵션이었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그만큼 내 결혼생활은 최악이었고, 지금도 여의치는 않다. 섭식문제는 10-20대에 주로 발병하지만, 결혼생활이 안정적이지 않은 경우 30-40대에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그러니 결혼이 해결책일 수도 있지만,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창업도, 스타트업도 '수익'이 목적이 아닌 '문제해결'이 진짜 목적이듯이, (문제해결을 잘 하면 돈이 따라온다) 결혼도 결국 매일 문제해결을 하기 위한 방탈출 미션같은 것이다. 굳이 돈 내고 방탈출 게임에 들어가 머리싸매고 고민하듯이, 결혼도 똑같다.
이 미션을 어떻게 해결해왔는지, 내 정신건강과 섭식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읽어내려가면서, 자신도 결혼이라는 것을 해 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이의 선택일 것이다.
"내 친구랑 살아줘서 고마워요"
남편 친구들이 올 때마다 이야기한다.
"재수씨, 우리 **이랑 살아줘서 고마워요"
어제 만난 호통쟁이 스님은 이야기했다.
"소연씨는 정-말 효부야"
카페하던 시절 단골손님들이 말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남편이 잘 하던 일을 그만두게 해요. 쓰러지기 전까지는 버티면서 일을 해야 먹고 살죠"
"무슨 생각으로 미술공부를 시켜줘요? 돈도 안될텐데"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효부도 아니고, 간절히 남편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지도, 희생하고 있지도 않으며, 결정적으로 착하지도 않다. 철저하게 T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고 객관적으로 판단했고, 따라서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문제해결을 해왔고, 그만큼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해결이 안된다면 언제든지 내려놓을 준비도 되어있다.
도대체 어떤 삶이기에 저런 말을 듣느냐고?
결혼 1년만에 남편이 아프기 시작해서 직장을 잃었다. 비슷한 시기, 태어난지 두 달된 아이가 똑같이 아프기 시작해서 투병을 위해 귀촌했다.
몇 년 동안 한 푼도 못벌면서 투병생활을 하다 있던 돈도 다 까먹을 때쯤 남편과 함께 창업을 했고, 겨우 안정될 때쯤인 결혼 10년차에 남편이 다시 아팠다.
하루아침에 사업을 몽땅 접어 10년 전의 귀촌 당시의 무수입 상태로 돌아갔는데, 둘째 아이가 갓 태어난 상태였다. 마흔에 둘째 아이를 낳은 내 몸은 회복이 더뎠고 몸뚱아리는 아직 거대했다. 남편의 투병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어떤 병인가 하면, 아토피다.
수술도 치료도 답이 없는 병이다. 오로지 건강한 생활습관만이 답인 병. 스트레스가 가장 독인 병이자, 우울과 불안이 수반되기 십상인 병.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돌보아줘야 하는 병.
내가 아이 둘과 남편까지, 그들의 몸과 마음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삶. 결혼 후 10년 동안 친구들을 만난 횟수가 손에 꼽고, 아이들은 남편에 대해 '늘 누워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삶.
물론 나의 케이스는 일반적이지는 않다. 결혼생활이 아무리 문제해결의 연속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무일푼으로 오랜 시간을 버텨야할만큼,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될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상황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집단상담을 해봐도, 친구들을 만나봐도 놀라고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휴, 지금도 인생이 미션인데
나 하나 제대로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게 정상이 아닌데 거기다 저런 문제를 더 얹으면 정말이지 초토화가 될 것 같다. 내 인생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의 인생까지 다 망칠 것만 같다. 저 정도는 아니라도 모든 결혼생활은 미션의 연속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덩어리다.
그래서 우리에겐 연애가 있다. 결국 꽃잎은 떨어질지언정 연애할 때는 잠시나마 세상이 달콤하고, 내 남자는 나만 바라본다. 궁극적인 자존감에 영향을 못 미칠지언정 그래도 잠시나마 치유받는다. 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좀 괜찮은 내가 된다. 그 힘으로 시작이 가능하다.
잠시나마 치유받아 내가 그래도 좀 예뻐보이기도 하고, 예쁘게 꾸며보고 화려하게 웨딩드레스도 입어보면서 방탈출 미션으로 입장한다. (그러니 결혼식은 원하는만큼, 연애는 최대한 공주처럼 해보자)
그러니까 왜 그렇게까지 해서 방탈출 미션에 굳이 입장해야 하냐고?
고민베어 너만 고생한 게 억울해서 그러냐고?
대체 왜 굳이 해봐야 하는지, [결혼-답일까 독일까(2)]에서 이어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