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p230)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민음사
1950년대 미국, 그리고 반항아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는 사회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침묵, 복종, 외면… 혹은 저항.
'1920년대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작가도 샐린저만큼 대중적, 비평적 관심을 끌었던 작가는 없었다.(제임스 밀러/시카고대 교수)'
제롬 데이빗 샐린저가 창작한 반항아 홀든 콜필드는 또 다른 의미의 광풍이 되어 미국 사회를 흔들었다. 학교 따위 걷어치우고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며 거칠 것 없는 블랙 유머와 외설적 욕설을 날려대는 소년 홀든 콜필드. 경제적 풍요와 맞바꾼 1950년대 미국의 획일적 문화와 통제의 분위기에 숨 막혀하던 젊은 세대는 홀든 콜필드가 상징하는 자유의 이미지에 열광했다.
홀든 콜필드는 펜시 고등학교의 과장된 거짓광고를 조롱하고, 교장을 비롯하여 나약한 모습으로 잔소리를 해대는 스펜서 선생, 동성애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홀든을 기겁하게 만드는 엔톨리니 선생 등의 모습을 통해 학교와 교사로 대변되는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드러낸다. 경직된 사회 조직에 파문을 일으키는, 순응하지 않는 젊음의 원형에 미국인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낭떠러지 앞의 홀든
소년은 성장한다. 성장에는 수반되는 고통이 있다. 성장통이다. 기성세대의 허위의식에 구토증을 느끼지만, 한 해 동안 키가 17센티미터나 자라는 것을 막을 도리도 없는 것이다. 학교를 벗어나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며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소년이 곧 편입될 어른의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타락과 허위의 세계를 벗어나 소년은 서부로 달아나고 싶어 하지만, 소년에게 성장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홀든은 어린 동생 피비의 학교 벽에 쓰인 외설적인 욕설을 걱정하며 지우려 든다. 하지만 한 개의 욕설을 지워도 또 다른 욕설은 어딘가에 쓰여 있고, 때로 그것은 지울 수 없도록 칼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심지어 박물관의 이집트 미라실에도 적혀있다. 인간의 역사가 이어지는 한 순수성을 파괴하는 모든 것들도 함께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들은 다 지울 수도 없고, 결국 피비와 같은 아이들은 그것을 보게 될 것이며, 아이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아이의 순수성을 지켜주려 낭떠러지 앞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하는 홀든이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회전목마 위의 어린 피비는 결국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기존 체제에 길들여지길 거부하고 어른의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에 서서 순수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길 꿈꾸는 홀든의 불가능한 소망을 드러내는 제목이라 할 것이다.
(*표지 이미지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