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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Feb 03. 2024

전쟁의 시대, 평화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 큰 전쟁이 일어난 이후 평화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이게 대답하기 참 어려운데,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평화운동이 무엇이냐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무엇이 평화인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가령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군대가 군사작전을 펼쳐 이스라엘의 민간인을 인질로 납치한 일이 일어났고, 이스라엘은 보복에 나섰고 보복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시민들을 학살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학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마스의 10월 7일 기습 공격으로 대표되는 군사적 저항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군사적 저항은 옹호하지만 민간인에 대해 군사 작전을 감행한 것을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하마스의 10월 7일 작전은 전쟁범죄지만 1만 5천 명이 넘는 가자지구 시민들이 학살되고 있는 국면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하마스 비판이 아니라 학살 중단이라는 주장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고하고 순수한 민간인이 아니라는 말이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의 공범이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을 애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서는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2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전 되었을 때,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도록 한국 정부를 압박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해서 평화운동 단체들의 입장은 명확했다. 군사적 수단은 평화를 위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 이 의견 차이 때문에 결국 우리는 우크라이나인 커뮤니티와 연결이 끊겼다. 그들도 우리도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는 방식이나, 전쟁의 결과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할 수 없는 입장 차이가 있었다. 이 경우에는 과연 어떤 것이 평화일까?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면 평화일까? 평화는 무엇이고, 평화운동은 과연 무엇일까?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20년째 직업적인 평화활동가로 살고 있지만 막상 전쟁이 일어나고 난 뒤에는 무얼 해야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지, 뾰족한 수를 나는 도통 모르겠다. 전쟁이 일어나고 나면 반전운동은 평화운동만의 몫이 아니게 된다. 전쟁은 너무나도 크고 직접적인 폭력이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재앙이다. 그러다 보니 전쟁이 일어나면 평소 평화운동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참여하지 않던 다른 사회운동뿐만 아니라 평소에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던 시민들도 반전운동에 참여한다. 그러니 전쟁이 일어난 뒤 평화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은 전쟁이 일어난 뒤 시민사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나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평화운동이 스스로 던져야 하는 질문은 "평화운동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로 바꿔야 한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평화운동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 책 <평화는 처음이라>를 쓸 때 내 나름으로 평화의 개념, 평화운동의 개념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실패하기보다는 포기했다고 해야 하는데, 명확한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평화운동에 크게 효과적이거나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술적인 논의나 담론의 장이라면 명확한 언어로 정의를 내려야겠지만, 평화활동가로서 내가 만난 현장에서는 무엇이 평화운동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가령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마음에서 기지반대 운동은 하는데, 국방부가 군기지를 짓는 공사를 막으려면 정말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이때 이 사람들이 평화활동가가 아니면, 혹은 여기에 연대하는 단체들이 평화운동이 아니면 뭐 어떠한가. 그렇다고 기지반대 운동이 평화운동이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평화운동인가'가 아니라, '평화운동은 어떻게 전쟁에 맞서야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떤 운동이나 어떤 단체가 평화운동인지 아닌지를 나는 판단할 수 없고, 재판관처럼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효과적으로 전쟁에 맞서기 위해서 평화운동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생각이고, 마무리된 생각도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생각을 까먹지 않기 위해 기록해 둔다는 생각으로 평화운동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1. 전쟁애 맞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는 캠페인

평화운동은 기본적으로 전쟁에 맞서는 운동이다. 그런데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미 전쟁이 일어나고 난 뒤 그 전쟁을 당장 막는 일은 꼭 평화운동만의 과제가 아니다. 사회운동이라면 전쟁 같은 커다란 재난에 함께 맞서야 한다. 전쟁이 일어난 뒤 전쟁에 맞서는 일은 비단 평화운동만의 과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평화운동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을 예방하고 전쟁에 맞서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게 말로는 쉬운데 좀 어렵다는 느낌도 드는 게, 마치 최고의 명의는 병에 걸리기 전에 환자의 병을 예방하기 때문에 환자가 아픈 줄도 모르고 지나가서 명의인 줄도 모른다는 옛이야기처럼 정말로 성공한 평화운동 캠페인은 미래에 발생할 전쟁을 사전에 막아버리기 때문에 캠페인의 성과가 드라마틱하게 가시화되기 어려운 거 같다. 그렇지만 전쟁이라는 비극은 일단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큰 피해를 동반하고, 한번 시작되고 나면 사회의 군사화가 더욱 강화되어 평화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그러면서 전쟁은 점점 더 크고 길어지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결국 평화운동의 성패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것을 막느냐 막지 못하느냐라고 생각한다. 성공은 보이지 않고, 실패는 너무 크게 보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 비폭력 저항

평화운동은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 평화적 수단으로만 평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평화운동이 캠페인을 하는 방식 또한 군사적인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하게 평화적 수단으로 해야 한다. 물론 군사적 수단은 비교적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는 반면 무엇이 평화적 수단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평화운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리적인 폭력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시인이자 활동가인 오드리 로드는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부술 수 없다고 했다. 폭력은 주인의 도구다. 이 도구로 주인의 집(전쟁)에 맞설 수는 없다. 사회운동 활동가 나오미 울프는 우리의 싸움의 방식은 우리가 만들 세상과 닮아있어야 한다고 했다. 폭력적인 방식으로는 평화를 이룩할 수 없다. 평화를 위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옹호한다면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한 전쟁이라는 헛소리를 문제 삼을 수 없다. (실제로 조지 W 부시는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국의 평화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다고 밝혔다) 폭력적인 방식은 저항세력 안의 군사주의를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3.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 주도해야 한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나 정부의 역할, 외교적인 노력도 무척 중요하다. 그리고 평화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운동은 국가나 정부, 때로는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 압력을 행사에 이들이 국제적인 갈등을 외교적인 방식으로 풀도록 강제해야 할 때도 있다. 평화는 평화운동만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와 국제기구를 압박하고 이들을 활용하는 것이 평화운동의 전술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이 자체가 평화운동은 아니다. 평화운동은 다른 풀뿌리 사회운동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이 주도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전쟁의 책임은 국가나 정부, 기업들에만 있지 않다. 이를 지지하거나 묵인한 시민들에게도 책임이 있으며 바꿔 말하면 전쟁을 막을 힘이 시민들에게 있다는 뜻이다. 평화운동은 전쟁을 막는 시민의 힘을 조직하는 운동이다. 평화운동이라면 전쟁을 막기 위해 시민의 힘을 어떻게 모을고 발산할지를 고민하고 이를 캠페인으로 실현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평화운동의 역할과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뜻이다. 평화운동의 힘은, 풀뿌리 사회운동의 힘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정부를 설득하는 전략을 택할 때조차, 평화운동은 조직된 시민의 힘으로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4. 국경과 국적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위의 이야기와 조금은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평화운동은 국경과 국적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전쟁은 너무나 쉽게 우리의 상상력을 국경선 안에 가둔다.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의 주체는 양쪽 국가가 되고, 시민들은 평소의 다양한 정체성과 위치성을 상실한 채 어느 나라의 국민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평화운동도 그러기 쉽다. 위에서도 언급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하자는 주장을 평화운동이 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전쟁을 멈추는 데 효과적이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국가 단위로 전쟁의 승리를 생각하는 방식이야 말로 국가주의적인 사고이고 그것이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주된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평화운동은 침략자의 패배를 위해, 침략당한 이들의 평화를 위한 운동이어야 하는데 이때 침략 당한 이들은 꼭 국경선을 침범당한 나라의 국민만이 아니다. 군인으로, '위안부'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강제노동으로 전쟁에 동원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은 평화운동에서 무척 중요한 일인데, 우리가 국경과 국적을 토대로 반전운동을 펼친다면 이는 불가능해진다. 이스라엘 정부의 불법 점령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병역거부자들, 가자지구 학살을 비판하는 이스라엘 노동자들, 러시아군 입대를 거부하고 러시아를 탈출한 러시아인 병역거부자 난민들 또한 침략국가의 국민이지만 전쟁으로 희생당하길 강요당하는 처지에 놓인 이들이고 전쟁에 저항하는 저항자들이다. 




이상, 완성된 글이라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하려고 써본 글에 가깝다. 고민을 이어가면서 계속 덧붙이고 수정해야 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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