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Mar 24. 2024

미사일, 핵, 사슴, BTS로 싸우는 평화주의자들

드라마 닭강정 리뷰 

스포일러 잔뜩 있음 주의


수다쟁이인 나는 이병헌 감독이 찍은 '본격수다블록버스터' 드르마 <멜로가 체질>을 재밌게 봤다. 역시 개그는 대사맛이지. 그리고 배우 안재홍을 좋아한다. 뭔가 친근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안재홍만 한 배우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안재홍이 나오고 이병헌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닭강정은 시작하기 전부터 기대작이었다. 남다른 캐릭터가 던지는 넘치는 대사의 맛을 어찌 내가 거부하겠는가. 


원작 웹툰은 보지 못했다. 닭강정으로 변한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와 그 딸을 짝사랑하던 청년의 분투기라는 정보만 가지고 봤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코믹이긴 하지만 찰지고 현실적인 대사가 돋보였던 멜로가 체질과는 다르게 흔히들 말하는 '병맛(장애차별적인 단어라 생각하는데 대체어를 못 찾겠다)' 코드가 개그 포인트였다. 사람의 취향을 심하게 타겠지만, 나는 재밌게 봤다. 이야기가 대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이 난감함이 좋았고, 등장인물들조차도 이야기 속에서 극의 전개에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마저 재미있었다. 아직 원작을 보지 않은 이들은 드라마를 먼저 보는 것이 이 드라마의 난감함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좀 독특한 방식으로 재밌는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드라마가 뒤로 갈수록 감독의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놀랍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평화'였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치고 전쟁을 찬양할 순 없겠지. 아, 물론 북한이나 중국 같은 권위주의적인 국가에서는 최고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전쟁을 찬양하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한다. 아, 물론 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건국전쟁처럼 전쟁광을 미화하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아무튼 어지간한 창작자들은 전쟁을 미화하지 않고 굳이 따지자면 반전의 입장에 가까운 사람이 많겠지만, 전쟁영화도 아닌데(전쟁 영화가 오히려 반전 영화인 경우가 많다) 반전 메시지를 작품의 주요 테마로 삼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코믹 장르 드라마라면, 감독의 메시지가 반전평화일 거라는 걸 누가 생각하겠는가. 반전평화라고 생각하는 건 순전히 내 판단이고, 반전평화가 아니더라도 이 드라마는 사회적인 메시지로 해석될만한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예를 들어 "사고가 났는데 책임자가 먼저 살겠다고 하면 그게 이치에 안 맞잖아!"라고는 백중의 외침과 50년 뒤 세계적인 팝스타 옐로팬츠(고백중)를 보려고 몰려온 팬들이 만들어 내는 노란 물결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세월호가 떠오르는 식이다.   


어디로 튈지 좀처럼 알 수 없던 드라마는 끝나갈 무렵에야 내가 파악한 핵심 메시지, 반전평화를 전달한다. 사람을 닭강정으로 만들어버린 정체불명의 기계를 두고 모든 기계의 사장 최성만(류승룡), 고백중(안재홍)과 정체불명의 기계를 연구하는 괴짜 과학자인 유인원(유승목), 유인원 박사의 조카이고 천재지만 개인사 때문에 삐뚤어진 유태만(정승길, 멜로가체질에서 드라마 본부장역 했던 배우)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기계의 주인이자 이 상황을 중재하고픈 외계인(이자 지구에 오래 살아서 사실상 지구인이기도 한) 백정(김태훈)의 대사는 이 한바탕의 소동과 악다구니를 아주 코믹하면서도 건조하게 바라보게 해 준다. 


"해결방법도 모르면서 전쟁 먼저 합니까? 이게 당신들 방식이오? 이건 너무 무식하잖아. 당신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친구를, 가족을 전쟁터로 내몰고 그 죽음을 피한 자들의 욕심을 채웠어."



백정의 절규에 성만과 백중, 인원과 태만은 서로 민망해하며 눈치를 살핀다. 백정의 말이 틀린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뭇거림도 잠시 결국 넷은 일생일대의 격투(?)에 돌입한다. 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아니,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하고 외계인이 나오는 드라마에 무슨 현실성을 기대하나)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었다. 백정의 말은 너무나 옳지만 지구의 현실과 동떨어진 평화주의자의 말일뿐, 결국 성만과 백중, 인원과 태만은 기계를 두고 전쟁(?)을 벌인다. 나는 전개가 평화주의자들의 절규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전쟁으로 치닫는 현실의 반영처럼 보였다. 어쩌면 우리 평화활동가들의 존재가 외계인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관으로 굴러가니까. 전쟁으로 사람 죽이고 돈 벌어도 괜찮다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이 이 세상에선 다수거나 적어도 이 세계관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니까.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백정 닭강정 4인방이 전쟁(?)을 막기 위해 펼치는 퍼포먼스다. 직접행동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 같고, 한 편의 춤사위로 볼 수도 있을 움직임. 백정의 절규가 먹히지 않자 이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들을 위협한다. 이들은 외계인이지만 지구에선 지구인의 능력을 벗어나는 힘을 발휘해서는 안 되고 만약 그럴 경우 처벌받게 된다. 그래서 위협만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한다.


한 명이 갑자기 팔다리를 흔들더니 폴짝 점프해 착지한 뒤 잘 알아듣기 힘든 뭉개진 발음으로 "미사일"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제일 무서운 건 미사일이야"라고 동료들에게 속으로 말하면서(외계인들은 생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에 다른 사람이 나서면서 입으로는 쿠쿠쿵 소리를 내며 양팔을 벌려 흔들면서 "핵"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료들에게 "구체적으로 해야지"라며, 너무 진지해서 보고 있자면 웃음이 터지는 표정으로 속으로 말한다. 이렇게 공격하기는 너무 힘든 눈망울과 표정을 가진 사슴과 "지구에서는 아무도 못 건드"리는 BTS가 되어 각자의 춤으로 위협한다. 이들의 위협이 현실적으로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공격하지 않으며 위협하는 방식을 보면서 나는 평화활동가들의 비폭력저항을 떠올렸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의 방식(군사화된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싸우고 저항하는 사람들. 그들조차도 그 방식이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전쟁의 방식으로는 전쟁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스쾅스러운 춤 동작으로 포장해 부담스럽거나 손발오그라드는 비장함을 전혀 주지 않는다. 백정의 대사에서 이어지는 이들 4인방의 각 하나도 안 잡히고 서로  하고싶은 대로 움직이는 떼춤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백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메시지의 내용 자체야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다. 전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 이 뻔한 메시지를 진부하지 않게 만드는 것, 진부함 때문에 생기는 현실적인 딜레마를 가려주는 것이 바로 코메디라는 장르적 형식이다. 무겁고 진지할 거라 생각되는, 뻔하고 진부할 거라 생각되는 주제를 이토록 유쾌하고 부담없이 다룰 수 있다니. 유머가 사회운동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는 생각해지만,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 유머는 생각도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