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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독립하는 법

짧은 리뷰

by 이용석

애초에 큰 기대를 하고 본 책은 아니다. 출판사에서 일한 적도 있고, 책을 쓴 경험도 있으니, 돈을 벌 목적-특히 생계 수단으로 전업 작가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런 류의 재능도 없을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글쓰기는 대체로 팔리지 않는 주제들이니까.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책의 두 키워드는 '글쓰기'와 '독립'인데 후자에 좀 더 방점이 찍혀있었다.



독립을 위한 글쓰기


글쓰기와 관련해서 강조하고 싶은 기억에 남는 구절이 두 가지 있다.


"작가의 전문성이야말로 그의 '위치적 개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102쪽)


내 경우는 바로 '평화활동가'라는 위치일 것이다. 한국에 드문 평화활동가라서 할 수 있고 해 왔던 경험들, 그리고 평화활동가이기에 가질 수 있는 시선의 독특함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내 글에 고유성을 불어넣는다.


아무래도 인권활동가, 지역활동가, 노동운동활동가들보다 나는 평화운동 이슈에 더 전문성이 있다. 그리고 평화학 연구자들과 비교하자면 나의 전문성은 분야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선의 독특한 시선이다. 연구자는 논증하고 입증하고 분석하지만, 활동가는 주장하고 설득한다. 말하기, 글쓰기의 방식이 다르다. 평화학 연구자는 논리적으로, 학적으로 옳은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평화활동가로서 나는 물론 틀린 말을 할 순 없지만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말, 설득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나는 책을 쓸 때 평화활동가라는 내 위치성이 나의 장점이라 생각하고 글을 썼고, 동료 활동가들에게 글쓰기를 권할 때도 늘 활동가이 글을 쓸 때 작가나 연구자들은 가질 수 없는 활동가만의 글쓰기 무기가 바로 활동가의 피부로 감각하는 시선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생각이 틀리지 않은 거 같아서 이 구절이 무척 반가웠다.


"내가 제시하고 강조하고 싶은 전문성은 그렇게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르는 종적(수직적) 전문성이 아니라, 횡적(수평적) 전문성이다." (108쪽)


전문성을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으로 나눠 설명하는 게 흥미로웠다. 논문을 쓴다거나 보고서를 쓸 때면 혹은 보도자료나 기획서처럼 아주 기능적인 글쓰기라면 종적인 전문성도 중요하겠지만, 독립을 위한 글쓰기라면 저자의 말처럼 횡적인-넘나들고 섞이는 전문성이 중요한 거 같다. 결국 독립의 핵심은 생계유지일 테고, 글쓰기로 독립한다면 글쓰기를 통해서 대단한 연구 업적을 남긴다거나 나만이 도달한 어떤 경지를 인류를 위해 기록으로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들이 나를 찾게 만들어야 하는 거니까.


이 구절이 흥미로웠던 까닭은 전문성에 대한 이런 구분법을 글쓰기가 아니라 다른 영역에도 대입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컨대 저연차 활동가들을 만나면 종종 받는 질문 중 하나가 "활동가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무엇이냐", 혹은 "그러한 전문성을 어떻게 쌓느냐"인데 그때마다 나는 대답하기 곤란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종적 전문성은 자신이 없고 그나마 활동가로 살아온 세월에 쌓인 경험은 횡적 전문성에 가깝다고 느끼는데, 저자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정상에 서는 전문성"만을 전문성이라고 여기고, 활동가들도 알게 모르게 이러한 감각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법률 조력이 필요한 병역거부자에게 활동가는 변호사만큼의 법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법률 조언을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를 처음 만나는 변호사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려운 법률 용어로 설명한 들 법률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병역거부자가 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법적인 것만 우선한 나머지 시민불복종으로서 병역거부의 의미를 훼손하는 조언을 할 수도 있는데 활동가라면 법률에 대한 수직적 전문성이 변호사에 비해 최상위급은 아니더라도 법률과 시민불복종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연결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활동가 후배들을 만나서 활동가의 전문성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다면 종적 전문성과 횡적 전문성을 구분해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독립을 위한 '관계 맺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자는 독립을 위해서 글쓰기 스킬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바로 '관계'를 꼽는다. 꼭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더라도, 모든 종류의 프리랜서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뻔한 말이지만 이 뻔한 말을 대부분 머리로는 알아도 자신의 일일 때 떠올리지 않으니 백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일을 한참 배우고 실력이 늘고 성과를 낼 때 그 성과를 온전히 자신의 능력이 일궈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능력이 없었다면 성과도 안 났겠지만 온전히 자신만의 성취가 아니라 동료들 혹은 조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일군 성과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일정한 경험이 필요한 거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제법 이름 있는 출판사에 다니다가 작은 출판사에 다닌 적이 있다. 큰 출판사에서는 작가 섭외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획서도 쓰지 않은 채(기획회의를 하지 않는 기형적인 회사였다) 그냥 전화나 메일로 연락해 작가를 섭외하더라도 어지간하면 섭외가 되었다. 그런데 작은 출판사에서는 훨씬 더 열심히 기획을 하고 기획안을 만들어도 작가 섭외가 쉽지 않았다.


물론 내가 뛰어난 편집자로 작가들에게 인정받고 있거나 그랬다면 아무리 작은 출판사였어도 작가들이 나를 보고 계약을 했겠지만 그럴 역량은 없었고, 그렇지만 첫 회사였던 큰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능력이 더 없어도 작가 섭외 실패율이 훨씬 낮았다. 그 작가들은 회사를 보고 계약을 한 것이니까.


이 경험은 다시 단체로 돌아와 활동을 할 때 약이 되었다. 나는 전쟁없는세상의 창립멤버이기도 하고 거의 모든 전쟁없는세상의 순간을 함께 해왔고, 다시 말해 단체의 성장에 나의 몫도 분명하게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단체의 성취가 모두 나의 능력 덕분은 아니며, 내가 사람들에게 존중받거나 주목받거나 인정받는 것도 온전히 나 개인으로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니까 가능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


게다가 한국은 정말이지 인맥 사회 아닌가. 독립하지 않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도 조직의 덕을 보면서도 개인의 관계를 십분 발휘해야 조직에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시민단체 활동하면서 맺은 개인적인 인연을 출판사에서 일할 때 적극 활용했다. 때로는 저자로 섭외하기도 했고, 혹은 저자를 설득하는 데 인맥을 활용하기도 했다. 반대로 출판사에서 일할 때 쌓은 인연과 관계는 다시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하면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연간활동보고서를 만들어주는 사람은 나와 같이 출판사 노조 활동을 했던 디자이너 선배고, 전없세 블로그 필진인 양선화(헬북)는 내 첫 출판사 입사동기였다.


관계 맺기의 중요성은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사례로 들어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눈에 쏙쏙 들어오고, 그 중요성과 관계 맺기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도 독립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살짝 고민이 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니 준비를 잘해서 독립을 하라고 권하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어쩐지 나는 이 책을 읽고선 독립이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물론 저자도 무조건 독립하라고 부추기는 건 아니다. 독립=자유가 아니며, 독립이 자유더라도 어떤 사람은 회사나 조직에 속해 있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저자도 이야기한다)


그냥, 뭇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일하지 않고 저작권으로 먹고사는 자유로운 삶은 불가능하다는 건 원래도 잘 알고 있었다. 회사나 조직으로부터 독립이지 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애당초 일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독립을 왜 해야 하나? 하고 싶은가?


독립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좀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 거 같다. 도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원래 엉덩이 무겁게 진득하게 한우물 파는 스타일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끊임없이 즐기는 도파민 중독자인데 전없세 다시 돌아온 게 이제 10년이 되었으니 근질근질할 때도 되었다. (역시 나는 종적인 전문성보다 횡적인 전문성을 쌓는 게 더 재밌다)


그렇다고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나는 직업이 바뀌더라도 평화활동가라는 정체성은 내 삶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늘 가지고 가고 싶고, 그렇다면 전쟁없는세상 만한 곳이 나에게는 없으니까.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집 구할 때 반전세처럼, 半독립이다. 전쟁없는세상의 상황과 여건이 가능하다면 주 2일 정도를 근무하면서 아주 기본적인 생활비를 벌고, 나머지 3일은 책 쓰고 책을 들고 강연 다니고 그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구체적으로 해본 적도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어차피 많이 팔리기 어려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니 전업 작가(강연을 겸한다 하더라도)로 먹고살 순 없다. 게다가 내가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알량한 글쓰기 재주 덕분이 아니라 '평화활동가'라는 내 정체성이 가진 장점 덕분이었다. 내 글이 매력적일 수 있다면 그건 활동가의 경험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덕분인데 전쟁없는세상을 그만둬버리면 가장 큰 내 글쓰기의 장점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독립은 불가능하다. 책을 안 내봤다면, 출판사에 다녀본 적이 없다면 오히려 근거 없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모험이라도 했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편집자로 만든 책들이 죄다 안 팔리고, 내가 쓴 책도 안 팔리는 현실을 알면서도 모험을 하기는 어렵다. 확실히 나이 먹을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거 같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전쟁없는세상 반상근을 하면서 다른 날들은 책 읽고 평화운동에 대한 책 쓰면 참 좋겠다. 욕망이 생기니 이유도 저절로 만들어진다. 전쟁없는세상 모금이 조금만 더 잘 되면 한 명을 새로 뽑되 그러기에는 인건비 충당이 안 되니까 내가 근무일수를 대폭 줄이면 나한테도 좋고, 전쟁없는세상도 새로운 활동가가 새로운 에너지와 긴장, 활력을 가져올 테니 다 좋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들.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도 머리로는 잘 알지만 몸이 움직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도 포기는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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