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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이 채 안 되는 0.5인분의 삶일지라도

우리네 삶에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그래도 인생에 꼭 한 번쯤은!

by 애란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집에서 나온 지도 햇수로 4년 차가 되어간다. 늘 독립을 바랐고, 스스로를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 여겨왔기에 독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케이크처럼 깔끔하고 깨끗한 단면을 가지진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도 힘듦은 찾아올 수 있다. 내게도 힘듦은 찾아왔다. 너무 자만했던 거다. 허나 그 결과를 안다고 해도, 나는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할 것임을 안다. 몸과 마음이 이전보다 좀 고되 진다 할지라도, 추천하고 싶다. 가능한 일찍부터 본인의 삶을 일구어 내어 보기를.


물론 혼자 살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 같이 산다고 해서, 그것이 제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않는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가족이라는 단어로 다 포함할 수 없을 만큼, 동거자의 형태가 훨씬 넓어진 지금에서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그럼에도 단 몇 개월이라도 혼자 살아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첫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 혼자만의 공간을 꾸미고, 원하는 대로 삶을 꾸려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설렘이 먼저 앞설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혼자 살게 되면 자신의 시간을 구성하는 데 더 애를 많이 써야 한다. 애를 쓴 만큼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내 일'이 아니라고 미루고 방치하기 일쑤던 일들을 매일 마주해야 하니까. 삶과 너무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서, 마냥 미뤄두고 지낼 수 없는 것들. 요리, 청소, 분리수거, 설거지, 빨래 같은. 이것들의 특징은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함에도, 하고 나면 전과 후의 차이가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내가 머무를 환경을 가꾸고, 나만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감으로써 나라는 사람, 그리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속적인 성장을 해나간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변화가 어려워지는 건 익숙해져 버린 환경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고 생각한다. 비단 몇 달 밖에 안 다녔을지라도 입사하고 나면 선뜻 그만두기 어려운 회사, 마음은 있지만 막상 실천이 어려운 일상 습관 만들기 같은 것. 내 주변에 이런저런 것들이 쌓여 내 주변 환경을 만든다. 무언가 익숙하지 않을 땐 그 익숙함을 손에 쥐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막상 익숙해지고 나면 또 다른 새로운 것들에 눈길이 간다. 우리는 왜 자꾸만 익숙해지고, 새로움을 갈망하는 걸까? 특히나 환경은 익숙해질수록 개인의 특성을 점점 희미하게 만든다. 꼭 늘 그 자리에 있던 조명처럼 어느새 환경에 내가 묻힌다. 정돈되지 않은 공간에 익숙해지면 나의 일상도 점점 흐트러진다. 삶도, 관계도 우리는 모든 것에 쉬이 익숙해지지만, 그것들이 희미해질 때쯤 약간의 변화를 더해 은은하게나마 나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나를 잘 붙들어 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매일 실천하는 작은 습관들이 내가 머무는 공간에,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에게 은은하지만 분명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도 내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 있는 까칠이, 소심이, 불안이와 타협해 가며 나와 나의 공간을 정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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