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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an 14. 2024

올해도 잘 살아볼...까?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단 하루만이라도 인생을 누려보고 싶었어요. 헌데 바로 깨달았죠. 방법을 모른다는 걸."

"기억났어요. 살아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영화 <리빙: 어떤 인생>





연초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한 편 보고 왔다. 작년 말부터 혼자 영화관 가는 걸 즐기기 시작했는데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이번에 다녀온 영화관은 광화문에 위치한 씨네큐브다. 씨네큐브는 2000년 12월 개관 이후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예술영화관으로, 오직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영화관이다. 물을 제외한 음료 및 음식물은 반입을 금지하고 엔딩 크레딧까지 모두 끝난 후 상영관을 점등하는 등 영상예술의 몰입을 위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생각되는 에티켓을 잘 갖춘 곳이다.


이번에 내가 보고 온 영화는 <리빙: 어떤 인생>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라는 작품의 리메이크작으로, 이번 영화의 각본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맡았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작가였는데, 이 작품의 각본을 맡았다는 건 영화관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195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런던 시청의 공무원인 윌리엄스가 주인공이다. 아내와 일찍이 사별하고 아들 내외와 런던 교외 지역에 살면서 기계처럼 출퇴근을 반복하는 그의 삶은 꽤나 단조롭게 비춰진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시한부 판정이 내려진다. 앞으로 살 날이 6개월, 길어봤자 9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남은 인생을 다르게 살아보고자 평소 안 하던 일탈을 일삼지만 왠지 모를 공허감이 계속해서 남아있다.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고, 무단결근을 하며 방황하던 그는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의 일터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서류의 존재를 떠올린다. 서로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며 떠넘겨졌던 그 서류는 시청의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로, 동네 폐허를 놀이터로 바꿔달라는 민원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일탈을 이어가던 그에게 어릴 적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엄마를 기다렸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향수가 떠오른 것이다. 다소 소박하다 여겨질 수 있는 그의 옛 기억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런던 시청으로 돌아온 그는 생기 없던 이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러 관할 부서의 거절에도 개의치 않고 정중하게 다시 부탁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며 굳건하게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간다. 결국 그는 모두가 기피하던 골치 아픈 숙원사업을 이루어내고 놀이터는 재건된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밤, 재건된 놀이터 그네에 홀로 앉은 그는 들뜬 아이처럼 자신의 고향 스코틀랜드의 민요를 흥얼거리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영화의 흐름은 단조롭다. 이렇다 할 자극적인 소재도 없었고 다소 느린 흐름 덕분인지 늘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슴슴하고 소박한 삶의 정수를 잘 담아낸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그의 장례식장, 그리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동료들이 그를 회상하는 장면이 특히 더 그랬다. 무미건조한 흑백의 삶을 살아가던 그가 삶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런 걸 클래식이라 부르지 않던가. 인생을 산다는 게 그리 거창한 게 아닐지 모른다. 거창한 걸 찾다가 되레 눈앞에 놓인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곤 하니까 말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관객들이 거의 다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그 영화관에 홀로 멍하니 앉아 자리를 지켰다. 러닝타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깊은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연말에 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다 아니다, 연초에 봐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돌렸다. 올해 나의 삶이 윌리엄스의 마지막 모습처럼 소박한 일상에서도 밀도 높은 행복을 느끼는, 온기가 가득한 삶이길 바라게 됐으니까.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은 여전히 차곡차곡 쌓여가는데 그중 하나에 "영화 보기"가 포함됐다. 단순히 재미와 시각적인 자극만을 추구하는 영화보다는 고전 문학처럼 보고 난 뒤 깊은 여운이 남는 인기 없는(?)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삶에서 녹여내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는데, 세상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발 디딜 틈 없는 그 공간에서 '역시 새해는 새해구나'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시한부 인생이다. 영원한 삶은 없고 죽음이라는 대전제는 서로 시기만 다를 뿐 살면서 한번은 맞이할 수밖에 없는 절대값이기 때문이다. 다만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없기에 주어진 삶의 소중함을 자주 잊고 물 흐르듯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몸이 크게 아프고 난 후에야 건강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듯 삶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하루하루 나만의 의미를 담아 밀도 있게 삶을 가꿔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는 느낌이다. 내 삶은 여전히 위태롭다. 당장 무슨 일이 있다는 게 아니라, 요즘 세상이 너무나 혼란스러우니까,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이 혼란함 속에서 내 중심을 찾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며 살아가는 기분이랄까.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선물 같은 삶을 더 깊이 사랑하고 싶다. 환상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딛고 삶의 매 순간을 직면하며 살아가고 싶다.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오롯이 그 상황을 마주하며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다.


오늘은 드디어 유리를 보러 가는 날이다. 거의 한 달만인 것 같은데 함께 식물원을 가기로 했다. 아이와 친해지려면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을까 혼자 이것저것 생각해 보다 서먹서먹할 이동시간에 살짝 아찔하기도 했는데, 자꾸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 순간 아이와 나누고 싶은 대화를 가만히 이어가면 되지 않을까로 결론을 맺었다. 뭐가 됐든 견디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될 테니까. 이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유리에게도 마찬가지일 테다. 삶에 '억지로'라는 전제가 자꾸 치고 들어오는 걸 견딜 수가 없다. 견디지 말고 억지로 감당하려 들지도 말고 그저 그 상황에 진심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 근데, 쓰다 보니 왜 이렇게 말이 점점 길어지는 걸까. 요즘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온갖 생각을 다 적어내려가고 싶은가 보다.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으니까 쓰고 싶은 글도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써 내려가면 될 테니, 올해도 이 공간에서 마음껏 나를 알아가보자. 나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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