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상태. 아마도 그게 자기 사랑이 아닐까. 물론 나는 앞으로도 계속 작은 일에 흔들리고 자신을 의심할 것이다. 자기 사랑이라는 말도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냥 나와 좀 더 친해지자는 마음으로 다가가려 한다.
자기 사랑은 높은 산을 오르는 일이 아니라 가랑비에 젖어가는 일이다. 전에는 일희일비하는 자신을 책망했지만 어느새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조금씩 나아가 결국은 평온에 이르리라는 걸 안다. 누군가의 눈에 빛나지 않아도 나에게만은 내게 빛저운 사람이길, 바란다.
<낱말의 장면들> 민바람
문장의 결이 참 고운 책을 만났다. 누군가에게 좋았던 책이 나에게도 닿았다. 처음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 우선 작가의 이름이 낯설었고, 제목 또한 본문의 내용을 예상하지 못하게끔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책 자체가 두껍지 않았고, 장르도 에세이라 금방 다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나의 속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속도가 나지 않았던 책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속도를 낼 수 없었던 책이다.
"우리 말뜻과 말맛으로 우리가 겪어나가는 '삶'의 여러 면모를, 그리고 묘미를 더 풍부하게 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책입니다"라는 작가의 문장처럼, 그녀의 순우리말 수첩에 가득 담긴 낱말 하나하나가 삶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있었다. 우울할 때마다 단어를 외우고, 낱말을 수집했다던 그녀는 부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칠 때마다 아름다운 산말(실감 나도록 꼭 알맞게 표현한 말)을 꺼내 글자 위에 기우다 보면 요동치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작가 소개에 의하면, 그녀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 국어학과 한국어교육학·한국학을 전공하고 10여 년간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자유기고가 사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아홉 살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3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그 결심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민바람 작가의 모습을 가만히 상상해 봤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부드럽고 다정한 작가의 문체가 똑똑똑 내 마음을 두드리는 기분이었다. 입에 쉽게 붙지 않는 낱말들을 읽을 때는 아름다운 말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걸음마를 떼듯 내 수첩에도 하나하나 옮겨 담았다. 어떤 낱말은 나의 문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까지 입으로 곱씹어 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누구보다 잘나야 한다거나, 남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거나 돈, 명예, 지위 등 어떤 이들이 선망하는 무언가에 대한 욕심이라면 나는 그 과가 아니다. 다만 내가 부리는 욕심이라는 건 대체로 이런 거다. 고운 말, 고운 문장을 읽고 수집해서 나의 언어로 체화하기, 더 많은 책을 읽고 가치관을 스스로 정립해가기,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노력하기, 나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기, 좋아하는 영역을 더 활발히 성장시키기 등.
독서모임을 직접 만들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한 권의 책을 읽고 밀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책은 액세서리일 뿐, 얄팍한 주제로 수다나 떠는 모임, 모임에 나와 책을 읽는 모임(책은 각자 읽어옵시다, 쫌), 책이 아닌 다른 목적(이성)을 갖고 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물씬 담긴 모임 등,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을 빙자해 온갖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모임들이 난무할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책을 읽고 좋았던 문장과 감상을 잔뜩 정리한 수첩을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모임에 참석했다가도, 목적을 상실한 그곳의 실체에 허탈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게 어제가 두 번째 모임이었다. 지난달 열었던 첫 번째 모임은 모임장인 나의 어리숙함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지만, 어제는 달랐다.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이 모였다. 내가 평소 애정해 왔던 친숙한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우리는 한 권의 책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감상과 각자만의 솔직한 삶을 나눴다. 그 주체는 다름 아닌 '나'였다. 발제문을 꼼꼼하게 준비해 주신 공동리더님의 질문도 하나하나 정성스러웠다. '나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그분의 질문에 덧대어 '자신을 사랑하나요?'라는 질문도 던져보았다.
"누군가의 눈에 빛나지 않아도 나에게만은 내게 빛저운 사람이길" 바란다는 민바람 작가의 문장처럼 나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곰비임비', '옥실옥실하다', '해낙낙하다'처럼 귀엽고 입에 착착 붙는 순우리말도 좋았지만, 빛접다는 작가의 낱말이 유독 마음에 콕 들어왔던 건, 같은 이유에서다. '떳떳하고 번듯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 '빛접다'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기저에 깔린 마음처럼 말이다.
작년이던가, 내가 바라는 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예의 바른 대나무 숲'이라고 명명했는데,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위한 진지한 고민 상담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더랬다. 여기서 중요한 건 대화의 온도였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섬세한 센서를 가진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토로하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할 수 있는 사람들, 나이나 사회적 경험이 많다고 해서 남을 함부로 가르치려 들거나 판단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 공허한 수다보다 본질적인 삶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웃기지도 않은 개그로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는 사람들 등, 이 모든 게 잘 갖춰진 대화의 온도, 결이 중요했다.
직접 만든 모임이 처음인지라 부담은 여전하지만, 공동리더님이 있어 든든하다. 두 번의 모임을 마치고 리더님과 나란히 앉아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나 혼자만의 걱정일까 싶어 털어놓았던 솔직한 말들이 다행히 왜곡되지 않게 닿았다. 아니, 아니다. 그분은 나의 말을 오독하지 않고, 제대로 듣고 응답하는 분이셨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구나(결국은 또 내 자랑)라고 생각하며 앞으로의 규칙을 더 정했다. 아마 모임이 진행될수록 보완할 점들이 차곡차곡 더 쌓일 테지. 그때마다 조금씩 우리의 속도에 맞게 개선시켜 가면 된다. 관계는 훼손된 흔적을 지워야만 건강하게 지속되는 게 아니라, 시간 위에 함께 남기는 흔적 그 자체라던, 관계 안에서 완벽할 수 있는 사람도 정답도 없다고 말하던 민바람 작가의 문장처럼, 지키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우리의 모임을 즐기고 싶어졌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건강한 독서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는 나의 꿈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실현되어 가는 중인가 보다.
이 글을 한참 쓰다가 갑자기 든 생각인데, 공동 리더님과 나는 서로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다. 밝힌 적도, 서로 궁금해한 적도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고 우리의 이 알쭌한 관계가 앞으로도 모임 안에서 건강하게 지속되기를 잔잔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