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를 다녀왔다
나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내 눈에 비치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쓰고 싶었다.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 김혜나
브런치에서 통용되는 작가라는 호칭은 여전히 낯설다. 상대를 "작가님"이라 부르는 건 익숙하지만 그 반대는 여전히 간질간질하다. 활자로 접할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얼굴을 마주한 이에게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의 쑥스러움이란. 과연 작가라는 호칭이 내게 가당키나 한 건가 싶어 어리둥절하기 그지없다.
지난주 토요일, 브런치스토리에서 준비한 팝업 전시를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WAYS OF WRITERS : 작가의 여정>이라는 주제로 성수에서 10월 13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다. 토요일의 성수는 사람이 미어터지기 때문에, 되도록(아니 최대한) 피하는 편인데, 어쩔 수 없었다. 그날이 아니면 일정상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토요일 오후 성수역 인파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핫피플의 성지 같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줄이 어찌나 길던지.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다녀올 수 있었다. 출구에서 나와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저 가게는 대체 정체가 뭘까'싶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대기줄을 여러 번 마주했다. 맛집 같기도 하고, 팝업 스토어 같기도 하고, 왁자지껄한 사람들 무리를 지날 때마다 내 에너지도 덩달아 빨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이방인이 된 것도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헤매다 성수동 '토로토로 스튜디오' 앞에 다다랐다. 스튜디오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유리로 비친 내부에는 사람이 꽤 많아 보였다. 현장 대기 입장도 가능하다길래, 따로 예약을 하지는 않았다. 대기줄에 합류해 팔찌를 받고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안내 직원분의 통솔에 따라 입장하려 했는데, 작가인지, 회원인지를 물어보셨다. 그 답에 따라 입장하는 게 달라지나 싶었는데, 브런치 작가에게는 '작가 카드'를 준다고 하셨다. 심지어 즉석에서 촬영한 사진을 담아 카드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얼떨결에 "네"라고 뒷말을 끌며 딴에는 시원찮게 대답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카메라 앞이었다. 직원분의 설명에 따라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고, 그분은 계속해서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셨다. 가까이서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멀리서는 그분의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부담스럽게 들리던지. 이번 전시의 관객들 대다수가 브런치 작가분들일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브런치에서 글만 읽고 계신 회원분들도 많았다.
토로토로 스튜디오는 규모가 작았지만 그 작은 공간을 섹션별로 밀도 있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두었다. 우드톤이 주는 무드 덕분에 마음도 편안해졌다. 공간은 이동방향에 맞게 총 3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었다.
Chapter 01.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
Chapter 02. 계속 쓰면 힘이 된다
Chapter 03. 나의 글이 세상과 만난다면
그중에서 내가 유독 오래 머물러 있었던 곳은 "Chapter 02. 계속 쓰면 힘이 된다"였다. 이곳은 브런치스토리를 만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브런치 대표 작가 5인의 인생 여정과 글쓰기 레시피를 전시해둔 공간이었는데,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집필한 황보름 작가의 코너를 찬찬히 오래 살폈다. 이 책과는 은근히 연결고리가 많아 친근했던 탓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당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래, 내가 원하던 서점이 바로 이런 곳이야!'였고, 황보름 작가의 북토크를 다녀오기도 했었다. 심지어 전시 다음 날인 일요일은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도 예매해두었기에 더더욱 애정이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일요일에 봤던 뮤지컬 이야기를 살짝 더해보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휴남동 서점 자체는 책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잘 살렸지만,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캐릭터들의 고유함이 영 아쉬웠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영주의 모습이 가장 별로였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탓일까. 짧은 시간 소설의 방대한 스토리를 압축해서 담기에 벅찼던 것인지, 생략된 부분도 많고, 인물 자체도 너무 가볍게 다뤄지고 말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단어는 '연대'였는데, 뮤지컬에서 표현하고 있는 단어는 '사랑'이었다. 뭐랄까, 좀 진부한 로맨스 같달까.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관람을 위한 공간과 체험을 위한 공간도 잘 분리되어 있었다. 나는 주로 관람에 초점을 맞췄는데, 작가들만의 레시피를 전시한 공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그들만의 연대기였다. 성장 기록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줄기처럼 이어진 실선을 눈으로 가만가만 따라갔다. 보면서 또 하나 놀라웠던 건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출간된 책들을 모아놓은 책장이었는데, 대형서점에서 익히 봐왔던 책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어라? 이 책도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출간됐던 책이었나?'싶은 책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다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활발하게 펼쳐가고 있었구나. 반갑고 신기한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나처럼 혼자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다들 동행인이 있었다. 성비는 비슷했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아이와 함께 방문해 체험 코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가족단위 방문객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괜스레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요즘 들어 계속 몰입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삶과 글쓰기'다. 주변에 글을 쓴다고 하면 으레 따라붙는 질문 중 하나가 "작가하려고?"였고, 나는 그 질문에 부단히도 지쳐있었다. 이 진부한 질문에 언제쯤 그냥 (글 써요,라고) 답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 공간을 보며 깨달았다. 이곳이야말로 그냥 글쓰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적을까,하는 소박한 궁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지향하는 목적 없는 글쓰기가 실현되고 있는 작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진지한 독서 공동체를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삶에 글쓰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거창한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면서 나라는 세계가 더욱더 확장되고 단단해지는 경험을 더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 더 정확히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려고 안달 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 되어간다. 그 기류에 휩쓸리지 않고, 저마다의 골방에서 자신만의 글쓰기를 이어가는 사람들(책 한 권 내보겠다는 심산일랑 접어두고 말이다)이 많아진다면, 이 사회가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라는 꿈을 꿔본다). 작은 것 하나도 오래도록 사유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뭉근하게 풀어내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가기를, 삶의 곳곳에 사색이라는 단어를 잔잔히 품을 수 있기를 말이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됐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누군가 나에게 '작가'라는 호칭으로 댓글을 달고, 나의 이야기에 공감했던 일련의 과정들. 나 또한 그 댓글에 화답하며 함께 울고 웃었다. 내가 뭐라고, 내 글이 뭐라고. 구독자가 한 명 한 명 늘어갈 때마다 덩달아 어깨도 무거워졌다. 작고 소중한 나만의 글쓰기 세계를 단단히 지킬 필요가 있었다. 거창할 필요도 없고, 거창해지고 싶지도 않은 작고 견고한 성.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어의 한계다. 좀 더 맛깔스럽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단어들을 구사하고 싶은데, 익숙한 단어들만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얼마나 더 많은 낱말들을 읽고, 입속으로 굴려야 자연스럽게 체화돼 나의 문장으로 녹여낼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본질은 잊지 않는다. 처음 품었던 그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게 읽고, 쓰고, 걷는 이 세 가지만 매일 반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삶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