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 - 일상의 시작
호텔에서 며칠을 머무르고 드디어 에어비앤비로 들어가는 날이다.
꽤 긴시간 프라이부르크에 머무르다 보니 당연히 호텔보다는 에어비앤비 체류를 우선 순위로 두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간단한 주방시설이 갖춰진 아파트 형태의 호텔도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장기간 머문다면 그런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한테 매우 미안한 것 중 하나가 있는데, 그건 바로 생활에 너무 소극적이었던 내 태도였다. 프라이부르크가 엄청 큰 도시도 아니고 트램 노선이 복잡한 곳도 아닌데 어딘가 가야할 때 내가 먼저 길을 찾아본 적이 거의없다. 동생이 알아서 데려다주겠지-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이니 당연히 지도를 보고 찾는 것보다는 원활하겠지만 하다못해 에어비앤비 체크인까지도 나는 남 일인듯 생각없이 캐리어만 질질 끌고 다녔다.
에어비앤비를 체크인하던 날도 그랬다. 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애를 앞세우고 에어비앤비를 찾아갔다. 소극적인 여행준비로 결국 찾아간 에어비앤비에서도 드러나고 말았다.
주방 시설에 없었던 것은 예약할 때부터 알고 있었고(하지만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기와 포트는 있었다.) 방에 딸린 작은 테라스, 혼자 지내가 적당한 크기의 아늑한 분위기는 꽤 괜찮았지만
가장 중요한 와이파이가 없었다.
게다가 에어콘도 없다. 작은 선풍기 하나만 있었다. 다행히 프라이부르크의 여름은 죽을만큼 덥지 않고, 해가 지고 나면 제법 시원하기 때문에 에어콘이 없는 것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와이파이가 없다니... 인터넷이 없다니....!!!
주변에 길 잃은 와이파이 하나 뜨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예약을 취소할 수도 없고 방을 옮겨도 와이파이는 여전히 없을 것이고.... 호스트는 매우 친절했지만 강제 디지털디톡스를 하게 생겼다.
어쩔 수 없다.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뭐 별다른 방법도 없고....
여행을 준비(도 사실 안했지만)하던 당시의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모두 지난 지금은 덕분에 경험했다-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때는 어지간히 지쳐있긴 했나보다.
어쨌든 그렇게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프라이부르크의 볼거리들은 도착해서 첫 날 거의 다 둘러보기도 했고, 에어비앤비 체크인도 했고 이제 정말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내가 머물렀던 에어비앤비는 어린이 병원이 있는 근처의 동네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족 단위로 사는 낮은 아파트들이 많은 동네인 것 같았다. 트램 정거장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시내까지는 트램을 타고 20분 정도. 와이파이가 안된다는 것을 빼면 완벽하다.
다음날, 동생은 일하러 가고 나는 그녀에게 소개 받은 카페로 향했다. 이곳은 카페 아델이라는 곳인데 비건 뷔페가 있는 곳이다.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비건이라고 해도 꽤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있고 대체적으로 감칠맛이 있어 점심 한끼를 떼우기가 무척 괜찮았다. 어떤 날은 김치같은 한식 비슷한 음식도 있어서 메뉴 고민하기 어려울때는 이곳을 자주 찾았다.
커피맛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오트밀크로 만든 플랫화이트를 자주 사마셨다. 서버들 대부분이 친절했고 독어를 못하고 영어도 우물쭈물 하는 내가 주문을 해도 항상 기분 좋게 응대를 해주는 것이 좋았다.
독일에서 마실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아이스 커피 메뉴였다. 일단 카페 메뉴에 아예 없다보니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늘 따뜻한 커피를 마시게 됐다. 당연히 더우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부터 떠올리는 한국인이다보니 더운 날씨에는 아이스가 떠오르긴했지만 따뜻한 커피가 주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아름다운 곳을 일상처럼 걷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나 프라이부르크 시내에는 크고 작은 수로가 많이 있는데 이것이 주는 느낌도 특별했다. 투명감있는 여름 느낌이랄까.
평소 술을 좋아하지만 서울에서는 맥주를 잘 마시지 않았다.
일단 취하는 속도에 비해 너무 빨리 배가 부르기도 하고 아주 더운 날 차가운 생맥주 한 잔까지는 좋지만,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는 느낌. 와인이나 청하, 일본주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독일만큼은 확실히 달랐다. 일단 맥주 자체가 맛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마실 수 있었다. 맥주만큼은 누가 뭐래도 독일이 최고다.
#프라이부르크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