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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도시,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의 첫인상

by 첼라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이부르크까지는 플릭스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기차로도 물론 이동이 가능하지만 아무리 동생이 있어도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기차 환승을 해야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짐이 주는 무거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그만한 체력을 쓸만한 에너지가 나에겐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인근에서 플릭스버스가 출발한다.

유럽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연두색의 플릭스 버스는 유럽 전역으로 이동하는 노선을 갖고 있다.





버스 안은 에어콘이 잘나왔고 와이파이 표시는 있었지만 그다지 잘터지진 않았다. 대충 다운받아온 음악을 들으면서 이동했다. 동생은 책을 읽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요즘은 한국에서도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보니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의 체크인 날짜는 며칠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프라이부르크에 도착해서 며칠간은 호텔에 묶어야만 했다. 체크인 후 짐을 두고 나와 프라이부르크 시내로 동생과 함께 나왔다. 커피 한 잔을 하기도 해야했고 간단히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제부터 거의 한 달간, 나는 이 도시에 머문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동생 하나, 여기서 한달 간의 나는 직업도 없고 친구도 없다. 해야만 하는 일도 없고 이 도시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다. (참 일관성있게도 장시간 머무는 도시임에도 검색하나 제대로 해보지 않고 왔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편한 기분이고 어떤 한 편으로는 사실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프라이부르크의 첫 인상은 맑고 깨끗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의 장기간 체류가 나에게 어떤 느낌을 가져다 주게 될 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약간의 두려움이랄까 긴장감이랄까.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동생과 한 집에 머물지는 않지만 앞으로 한 달간의 시간을 함께 해야한다는 것도 약간의 긴장감을 주었다. 뭐랄까.. 서울에서도 종종 만나고 대화는 많이 했지만 우리 둘 모두에게 그때 당시 고민거리였던 부분은 이미 해소된지 오래이기도 하고 여행의 설레임이라던가 그런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낮아지기 마련 아닌가. 어떤 대화가 이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고, 공동의 주제가 사라진 지금부터는 또 다른 대화의 시작이라는 또한 긴장의 한 요인이었을 수 있다.


언니 뭐하고 싶어? 어디갈래? 뭐 먹을래?


그녀의 배려 가득한 끊임없는 질문 또한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정말 솔직히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도 가고싶은 곳도, 먹고싶은 것도 없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지낸지가 너무나 오래된 것 같았다. 아침에 눈뜨면 허둥지둥 준비하고 출근하기 바빴고, 일이 정신없이 바쁘니 점심도 어쨌든 대충 아무거나, 퇴근은 언제할지 늘 미지수에 집에 돌아오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에 씻기 바쁘게 누워야했다. 평일이면 다음 날 해야할 일들이 누운 상태에서도 머리속을 가득 채웠고 덕분에 침대에 누운 시간과 상관없이 수면 시간은 늘 짧았고 그나마도 꿈자리가 사나왔다. 그런 생활을 몇년간을 해오고 나서 받는 근본적인 질문은 답하기 힘들었다.


뭐하고 싶어?

나도 모르겠다. 아무거나 좋기도 하고 그 무엇도 상관없었다.




프라이부르크의 주요 스팟을 모두 돌아보는 데는 하루면 충분한 정도다. 시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몹시 작기도 하고 다른 대도시처럼 볼거리들이 수없이 많이 깔려있는 곳은 아니다.



그치만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무 곳이나 퍼질러 앉아서 커피나 한 잔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그나마도 하지 않고 멍때리고 있어도 충분하니 여러가지로 지친 나에게 몹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여름의 프라이부르크는 활기차면서도 고요했다. 사람이 많이 몰려도 시내 어느 부분 정도. 그러니 어딜 걸어도 좋고 어딜 해메도 여유롭다.





동생의 여름휴가까지는 아직 1,2주 정도 남았다. 그녀가 일상을 보내는 낮 시간에는 나도 내 일상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어서 오래된 노트북도 챙겼고 녹음 장비도 챙겼다. 한동안 손을 놓았던 피그마 교육 영상을 만들어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내 유일한 목적이었다.


언니, 그건 해도 되고 안해도 돼지. 너무 부담갖지마. 휴가잖아.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던 것 같다. 너무 오랜만에 길게 쉰다-라는 부담감이었을까? 부담감을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해소하려고 했던 마음은 아니었을까?





무엇보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뭘 하고 싶냐구? 뭘 먹고 싶냐고? 그 심플한 질문 하나에 답하기가 왜그렇게 어려웠는지....지쳐서 그래, 지쳐서.... 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렇게 속으로 읊조리기만 했다.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너무 예뻐요. 예쁜 건 크게보기


내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아마도 동생을 모를 것이다. 분명 그녀가 보고싶어서, 그리워서 여기까지 왔지만 그래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여기까지 왔는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프라이부르크에서의 첫 식사는 스테이크와 와인


오랜만에 일상에서 누군가와 저녁식사를 매일 할 수 있다는 것만큼은 나에게도 신선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웃기게도 내가 먹고싶은 음식? 하면 늘 1순위로 떠오르는 것은 스테이크였다. 덕분에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동안 수도 없이 스테이크를 먹었다. (대부분 맛있었다.)




그렇게 나의 프라이부르크 생활이 시작되었다.

체류하는 기간동안 에어비앤비를 Full로 예약할 수 없어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왔다갔다 하긴 했지만 아무런 계획없이 지내는 낯선 곳에서의 일상의 시작이다.



그리고 매일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일상






#프라이부르크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