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로 당일치기
언니! 하이델베르크역에서 만나!
알람을 끄고 지낸지 근 일주일정도가 지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하이델베르크까지 먼거리는 아니지만 아침에 움직여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조금 잠을 설쳤다. 다행히 출발시간 한참 전에 눈을 떴고 천천히 씻고 오랜만에 공들여 화장도 하고 호텔을 나섰다.
근데... 사실 너무 빨리 도착했다.
동생이 늘 스위스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답게 기차가 출발하기 한시간쯤전에 역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중앙역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기차 시간이 늦을까봐 걱정한 것도 있었지만 역시나 오늘 아침도 커피 한 잔이 필요했다.
크로와상이나 간단한 샌드위치가 있으면 함께 먹고 싶었지만 역내 커피숍에서 파는 베이커리는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카푸치노 한 잔만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역 출입구쪽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오가는 사람만 구경하고 있어도 재밌다.
독일에서 마시는 커피는 서울과는 맛이 다르다.
뭐랄까 맛이 엷다고 해야할까. 카푸치노, 라떼를 시키면 서울에서 마시던 것보다 훨씬 옅은 맛으로 느껴진다. 동생 말에 따르면 우유가 다른 것이 한 몫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제일 맛있게 잘 마셨던 커피는 오트밀크로 만든 플랫화이트였다. 커피맛이 많이 옅지 않았고 적당히 고소한 오트밀크 때문에 플랫화이트만큼은 어디서 시켜도 적당히 먹을만 했다.
그런가하면 크로와상도 약간 느낌이 다르다.
파삭!한 느낌보다는 속이 좀 더 꽉 찬 느낌이다. 실제로 다른데서 크로와상을 먹을때와는 다르게 손으로 찢어 먹어도 빵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크로와상하면 파삭!하고 부서지는 그 느낌과 버터 가득한 맛의 인상이었는데 독일의 크로와상 느낌이 훨씬 더 좋았다. 특히 아침식사로 하나 먹으면 적당히 속이 들어차는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하이델베르크까지는 열차로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중앙역에서 열차를 탈 수 있고 독일 49유로 티켓을 소지하고 있다면 티켓을 별도로 구입하지 않고 탈 수 있는 열차가 있다. 플랫폼에서 별도로 검표를 하지 않고, 대부분 열차 안에서 검표를 한다. 구입한 49유로 티켓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나는 MVV-App 이라는 앱을 설치해서 구입했는데 인앱 형태로 구독 형태로 구입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독일에 체류하는 7월, 8월 총 2개월간을 구독했다. 더이상 사용하지 않을때는 구독을 해지하면 된다.
하이델베르크역은 프랑크푸르트에 비해서 작은 역이었다.
내가 먼저 도착하고 30분 정도의 텀을 두고 동생이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사람과 비둘기가 자유롭게 오가는 역 내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와 나는 피로 이어진 자매는 아니다.
어쩌면 시절인연으로 지나갔을 법도 한 인연이었다. 같은 취미를 갖고 한동안은 꽤 어울렸지만 어느 순간 점점 연락이나 만날 기회가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그녀도 그랬겠지만 나도 그 이후에는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서로를 잊고 살았다. 어느날 우연히, 정말 기적에 가까운 우연으로 거리에서 마주치기 전까지는.
코로나로 어지럽던 시절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를 신기하게도 그녀가 알아보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다시 연락을 하며 살게 되었다. 마침 동일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하루에 서너시간씩 통화하거나 연락하면서 인연이 이어졌다. 그런 그녀가 독일에서의 인생을 꿈꾸며 비행기에 올랐을때만 해도 나는 그녀가 적어도 1,2년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녀의 결심이나 노력을 몰라서가 아니라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내 주변의 모든 세계를 바꾸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 아닌가. 그런 그녀는 벌써 3년을 넘게 독일에 살며 자기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터놓은 마음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그녀는 나에게 친구를 넘어서 가족같은 존재가 되었다. (특히나 이 여행 이후로)
외국의 낯선 역에서,
하나도 익숙한 얼굴이 없는 곳에서 드디어 3년만에 동생과 만났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라 배가 고팠던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중심에 위치한 한식집으로 향했다. 그동안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고 오랜만에 한국식 양념치킨도 먹었다. 무엇보다도 화장하게 맑은 하이델베르크 강변의 풍경과 맥주 한 잔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선글라스를 챙겨오지 못한 나는 이날부터 동생의 선글라스를 빌려썼다. 아마 그녀가 선글라스를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각막이 지글지글 타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유럽의 햇빛은 미치도록 쎘다. 여름 유럽을 가시는 분들은 꼭 선글라스를 챙겨가시길.
하이델베르크는 작고 예쁜 도시였다. 카메라를 들이미는대로 엽서같은 풍경이었는데 유독 맑고 높은 하늘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하이델베르크 성까지 걸어올라갔다.
날씨가 무척 더웠지만 한국에서 챙겨간 손풍기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한국의 더위가 습하고 뜨거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더위라면 유럽의 더위는 볕은 뜨겁고 그늘은 서늘한 적당하 걷고 활동하기 괜찮은 더위였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독일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20대에 갔던 유럽 여행에서는 뮌헨에서 4시간정도 스쳐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유명한 맥주집에 가서 맥주 한 잔과 슈바인학센인지 뭔지를 먹었던 기억이 있긴하다. 지금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거 보니 대단히 인상적인 느낌까진 아니었나보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는 독일은 좀 달랐다. 프랑크푸르트는 서울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지만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보이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풍경이 주는 느낌이 인상적이었고, 하이델베르크는 프랑크푸르트보다 작은 느낌이면서도 꽉 차게 푸른 자연과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게다가 유럽생활 3년인 동생에게서 풍기는 유러피안 이미지도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이건 말로 표현하긴 좀 힘들다. 그냥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아! 이 사람은 외국에서 사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그런 분위기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하이델베르크에서 며칠 지내보고 싶다.
느긋하게 산책하고 골목 어귀에 있는 카페에서 천천히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지내는 생활을 해보고 싶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잠깐의 당일치기 여행이 주는 신선함 때문일까. 일주일간 머물렀던 프랑크푸르트가 마치 서울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저녁때도 한식을 먹으러 갔다.
독일뿐 아니라 요즘은 유럽 어지간한 도시에는 한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내일은 동생과 함께 프라이부르크로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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