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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뢰머 광장과 국립미술관

by 첼라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걷기다.

목적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몇시간이고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다. 독일에 오기전 49유로 티켓을 구매해왔지만 마침내 호텔을 나와 한 발을 걷는 그 순간부터 뭔가의 교통수단을 탈 생각은 없었다. 그냥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하고 난 후 벌써 이틀동안 마트에 다녀오거나 흡연하기 위해서 호텔을 나간 것 외에는 전혀 걷지를 않았으니까.



프랑크푸르트 스타벅스는 야외석이 있다. 흡연도 가능


날씨도 적당했다.

볕안으로 들어가면 제법 더웠지만 그늘로 걷거나 나무 밑으로 들어가면 서늘함이 느껴졌다. 호텔이 있는 하펜파크에서 중심지인 뢰머광장까지는 멀지 않았다. 강변을 따라 걷다보면 30분 정도였을까? 트램이고 뭐고 알아보기 귀찮아 그냥 걷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걸어 처음 간 곳은 스타벅스였다.

무엇보다도 밖에서 파는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아이스라떼 한 잔을 시켜놓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주변 구경을 했다. 음악도 듣다 꺼버리고 그냥 또 멍하고 앞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출국하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선글라스는 하나 구입하고 싶었는데 잊어버렸다. 공항에서의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도 않았고 필요한 담배를 사고나니 게이트까진 한참을 걸어가야해서 서둘다보니 어느새 선글라스따위는 잊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눈을 잔뜩 찡그린채로 멍하게 풍경을 보며 앉아있었다.





프라하에서 여행 중인 동생과 연락을 주고 받는 것 외에는 그 핸드폰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여행이다보니 평소엔 입지 않는 옷도 좀 입어보고 싶어 나름 과감하게도 입어보았지만 역시나 익숙하지가 않아 그저 또 출근하는 사람처럼 옷을 입고 나와버렸다.





호텔에서 흐느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은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지친 마음때문도 있었지만 서울에서부터 달고온 감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프로젝트에서 철수했던 7월은 미친 더위가 시작된 때긴 했지만 워낙에 많은 사람이 모여앉아있는 사무실에 있어서였는지 감기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기침과 콧물이 끊이지 않아 공항 약국에서 약도 지어왔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감기가 영 떨어지지를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역시 여름 날씨였지만 서울만큼 덥지는 않았고 무엇보다도 서울보다 건조한 공기 때문인지 한 세걸음 걸을때마다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토마토스프와 와인 한 잔



따뜻한 국물같은게 먹고 싶었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한식집을 찾아가고 싶진 않아 도심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무난하게 따뜻한 스프 한 잔이면 좀 살아날 것 같았다. 파스타 하나, 레드와인 한 잔과 토마토 스프를 주문했는데........ 내 인생 그렇게 짠 스프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사진으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스프 그릇은 국대접만큼 컸는데 너무 짜고 신 맛에 한 다섯스푼 정도 먹었을까... 실패를 인정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파스타는....


잠시 후 파스타가 서빙되어 나왔다. 트러플이 올라간 알리오올리오였나...

여튼 이것도 꽤나 무난할 것을 예상하며 주문했지만 파스타 역시 짰다. 짜다는 말로는 부족할만큼 쓴 맛이 느껴질만큼 짜고 맛이 없었다. 그래도 파스타는 노력해서 한 절반쯤은 먹었던 것 같다.





강변에 위치한 꽤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었는데 아쉽다.

식당의 간 자체가 나랑 맞지 않는 것도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감기기운이 너무 심한 탓에 통각에 가까운 맛 외에는 뭔가를 느낄 상태가 아니었던 것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이 뒤로는 그 어떤 음식을 먹었을때 짜고 쓰다는 느낌을 가진 적은 없다.)



길을 건너려면 이 버튼을 눌러야 한다




색감 좋고 심플한 디자인이 많았다



다음 날에는 국립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전날 처참히 실패한 식사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미술관 근처에서 커피 한 잔과 간단한 베이커리를 먹고 싶었다.



라떼와 크로와상


미술관 근처에 꽤 괜찮은 카페가 있었다.

특히나 좌석이 모두 야외에 마련되어 있어 느긋하게 아침시간을 즐기가 좋은 곳이었다.



이게 그 카페의 이름같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강변을 끼고 뮤지엄스트리트가 조성되어 있다.

국립미술관을 비롯한 다양한 박물관이 있는데 시즌에 따라서는 무료 관람 행사나 그런 행사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보다도 길을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쭉 직진으로 멋진 뮤지엄들이 많다보니 다니기가 무척 수월했다.


미술관, 박물관 이런 곳으로의 외출도 무척 오랜만이었다.

내가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했었나?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맞다. 좋아한다. 그림에 대한 일가견도 없고, 딱히 좋아하는 작가는 없지만 좋아하는 스타일과 분위기는 분명히 있다. 현대적인 그림보다는 고전 작품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쿠르베의 그림 중 바다가 있는 모든 그림, 사진처럼 풍경과 사람이 함께 들어가 있는 어떤 순간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와.... 정말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한때는 열심히 전시회 정보도 찾아보기도 했었는데 그런 감각을 적어도 십여년간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국립미술관은 높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루프탑에는 자그마한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두어시간쯤을 미술관안에서 해맨 다리를 쉬어갈겸 전망대가 있는 루프탑에 앉아있었다.

기념사진 찍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멀리 보이는 서울같은 풍경도 바라보고 오랜만에 인스타 스토리도 올렸다.

피로감에 낯선 기분에 며칠 움츠러들어있던 기분이 비로소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기세를 몰아 뢰머 광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강을 따라 다리를 건너 조금 걸으면 뢰머광장 뒷편으로 이어진다.



뢰머 광장


아직도 뢰머광장에 처음 들어서던 그 순간은 잊혀지지 않는다.

구름과 햇볕이 교차하는 날씨처럼 온갖 곳에서 온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광장의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특유의 활기참이 꽉 차 있는 밝은 분위기였다.





관광지 한가운데 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가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대부분 맛 대비 비싸거나 아예 맛이 없거나) 알게 뭐람. 끌리는대로 하면 그만인게 여행이니까. 광장 한켠에 다섯개쯤 파라솔을 펼쳐놓은 매점같은 곳에서 알콜프리 맥주 한 병을 시켰다. 해가 좀 저물어가는 시간이었다면 알콜이 들어간 맥주를 시켰겠지만 한 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마시는 맥주가 맛은 있어도 나에게는 엄청난 두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아쉬운대로 알콜프리로 주문했다.



알콜프리인데도 놀랍도록 맛있었다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 독일의 알콜프리는 다르다.

지금까지 마신 알콜프리 중 이렇게 완벽한 맥주가 있었나! 햇빛을 가려주는 파라솔 밑에서 냉장고에 들어가있던 맥주를 마시는 기분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쉬지 못한동안 잔뜩 적립해서 가져온 피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와서야 드디어 기분이란 것이 회복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 곳이나 걸어다닐 기운이 온 몸에 돌고 어디든 궁금한 곳이면 들어가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이걸 찾기 위해서 이 먼 곳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프랑크푸르트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