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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의 출국

프랑크푸르트의 첫 날

by 첼라

여행이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벌써 일 년 전쯤, 독일행 티켓은 끊어두었지만 이게 지금 잘하는 짓인지는 출국 당일까지도 확신이 없었다. 맴먼스 문제로 프로젝트는 끝나기 전에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남겨두고온 팀원들 얼굴도 아른거리고 ... 무엇보다도 확신이 없었다. 이 긴 휴식이 무슨 의미가 되어주긴 할 것인가.


2024년 7월 15일

출국 이틀전까지도 출근했기 때문에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무슨 생각인지 두 달 가까이 체류기간을 잡아두었기 때문에 챙겨야하는 짐은 감당할 수 없이 많았고, 장시간 집을 비워두어야 하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빨래, 청소에 냉장고 털이까지 .... 철수한 날 4시쯤 일찌감치 퇴근해서 씻지도 않고 10시간을 내리잔 이후에는 거의 잠들지 못한채로 공항으로 향했다.


그 언젠가는 늘 설랬던 공항에서의 마지막 식사


국적기였기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서울역에서 출국을 할 수 있었지만 공항에 도착해서 밥상을 받아들어도 여전히 설레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새벽부터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온 탓에 온 몸은 땀으로 절여진 상태였고 생각보다 양이 많은 순두부찌개 앞에서도 여전히 나는 졸리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뭐가있는지도 모르겠고, 뭘해야 좋은지도 모르겠고....

아, 여행자 보험.

그것만은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한 상품을 찾아 가입하느라 밥은 먹는둥 마는둥

지금 생각해보면 절반쯤은 남겼던 것 같다.





면세에서 담배 한보루를 산 것 외에는 뭘 둘러보지도 않았다.

그냥 빨리 도착해서 호텔에서 쉬고 싶었다. 늘 긴장하는 입국심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찾아보지도 않았고 공항에서 호텔까진 어떻게 가야하는지도 알아보지 않고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기억나는 건 중간에 기내식을 먹으러 한번 깬 것 외에는 아무 기억이 없다. 이틀간의 밤샘에 가까운 날을 보내서였을까 이코노미의 비좁은 좌석과 목배게 없이 꺾어진 목의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내리 잠에 빠져버린 시간 이후


나는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프랑크푸르트 공항역


23킬로가 넘는 캐리어를 질질 끌고 어찌저찌 전철을 타고 호텔근처의 전철역에 도착했다.

전날 로켓배송을 받아온 유럽유심을 갈아끼우고 구글맵을 켠채로 해가 쨍쨍한 길을 20분쯤 걸어 호텔을 찾아들어갔다.



스칸딕 프랑크푸르트 하펜파크 호텔


싱글침대 2개의 적당한 사이즈의 아담한 방이었지만 기대했던 욕조는 없었고, 냉장고는 물병 하나 넣어둘 자리 없이 매우 작았지만 드디어 편하게 누울 수 있다는 것만해도 충분했다. 씻고, 짐을 대충 풀어두고 그냥 자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우선은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당장에 마실 물도 필요했고 무엇보다 독일에 왔으니 맥주 한 캔 정도는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다.



프랑크푸르트



2,30대의 내가 가장 열중하고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배낭여행이었다.

서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 이집트, 그리스, 포르투갈, 태국, 일본... 정신없이 여행 계획을 짜면서 돈을 모았다. 6개월, 1년정도 회사를 다니면 어김없이 적금을 해지하고 맘이 땡기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여행이 내 인생같았고 평생 이렇게 나는 여행을 다니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치만 특별한 계기라고 할 것 없이 어느 순간부터 현실에 조금씩 충실하기 시작했고 여행에 미쳐있었던 것처럼 어떤 순간부터는 일에 미쳐 살았다.


여튼 그렇게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독일은 간 적이 없었다.

어떤 날엔가 환승을 하기 위해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내린적이 있었던가... 그정도의 확실치 않은 기억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만의 여행이 독일이었던 것은 친자매같은 동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로 출국이 어려웠던 시절, 인생을 위해서 독일로 떠난 동생은 벌써 3년 가까이 독일에 머물며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싶다는 생각, 전화/메시지/사람들로부터 잠깐 떨어져있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남아있던 마일리지로 1년전 프랑크푸르트로의 항공권을 끊었던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 하펜파크


7월 중순의 프랑크푸르트는 기분좋은 정도의 더위와 푸른색으로 가득했다.

수학여행 중인 동생은 일주일 뒤 독일로 돌아올 예정이었고 그동안 나는 그저 계획없이 쉼을 즐길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출국전까지 전쟁같았던 프로젝트에 지쳐있었다. 매일 웃음속에 날이 선 말들이 오가는 회의가 이어졌고, 수행사의 임원까지 참석하는 주간보고 날이면 아침부터 긴장되는 마음에 연거푸 커피를 마셔대며 버텼다.


그래. 버텼다, 나는.

여전히 내 직업을 좋아하고 꽤나 자신도 있었고, 주변에서의 인정도 어느정도는 받고 있었지만 그 아슬아슬한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을 긴장해야했고 늘 곤두선 신경을 유지해야만 했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었던 것 이상으로 긴장을 하고 살았나보다. 마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며 익숙하지 않는 냄새들이 코끝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20분가량을 걸어 작은 마트에 도착해 미지근한 맥주 두 캔을 집어들고 나서야 나는 긴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시 20분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강변을 따라 벤치가 놓여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맥주를 마시고 쉬려던 마음을 바꿔 아무 벤치에나 앉아버렸다.



느즈막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저쪽을 보면 그저 서울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스쳐가는 냄새는 낯설기도 하고... 정말 오랜만에 낯선 곳에 와있구나.

굉장히 오랜만에 찾아온 감각에 살짝 소름이 돋은 것도 같다.



먼 시선으로 닿아있는 마천루를 보면서 드디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내일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담배 한 대를 꺼내 천천히 태우고 일어나 숙소로 향했다.




밤새 비가 왔던 것 같은데 아침엔 매우 맑았다


첫 밤은 아주 깊고 고요한 잠이었다.

며칠간 잠을 설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좁은 이코노미에서 시달린채로 와서인지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이쯤 나는 방탄커피에 한참 빠져있을때라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커피 타기였다.

내 호텔방에서 창문을 열면 전철이 지나가는 선로가 보였는데 시끄럽긴해도 한번씩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덜컹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멍하게 바깥을 쳐다보고 있다보니 종일 메일, 메신저로 쏟아지는 업무없이 존재하고 있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뭔가를 안해도 된다는 편안함보다는 무엇도 하지 않고 있다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예전같았으면 어땠을까

6개월 1년 단위로 여행을 가기 위해서 열심히 배낭을 쌌던 때의 나라면. 그때의 내가 이렇게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보낸 후라면. 아마도 아침부터 부산떨며 나가 지도와 하늘을 번갈아보면서 온갖 관광 스팟을 돌아보았겠지. 먹어봐야하는 음식들을 빠짐없이 체크하고 마음은 커녕 눈에 담을 시간도 없이 걸어다니며 온갖 박물관이며 미술관을 해맸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잔에 따라두고 멍하고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이 그냥 꽤 괜찮다. 그럴거면 서울에 있든 어디에 있든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그건 아니다. 종일 뭔가의 이유로 울려대는 핸드폰은 조용했고, 보여주기 위해서든 뭔가를 듣기 위해서든 방해금지 느낌으로 귀에 뭔가를 꼽지 않아도 된다. 의무감이 노트북을 펼치지 않아도 되고 원하면 아침부터 맥주를 마셔도 되고, 한밤중에 밥을 먹는다 해도 내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창문을 그렇게 열어둔 채로 꽤 오랜 시간을 앉아있었다.

밖으로 나갈 생각도 없었고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지금이 좋아서도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도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첫 밤을 보낸 후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프랑크푸르트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