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가 물감을 흠뻑 뒤집어쓴 이유

[구잘트, 굿즈로 읽는 아트] 베어브릭 x 잭슨 폴록

by 아보퓨레
베어브릭(BE@RBRICK) x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콜라보, 잭슨폴록의 작업실 바닥 얼룩들이 하나의 작품이 되어 베어브릭과 조우했다. ⓒ 메디콤토이


곰돌이가 물감을 흠뻑 뒤집어쓴 이유


후배에게 7센티미터 크기의 알록달록한 베어브릭을 선물한 적이 있다. 작은 도움을 준 후배에게 위트 있는 감사 표현을 하고 싶어서였다. 다부진 체격의 그는 이 자그마한 선물을 손에 들고 매우 기뻐했는데, 그 모습이 나에게 꽤나 만족감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 곰돌이는 나이와 성별을 초월하는 법이지.


키덜트(Kid+adult)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어른이 어른을 위한 장난감을 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번화가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근처 아트박스에 잠시 들러 귀여운 피규어를 구입하는 일이 더 이상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른들의 장난감 시장이 커져감에 따라 완구 업체들도 어른들의 동심을 잡기 위한 상품들을 연달아 출시했다. 오늘 소개할 베어브릭은 점차 융성해가는 키덜트 문화의 아이콘이자 가장 성공한 어른용 장난감 중 하나다.


잭슨폴록 <No. 5>, 1948,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560억에 낙찰된 현재까지 잭슨폴록의 최고가 그림이다.


베어브릭은 플랫폼 토이로 분류된다. 플랫폼(platform)은 기반이나 토대를 뜻하는데, 베어브릭의 경우 일정한 규격의 얼굴과 몸통이 일종의 플랫폼이자 캔버스 역할을 한다. 그 위에 어떤 디자인과 콘텐츠를 담는지에 따라 수천 가지의 베어브릭으로 확장되는 셈이니, 컬렉터들의 숨이 다할 때까지 신제품 출시가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짓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잘 팔리는 장난감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베어브릭을 제조하는 메디콤토이 사(社)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플랫폼 위에 보다 매력적인 콘텐츠를 올려놓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고심 끝에 내놓은 다양한 콘텐츠 중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것은 '콜라보' 베어브릭이었다. 아티스트는 물론, 패션 브랜드와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파트너들과의 협업은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해내기 시작했다.


베어브릭의 아티스트 라인은 1,000%(70cm), 400%(28cm), 100%(7cm) 세 가지 사이즈로 출시된다.


언젠가부터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거나 판매하는 공간에 가면 큰 사이즈의 베어브릭이 서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술가들과 협업을 펼친 아티스트 라인 덕분에 베어브릭이 장난감(Toy)과 예술(Art)의 경계선 어디쯤에서 뛰어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지라드의 러브하트를 시작으로 앤디 워홀, 키스 해링과 같은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베어브릭 위에 얹어지며 재미있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아티스트 콜라보를 꼽자면, 망설임 없이 잭슨 폴록 시리즈를 선택하고 싶다. 사실 아티스트 라인은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베어브릭의 신체와 관절에 의해 작품의 패턴이 잘리고 디자인이 변형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술 애호가에게는 상당한 슬픈 소식으로, 실제로 많은 구매자들이 구매한 상품을 언박싱 할 때 그림이 베어브릭 신체 구석구석에 잘 생존해있을지 마음 졸이곤 한다.


그러나 상남자 잭슨 폴록에게 이 문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는 베어브릭을 보며 아주 호탕한 웃음을 뱉어 낼 것 같다. "관절이 어쩌고 저째? 그냥 내가 뿌리고, 붓고, 흘려버릴 테니 바닥에 대자로 누워!" 그의 액션 페인팅 앞에서 베어브릭은 한 마리 순한 곰돌이이자 캔버스가 된다. 장난감이 아트가 되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 Number One(Lavender Mist)>, 1950, 친구이자 미술평론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에 의해 '라벤더 안개'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술계의 연쇄살인범 '잭 더 드리퍼(Jack the Dripper)'


잭슨 폴록은 1912년 미국 와이오밍 주 코디에서 태어났다. 미국 중서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고 자란 그는 미술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풍경화와 구상 회화를 그렸다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물감을 흩뿌리는 잭슨 폴록은 그의 나이 사십 줄에 접어들면서 등장한다. 풍경화를 그리던 작가가 어떤 이유로 물감을 끼얹고, 흘리고, 쏟아붓게 됐을까. 그의 변신에는 두 가지 결정적 계기가 존재한다.


잭슨폴록 <벽화(Mural)>, 1943, 그를 지원했던 페기 구겐하임의 의뢰로 그녀의 집 로비에 걸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첫 번째 계기는 귀인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가 만난 귀인은 멕시코의 대표 벽화가 중 한 명인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로, 뉴욕에 머물며 워크숍을 열게 되면서 잭슨 폴록과 연을 맺게 된다. 시케이로스는 잭슨 폴록에게 확장된 재료와 표현기법을 가르쳐주었다. 모래나 유리를 소재로 사용한다거나,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닌 그저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개념이 잭슨 폴록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또 다른 계기는 폴록의 인생 전반에 걸쳐 시달렸던 우울증과 알코올중독과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의 아픈 정신을 치료해보고자 정신분석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게 되면서 정신과 심리의 세계에 깊게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과 그것을 표현해보는 훈련은 그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폴록의 작품은 형태와 성질이 무너지며 추상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렇게 동쪽에서 만난 귀인 시케이로스를 통해 재료와 기법의 혁신을, 알콜중독을 치료하고자 선택했던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추상적 표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결과, 잭슨 폴록은 자기만의 시그니처 기법인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을 고안해내게 된다.


잭슨 폴록 <No. 30(Autumm Rhythm)>, 1950, 추상적으로 표현된 가을의 분위기를 느껴보자.


잭슨 폴록이 물감을 흘리는 드리핑(Dripping) 기법으로 그린 작품을 발표했을 당시, 세간은 그를 '잭 더 드리퍼(Jack the Dripper)'라고 불렀다. 이는 영국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를 연상케하는 별명으로, 잭슨 폴록의 새로운 페인팅에 대한 일종의 조롱이었다.


하지만 미술계의 선입견과 텃세를 극복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전대미문의 미술 살인마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을 대표하는 표현 추상주의의 작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대형 캔버스를 바닥에 내던지고 자신의 내면을 추상적으로 표현해나가는 그의 새로운 미술은 유럽의 미술에 대항해 새로움을 찾아 헤매던 미국 전역을 열광케 했고, 당시 그의 작품을 벽에 걸고 싶어했던 돈 많은 상업가들 줄 서게 만들었다.


이처럼 새로운 미술로 성공한 작가 반열에 오른 잭슨 폴록도 젊은 시절 피카소를 '망할 놈'이라고 욕지거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부정적인 욕이 아닌, 피카소가 미술의 혁신을 이미 다 보여줬다며 불평을 던진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런 그가 혁신적인 물감 뿌리기로 미술의 영역을 한 단계 더 확장시켜 놓았다는 것. 아마 그 또한 후배 작가들에게 망할 놈의 칭호를 얻지 않았을까.


LIFE 매거진 1949년 8월호에 소개된 잭슨폴록.




*이미지 출처

http://www.medicomtoy.co.jp/search/12998.html

https://www.jackson-pollock.org

https://www.nga.gov/collection/highlights/pollock-number-1-1950-lavender-m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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