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솔루트(ABSOLUT) x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콜라보 ⓒ 앱솔루트
그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 It's ABSOLUTely MAMAN's love
난 평생 몇 병의 소주를 마셨을까. 이쯤 되면 소주 회사에서 감사패 하나 정도 받을 법도 하지만 주위에 나보다 더 한 애주가들도 수두룩하니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러시아인들에게 보드카는 이런 비슷한 느낌이겠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전 세계 인들이 더 이상 러시아의 보드카만 떠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보드카 판매량 1위는 스미노프가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앱솔루트가 바짝 쫓고 있다. 스미노프가 본래 러시아의 술(현재는 미국 기업 디아지오 소속이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조의 술맛을 위협하는 스웨덴 술인 앱솔루트의 선전이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나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많은 한국에서 앱솔루트는 프리미엄 보드카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보드카라는 생소한 술을 '앱솔' 이라는 줄임말로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당연지사 판매량도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다. 만약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인이 이 사실을 안다면, 현재 알래스카의 주소지가 미국이라는 사실만큼이나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통계적 결과는 아무리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도 항상 사실로써 존재한다. 그 내용이 슬프던 기쁘건 간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그럴듯한 근거를 찾아보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앱솔루트는 어떻게 보드카 종주국(宗酉國)에서 태어난 스미노프에 버금가는 탄탄한 지명도를 쌓아 올 수 있었을까? 이번 경우에 이유는 아주 간단해 보인다. Absolutely art collaboration!(전적으로 아트 콜라보이다!)
1986년 앤디워홀이 그린 앱솔루트 보드카
비즈니스 세계에서 '최초의 사건'이 갖는 이점은 대단히 강력하다. 스위스 럭셔리 시계 브랜드 오메가는 1969년 인류의 달 방문 시 닐 암스트롱이 차고 있었던 첫 우주 시계로 유명한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 착륙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할 정도로 마케팅적 활용도가 지속되고 있다.
앱솔루트에게는 1986년 시도한 앤디 워홀과의 콜라보가 오메가의 달 착륙만큼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 내 2만 병 남짓하던 한 해 판매량이 콜라보 이후 1994년도에는 글로벌 판매 300만 병으로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희미했던 앱솔루트의 존재감을 단번에 부각시킨 업계 최초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 이후의 아티스트들과의 꾸준한 콜라보는 필수를 뛰어 넘은 필연의 영역이 되었고, 이후 앱솔루트는 총 800회가 넘는 아트 콜라보 횟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기념비적인 협업 중에서도 2003년 미술계의 대모였던 루이스 부르주아와의 콜라보가 단연 걸작이다. 1997년 이후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일절 외출을 하지 않을 정도로 두문불출하는 그녀에게 얻어 낸 창작물이라는 것과, 십수 년간 순수예술 분야에만 몸담던 그녀의 보기 드문 기업과의 콜라보 작품이라는것이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그녀의 조형물인 마망(MAMAN)의 거미 몸통에 앱솔루트 병이 자연스럽게 대체 되었다. 어머니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투영한 작품의 원 주제와 앱솔루트 보드카 병의 순수하고 투명한 이미지가 중첩되어 시너지를 냈다. 과감히 거미의 몸을 차지하고도 작품 전체적 분위기에 누를 끼치지 않는 앱솔루트의 유연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정도가 되면 단순히 제품을 마케팅 하기위한 콜라보가 아닌, 대중과 작가를 잇는 아트 메신저로서 협업을 진행한 앱솔루트에게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다.
루이스 부르주아와 거미
작은 소녀, 커다란 거미가 되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조각가이자 설치 미술가다. 1938년에 미국인 남편을 만나 뉴욕으로 이주했고, 2010년 타계하기까지 평생 미국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유년 시절의 경험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중세 태피스트리 복원실의 작업을 도우며 미술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녀는 사업을 돕는 일이 일종의 의무라고 느낄 만큼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고, 어머니와 작업하는 시간이 많았던 만큼 미술의 기본기도 탄탄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작품에 유독 직물을 이용한 작품이 많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어린 시절 그녀는 샤넬 등의 명품 옷만 즐겨 입을 정도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것에 비해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의 잦은 불륜과 어머니의 이른 죽음은 그녀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이 컸던 만큼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애착도 강했기에 어머니의 부재는 더욱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처는 그녀가 예술가로 살아가는데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뒤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용서와 이해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과거를 치유해 나가기 시작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페미니즘의 대표 작가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행동과 불륜으로 인한 상처 등을 작품에 가감 없이 표출했기 때문이다. 1968년에 제작된 <작은 소녀>가 대표적이다. 남근을 크게 형상화하고 <작은 소녀>라 이름 붙여 남성의 성기가 여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오브제임을 상기시킨다. 아버지라는 남성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반어적 표제가 단연 압권이다.
그녀는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사려 깊은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이 그녀의 예술 세계 전체를 반영하는 사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여성으로 겪은 상처를 나타냈다기 보다 상처 입은 주체인 '나'를 표현했다. 다만 '나'의 성별이 여성이었을 뿐. 다시 말해 성별의 구분보다 경험을 통해 얻은 개인감정을 응축하여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볼 수 있다. 자칫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딜레마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 경우에는 확실히 여성으로서의 '나'보다는 '나'라는 여성이 먼저다. 여성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도 그녀의 작품을 보고 크게 감동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현대 미술관 앞에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MAMAN> 작품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 사자 상을 수상한 'MAMAN(마망)'이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표작이다. 거미줄로 그물을 짜는 거미의 모습에서 어릴 적 바늘과 실을 이용해 직물을 완성시키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인간에게 유해한 곤충을 잡아먹는 대표적인 익충인 거미는 항상 자식을 보호하고 현명하게 지켜주던 어머니를 상징한다. 프랑스인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작품명도 MOTHER가 아닌 프랑스어인 'MAMAN'이다.
현재 그녀의 거미는 전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일부 미술관에서는 상설전시 형태로 그녀의 작품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고 있다. 모성애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담은 대가의 진심이 국경을 넘어 전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과 그리움을 거미에 담았고, 이제 그 거미는 곳곳에 자리하여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각자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듯, 그녀 역시 스스로 거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