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표지 명화의 비밀

[구잘트, 굿즈로 읽는 아트] 민음사 x 앙리 마티스

by 아보퓨레
앙리 마티스의 그림으로 문을 열다. -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민음사

민음사 표지 명화의 비밀


새해를 맞이하던 1월의 어느 날로 돌아가 보자. 올해는 헤밍웨이의 주요 작품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었고, 지독히도 느리게 읽는 습관 탓인지 시월에 접어든 지금 <무기여 잘 있어라>를 비롯한 세 권의 책을 겨우 읽었다. 헤밍웨이의 문학과 친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서점 가기'였다. 그렇게 어느 토요일, 370번 파란 버스에 올라 광화문의 대형 서점을 찾아갔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크고 기다란 나무 테이블이 떠오르는 그곳에서 망설임 없이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 하필 민음사냐고? 한두 권 모아 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찾게 되는 관성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책 표지에 실린 명화를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기 때문이었다. 미술을 좋아하는 이에겐 꽤 설득력 있는 이유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에겐 놀라 나자빠질 정도로 엉망인 변명일 수 있겠다.


책을 열지 않아도 내용을 알 것만 같아!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민음사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의 모든 책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출간되는 다수는 표지 상당부에 멋진 명화를 싣고 있다. 이는 책을 읽는 이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곤 하는데, 그림과 제목만으로 내용을 상상해보거나 완독 후 편집자가 어떤 의도로 이 그림을 실었는지 유추해 나가는 정이 몹시 흥미롭다. 를 들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표지를 장식한 카미유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이 언덕을 배경으로 엄청난 돌풍이 불어올 것임을 상상할 수 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메시지를 관통하는 놀라운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표지 디자이너와 편집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더 고생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위, 아래, 위위 아래. 도대체 뭘까? - 앙리 마티스, <이카루스>, 1947 ⓒMoMA


그렇다고 민음사가 예측 가능한 명화들만 표지를 장식하는 것은 아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이야기해보자. 이 책의 문지기는 마티스의 작품 <이카루스>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인 이카루스는 태양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지나친 욕심으로 밀랍 날개가 녹아 추락을 겪게 된다.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카루스를 춤추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오르는 리듬감을 느꼈던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이 그림이 추락하는 모습을 표현했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도 상승하는 듯한 리듬감이 묘하게 위를 맴돌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헤밍웨이, 그의 삶 또한 '잃어버린 세대'의 중심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만나보자.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모습을 보여준다. 방탕하고 광란에 빠져 있는, 추락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이 있다. 안위만을 생각하는 늙은 투우사들 사이에서 투우 본연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노력하는 로메로나, 엉망진창인 관계들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제이크를 보며 독자들은 다시 떠오르고자 하는 태양을 느낄 수 있다. 책장을 덮고 다시 그림을 감상한다. 압도되는 추락 속에서도 상승에 대한 리듬과 희망이 느껴지는 두 작품을 매칭 하다니. 민음사 이 사람들, 정말 무서운 감각일세.



포기를 모르는 남자, 마티스


학창 시절, 일주일 정도 입원하면 되는 간단한 염증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며칠 간의 입원 기간 동안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지루함과 따분함이었는데, 다행히도 그곳에는 TV가 있어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다. 오늘의 나는 상상한다. '그때 만약 TV 대신 미술 책이나, 물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한 앙리 마티스는 갑작스러운 맹장염으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바로 이 병원에서 심심풀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붓의 착 감기는 맛을 깨달았다. 그렇게 젊은 마티스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마티스의 한참 후배 장 미셸 바스키아도 병원에 입원해 접한 해부학 책이 작품 활동의 근간이 되었다. (출처: PPP Gallery)

미술을 새로이 업으로 삼은 전직 법조인의 미술인생은 그저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훈련을 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마티스는 데생과 채색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세밀한 묘사에서 어려움이 있기에 오히려 대상을 단순화하는 연습을 했고, 실제 같은 채색보다는 본인이 느끼는 색을 자신만의 리듬으로 표현했다. 그 결과 그의 아내 아멜리의 얼굴을 초록빛으로 채색한 그 유명한 <모자를 쓴 여인>이 탄생한다.


와이프 얼굴을 피오나 공주처럼 초록색으로 그린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 1905 (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이런 마티스만의 표현법이 익숙지 않았던 기성 미술계에서는 색에 대한 마티스만의 해석을 보며 "마치 야수가 그린 것처럼 투박하다"라고 혹평했다. 우리 식으로는 ‘개가 그려도 이것보단 났겠다’ 정도의 표현인 셈인데, 다행히도 파리식으로는 개가 아닌 야수인 덕분에 강아지파 신세를 면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 마티스의 야수 같은 색채는 결국 미술계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때부터 수많은 화가들이 색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시작했고,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느끼는 색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피카소마저 마티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점에서 당시 그의 러가 얼마나 대세였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눈에는 온 집안이 시뻘겋게 보인다. - 앙리 마티스, <붉은 방>, 1908 (출처: wikioo)

병상에서 미술인으로의 삶을 시작하게 된 마티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병상에서 새로운 미술 세계를 맞이한다. 말년에 십이지장암과 관절염 등을 앓게 된 마티스는 점차 붓을 잡기가 어려워졌다. 그는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한 붓대신 손에 쉽게 쥘 수 있는 가위를 집어 들고 색종이를 자르기 시작했다. 마티스는 가위로 종이를 잘라내는 행위를 조각가가 석재로 작품을 창조해내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느낄만큼 '컷아웃(cut-outs)'이라 불리는 가위질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작품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와 행복으로 가득 찬 마티스의 감정이 담겨있는 것일까? 그가 말년에 조각한 알록달록한 색종이 세계에는 유독 꿈과 희망이 가득 담겨 있는 것만 같다. 높이 오르다 날개가 녹아내려도, 추락하고 있는 그 순간마져도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미래를 꿈꾸는 예술가. 포기를 모르는 예술가 앙리 마티스는 지금 누군가의 가슴에서 또다시 떠오고 있다.


마티스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앙리 마티스, <폴리네시아>,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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