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와 지라드,죽은 자의 도시에서 마주치다

[구잘트, 굿즈로 읽는 아트] 디즈니 x 알렉산더 지라드

by 아보퓨레
영화 <코코>에서 주인공 미구엘이 죽은 자의 세계를 마주한다.


디즈니와 지라드, 죽은 자의 도시에서 마주치다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 프랑스의 몽생미셸, 중국 자금성, 인도의 타지마할. 모두가 꼭 한 번은 가고 싶어 하는 이 곳들은 모두 디즈니 영화의 모티브가 된 장소들이다. 처음 이런 사실들을 전해 들었을 때 '도대체 디즈니가 영감을 받지 않은 곳은 어디인 것인가?'라며 삐딱한 생각을 먼저 가졌음을 고백해 본다. 하지만 창의성을 요하는 애니메이션 회사라는 특성상 끊임없이 영감을 필요로 할 테니, 관광지를 비롯한 세상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다 쓸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이 이해된다. 새로운 소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스스로의 창의성을 믿고 방에 틀어박혀 봐야 아이디어가 뚝딱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럴 때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 아리스토 텔레스의 말이 떠오른다. 결국 모방에서 답을 찾는 수밖에 없고, 그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래서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가 되었겠지. 더 필요로 하니까.


멕시코의 망자의 날은 매년 10월 31일~11월 2일에 열린다.


영민한 디즈니는 해외 명소뿐만 아니라, 지역의 토속적인 풍습에서도 소재를 얻는다. 대표적인 작품이 멕시코 축일 중 하나인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코코'다. 망자의 날은 멕시코에서 조상을 기리는 큰 기념일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가족을 추모한다는 점은 다른 나라의 명절과 비슷해 보이지만 해골 분장을 한 채 축제를 즐기고 가족끼리 공동묘지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 등은 멕시코 만의 독특한 문화다. 뮤지션을 꿈꾸는 미구엘은 망자의 날에 우연히 할아버지의 기타를 훔치려다 저주에 걸리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죽은 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의문의 사나이 헥터와 함께 여행하며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느낀다. 디즈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죽음은 심장 박동이 멈췄을 때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혔을 때라는 멕시코 만의 오래된 가치를 영화에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2017년 말, 한가람 미술관에서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의 디자인 작품과 수집품을 모은 전시가 열렸다.


코코의 소재적 영감이 멕시코 전통에서 왔다면, 미술적 영감은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로부터 시작됐다. 알렉산더 지라드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민속 예술품을 수집하고 이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디즈니보다 약 50년 정도 먼저 망자의 날에 관심을 가졌는데, 1956년 영화 '망자의 날'에 자문을 했을 정도로 이 특별한 멕시코 문화에 심취했다.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던 '죽은 자들의 도시'에는 망자의 날에 매우 진심이었던 알렉산더 지라드의 미학이 듬뿍 담겨있다. 그 외에도 영화의 등장하는 해골들은 지라드의 수집품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디즈니는 잠들어 있던 망자들을 반세기 만에 소환해 지라드의 색과 패턴을 바르고 디즈니라는 옷을 입혀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입맛에만 맞으면 무엇이든 디즈니식으로 멋지게 재탄생시켜버리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운칠기삼, 알렉산더 지라드


우리가 아는 수많은 대가들이 그 이전 시대의 대가들을 흉내 내며 기초를 닦았고, 대개는 말년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어렵사리 찾았다. 그런 의미에서 알렉산더 지라드는 지독히도 운이 좋은 케이스다. 지라드는 1907년 뉴욕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영국 런던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이러한 성장 과정을 통해 남들보다 몇 발 앞서 세계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지라드는 미국으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다양한 국가의 디자인을 믹스한 글로벌 스타일의 제품들을 선보였다. 그에게 있어 한 지역의 색채에 국한되지 않는 코스모폴리탄적 작업 방식은 매우 쉬운일이었다. 유학시절 세계 각지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소재들을 잘 꺼내 쓰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 포크아트(민속예술)에서 착안한 장난감들


그가 가진 운의 절반은 다양한 나라에서의 경험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수집가였던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알렉산더 지라드는 디자이너로서 유명했지만, 동시에 수준높은 컬렉터이기도 했다. 수집품들의 대다수는 포크아트(민속예술)와 관련된 장난감들이었다. 단순히 모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들로부터 끊임없는 해석과 창조를 거듭했다. 그 결과, 순수하면서도 클래식한 지리드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갖게 되었다. 디자인의 소재를 전통예술에서 착안했기 때문에 그의 디자인은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종의 클래식의 영역에 자리할 수 있었다. 그는 수집 취미 생활을 계속하기 위한 목적으로 젊은 나이에 대도시를 떠나 시골 산타페로 거취를 옮겼다. 도시에서의 빡빡한 생활은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에는 너무 좁고 꽉 막힌 세상이었다. 지라드는 과감한 이주 결정 이후 더욱 자유로운 환경에서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언어와 우표를 만들 정도로 파이프 공화국(Fife Repubilc)에 진심이었던 어린 시절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


운칠기삼. 칠 할의 운이 있었어도 삼 할의 노력과 재능이 없었다면 현재의 지라드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어릴 적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파이프 공화국이라는 종합 디자인 프로젝트를 전개하는데 쏟았다. 시기적으로 J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 보다 몇십 년 앞선 상상 속의 나라였다. 우표를 디자인하고 화폐를 구상했으며 심지어는 언어도 만들었다. 그의 어린 시절 창대한 계획은 후에 한 기업에 사용되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는 이른바 토털 디자인을 선보 일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최근에 와서야 기업들이 '마케팅'을 넘어 '브랜딩'이라는 개념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 지라드의 밑그림이 예사로운 끄적임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결국 그의 타고난 운도, 치밀한 계획과 풍부한 상상력이 있었기에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재능과 노력마저도 타고난 천운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시기 어린 질투인 걸까.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을 대표하는 상업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


*이미지 출처

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3/2017102302077.html

출처: https://extmovie.com/freeboard/30661778

출처: https://www.shillingtoneducation.com/blog/alexander-girard/

출처: https://www.vitra.com/en-us/magazine/details/a-childhood-utopia

https://www.architectmagazine.com/design/a-new-exhibit-at-cranbrook-celebrates-the-iconic-work-of-alexander-girard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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