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마치고 아파트 후문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빌딩이 들어서면서 오픈한 편의점이다. 중국인 청년이 사장이었는데 장사가 처음인 듯했다. 제품 구색이나 점포 내외 청결, 친절도 모든 면에서 기대 이하였다. 결정적인 건 중국인들이 편의점에 모여들었다. 자연히 출입을 삼가게 되었는데 최근에 경영자가 한국인으로 바뀌었다는 현수막을 보았다. 편의점을 들어서는데 환영인사를 받았다. "어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계산을 할 때에도 미소를 살짝 띠며 나긋한 목소리로 도와주었다. 배웅인사를 받으며 편의점을 나서는데 기분이 좋았다.
십 년 가까이 다니던 대학병원을 집 가까운 곳으로 바꾸었다. 새 병원에 진료 내역서와 처방전을 제출해야 해서 예전 병원에 갔다. 몸이 아파서 가는 곳이 병원이지만 병원 문을 들어서면 심리적으로도 위축이 된다. 데스크에서 필요서류를 발급받는데 담당자의 불친절한 태도와 어투에 더욱 주눅이 들었다. 전문적인 의학용어를 써 가면서 질문을 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왜 저럴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침이니 하루 동안 받은 업무 스트레스 때문은 아닐 테고, 방문객도 나 혼자이니 바빠서 그런 것도 아닐 테고, 참 이해가 어려웠다. 무료 주차 한 시간을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집 가까운 대학병원에 갔다. 의사가 이해가 쉽도록 설명을 해 주었다. 이해가 되었는데도 간호사가 한 번 더 밖에서 설명을 해주었다. 가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몸에 밴 습관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환자를 돌봐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수납하면서 작은 실수를 했는데 담당자가 슬기롭게 처리를 해 주었다.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으면서. 필요한 접종을 집 근처 병원에서 하겠다고 하니 집 근처 병의원 리스트를 문자로 보내 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친절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친절은 받는 이도 주는 이도 행복하게 해 준다. 하지만 세상이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니 사람들의 마음에 친절이라는 싹이 자라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내가 기쁘지 않으면 진심으로 웃을 수 없다. 내가 힘들면 억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으리라. 새해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와 배려가 가득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