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e Sep 27. 2023

강아지가 아픈데, 저도 우울증입니다

7. 녀석은 어느새 지쳐가는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안다. 만약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
나를 해하려 할 때 이 못난 나를 위해
녀석은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내 앞에 서서 목숨 걸고 나를 지켜줄 것이다.


자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본다. 평화롭다. 자고 있을 때는 몸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좋겠다. 새벽에 코를 찌르는 냄새에 눈이 떠졌다. 자기 전 녀석이 쉬를 한가득 한 것을 보고 잘 때는 편하게 재우고 싶어서 기저귀를 채우지 않았다. 그 뒤 바닥이 차가워 이불을 몇 겹 접어 그 위에 올려놓고 재웠는데, 어이쿠 큰일을 본 것이다. 큰일을 볼 때 당연히 소변도 같이 나온다.


길어진 돌봄에 지친 나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일인데도 녀석에게 화가 났다. 바로 앞에 둔 배변판까지 못 간 녀석을 은연중 원망한 것이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녀석의 배를 닦기 시작했다. 이미 시간이 지나있었다. 녀석의 배가 흠뻑 젖고 털에 변이 뭉쳐있었다. 예전에 이런 상황이면 녀석이 끙끙거리며 내게 신호를 보냈었는데, 녀석은 그때마다 지쳐하는 날 기억한 것일까. 내색도 않고 그냥 그대로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미 차갑게 젖은 옷을 얼른 갈아입혔다.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약을 먹여가며 녀석을 붙들고 있는 것은 나인데 약 잘 먹으며 버텨주는 녀석을 이제는 버겁다고 지친다고 마치 짐처럼 여기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그만하고 싶다며 버티고 있는 나의 삶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예전에 나는 이 시간을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다. 내 강아지가 아플 때 더 이상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때 녀석을 곁에서 돌보고 마지막을 함께 해주고 싶었다. 근데 막상 이 시간이 길어지고 힘이 드니 본연의 이기적인, 편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나 간사한 사람인가. 이 시간이 고난이라고 여기는 나는 얼마나 바보 같은 사람인가.


분명 힘들다. 매 순간 두 마음이 시소의 양끝처럼 오르내린다. 그러나 나는 이제 한쪽에 무게를 더 싣는다. 이 시간은 분명 고난이 아니라 내 강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다. 이 고난을 왜 내게 주셨냐고 울부짖는 나를 보며 신께서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소중히 아끼는 강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인데 고난이라니.


이렇게 가야 할 길이 먼 나를 늘 기다려주는 녀석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허우적거리며 시간을 놓치기보다 제대로 사랑하고 싶다. 나는 안다. 만약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 나를 해하려 할 때 이 못난 나를 위해 녀석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 앞에 서서 목숨 걸고 나를 지켜줄 것이다. 나도 녀석을 병으로부터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으로부터 지키고 싶다.

 

잘자요, 우리 아가.


잠든 녀석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어 다행이다. 이 마음, 영원히 잊지 않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강아지가 아픈데, 저도 우울증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