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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03. 2024

머위, 안녕

쌉쌀한 봄 맛 

몰랐던 맛을 알게 될 때 봄처럼 반갑다. 엄마가 머위를 보냈다. 그것과 여러 채소들을 상자에 담아 택배를 꾸리던 날부터 어떻게 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신신당부하듯 알려주었다.

“머위 보낼 거니까 줄기 벗겨 내고, 삶아서 물에 담가 쓴맛 빼고 먹어라. 잎이랑 줄기 따로따로 손질해서 삶고.”     


이틀 전에 엄마에게 들은 정보가 생생했다. 신문지에 돌돌 싼 머위를 꺼내어 식탁에 펼쳐 놓았다. 씻어서 데치기 전에 한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래쪽부터 질긴 맛의 원인인 실 줄기를 벗겨 내었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할 수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맨손으로 그것을 벗겨 낼수록 손톱 사이에는 갈색 물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손바닥과 속가락에도 진액이 묻어 거친 느낌이 다가올 즈음 머위대 손질이 끝났다.     


큰 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팔팔 끓이기 시작하면 5분 정도 삶아 내었다. 사람들은 아주 잠깐만 한다는데 머위 잎이 거세다. 부드러운 게 좋아서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 차가운 물에 헹궈내고, 밤사이에 두 번 물을 갈아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선 제일 먼저 나물이 혹시나 물러지지 않았는지 살폈다. 줄기는 다음을 기약하고 잎만 물을 꼭 짜고는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전에 만들어 둔 쌈장에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내었다. 밥 먹기 전에 한 꼬집 들어 맛보았다. 고소하면서도 쌉쌀한 뒷맛이 밥을 부른다. 


그동안 경험했던 나물과는 다르다. 엄마가 매일 오가며 돌보는 귤나무 아래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났을 머위밭 풍경을 그려보았다. 내가 살피진 않았지만 우리 집 봄을 가득 담고 있는 듯했다. 긴 줄기와 펑퍼짐한 잎까지 머위는 온통 봄의 쓴맛을 품고 있다. 처음은 어색하지만 두세 번 경험할수록 묘한 분위기다. 예쁘다는 말로는 다 담기 어려운 꽃과 여린 초록들로 대표되는 이때 머위는 개성 강한 매력을 지녔다.

머위 줄기와 잎은 따로 삶고 잎만 무쳐내었다.

머위를 경험해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이제 세상 속으로 깨어나는 시간이니 이것을 먹고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하라는 자연의 손길 같다. 나물 맛이 쓰다고 해도 쓴 약을 먹었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 같은 건 없다. 아주 잠깐 음미해 보면 다른 세계가 열린다.      


머위 향은 우리가 몰랐던 봄 향기일 수도 있겠다 싶다. 찾으려 하지 않거나 얼마 전까지 외면해 버렸던 것. 이런 순간에 음식과 함께한 오감의 기억을 되살려 본다. 어린 시절엔 세상에 이런 맛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그때 먹었다면 이걸 어떻게 먹냐고 엄마에게 투정 부렸을지도. 


이젠 세상의 어떤 일도 나와 무관하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아는 나이다. 그래서인지 어색하고 낯선 맛이 이상하다 여기지 않는다. 몰랐던 것이기에 충분히 느껴보기 위해 마음을 열어둔다. 다른 때 보다 천천히 먹는다. 밥과 함께 할 때도 이 둘이 어울리면 어떤 조화일지 감각을 동원해서 느끼려 한다.    

  

머위나물무침이 준 즐거움은 의식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감정을 숨 고르게 했다. 매일 같은 밥상이라고 여기던 날에 이런 감정은 반가운 소식이다. 살짝 설레어서 목소리도 밝아진다. 분주한 아침에 아이의 모습이 못마땅해 살짝 화를 내려다가도 그냥 지날 여유를 주었다.      


내일은 머위대 나물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도 몇 번 해 먹었던 것이라 익숙하다. 다진 마늘과 집 간장에 들기름과 들깻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무친 다음 살짝 볶아주면 아삭하면서도 고소하다. 머위대와 잎은 양이 많아 소분해서 냉동실에 두었다. 기분이 별로 일 때, 내게 생생한 것을 선물하고 싶을 때 이것을 꺼내어 반찬을 만들어 먹으면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것 같다. 


봉지 가득했던 나물을 다듬어서 씻고 요리하고 나면 달랑 한 접시 일 때가 많다. 보이는 거품이 모두 사라지고 오롯이 진실함만이 남은 상태다. 그래서 이때만 나는 그것은 귀하고 소중하다. 이 계절에 머위를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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