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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14. 2024

식빵이 다시 보이는 날

샌드위치 만들다 든 생각

내 손으로 만들다 보면 다른 이의 것이 보인다. 점심을 오랜만에 샌드위치로 했다. 평소라면 미리 빵을 만들어 두겠지만 그것까지는 힘에 겨웠다. 동네 빵집으로 갔다. 이른 시간임에도 옥수수 식빵이 봉지에 담겼다.   

  

계산하는데 어제 것이라며 20퍼센트 할인에 들어갔다. 집에서 만들어도 하루 지난 빵을 먹는 게 다반사니 그리 이상할 게 없다. 내 지갑을 열었는데도 횡재한 기분이다. 집에 오자마자 부지런히 재료를 준비했다.     


토마토를 슬라이스 해놓고는 둥근 햄을 적당한 두께로 썰어서 구웠다. 상추를 씻어서 물기를 빼는 동안 계란 프라이를 하고, 둥근 생모차렐라 치즈까지 썰었다. 소스는 발사믹과 매실, 올리브유를 섞어서 만들었다.    

 

샌드위치를 만들려고 빵을 꺼냈다. 익숙한 빵이 달리 보인다. 잘 부풀어 오른 폭신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빵을 누가 만들었을까? 당연히 기계로 반죽했을 것이라 여기면서도 특별했다.     


어느 제빵사의 땀방울이 식빵을 만들었으리라. 그다음은 고마움이다. 밀가루와 여러 재료를 더하고 반죽한 다음 오븐에서 구워져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렸다.     

공짜로 얻은 것도 아닌데 이리도 마음이 가는 건 내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아직도 빵 굽기는 초보다. 빵은 언제나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빵집의 그것들과 비교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미 알고 있던 빵의 부드러움이나 적당히 부풀어 오르는 정도에 이르지 못함에서 비롯된 아쉬움이다.     


서너 시간 이상 공을 들여서 나온 결과물에 실망하는 일이 예삿일이었다. 빵 굽기의 전 과정을 끝내고 나면 몸을 쓴 만큼 피로가 밀려온다. 더불어 빵을 마주하고 나서 찾아오는 불편한 감정까지 더해지면 혼자만의 작은 전쟁이 일어나곤 했다.      


빵을 만드는 일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빵 굽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두니 계절을 보내고 해가 바뀔 즈음에야 조금씩 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재료의 적절한 계량, 발효 등 숫자로 기억되는 빵 굽기의 중요한 사항은 물론이거니와 직감으로 느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였다.      


빵을 만드는 일의 수고로움을 알게 되었다. 빵은 사 먹는 일이 당연하다 여기다 직접 해보니 그 이상의 것들이 필요했다.  처음 밀가루를 꺼내는 순간 마음먹는 것들이다. 아는 빵이라면 원하는 맛에 대한 바람이 담긴다. 좋아하는 빵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했다는 뿌듯함도 있다. 이런 감정의 덩어리들은 막연히 잘 될 거라는 희망에서 출발한다.      


오븐 작은 창으로 빵이 구워지는 모양을 살필 때 얼마간 자리 잡는 기다림과 설렘 그리고 꺼냈을 때의 반가움은 참으로 긍정적이다. 그러다 종종 “탁”하는 소리와 함께 오븐의 타이머가 멈추고 장갑을 낀 다음 빵을 꺼내고 나선 내가 만든 현실의 빵을 직시해야 한다. 오롯이 실망감을 마주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빵집의 제빵사들에게도 처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이런 상황에서 나처럼 복잡한 심경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식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다 다가온 빵에 관한 생각은 내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했다. 대상이 달라진 것일 뿐 살아가는 일에서 처음과 나중을 접근하는 방식은 비슷했다. 잘될 거라는 희망 속에서 시작하지만, 단계마다 속상해하면서 피로도가 쌓이고 급기야는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식빵을 만든 제빵사와 나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맛있는 빵을 만들어야겠다는 진심은 같은 것이라 여긴다. 한편으론  직업으로 빵을 만드는 일은 시간에 쫓기어 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는 일조차 잊어버리게 될까? 


이름 모를 누군가가 새벽부터 움직여 빵을 만들었다. 아침에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고소하고 따뜻한 빵 굽는 냄새가 전하는 행복은 가을날 풀숲을 거닐 때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내 옷에 붙어버린 메뚜기다.      


식빵은 잼을 발라 먹거나 프렌치토스트, 샌드위치까지 내가 아는 것에서 모르는 것까지 여러 음식으로 태어난다. 빵 맛에만 주목했던 그동안과는 다른 날이다. 빵을 만든 사람의 손길이 보였다. 양손을 들어 샌드위치를 정성스럽게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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