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런 날
휴지통을 비웠다. 검정 비닐 가득한 그것이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은 연한 주황색이 감도는 관급 쓰레기봉투다. 이미 어느 날엔가 담아둔 것이 있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 손에 있는 봉지가 그 속으로 들어갈지 확신이 없다. 한편으론 그동안처럼 온몸의 힘을 주어 꾹꾹 눌러 담으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어찌 된 것인지 이번에는 내 예상을 빗나갈 듯했다. 처음에는 힘을 빼고 요령껏 비닐에 우겨 집어넣는다.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절반을 넘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작은 공간에 밀어 넣기 위해 힘을 쏟았다.
상황을 잘 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비닐은 공기가 들어가 빵빵한 상태였다.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내어 공기를 밖으로 배출시키면 거뜬히 봉투 안으로 그것이 들어갈 거라 여겼다. 그 순간 커피 가루가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잊고 있었다. 얼마 전 방향제로 두었던 원두 찌꺼기를 버렸는데 그것이 있는 곳을 건드렸다.
쓰레기봉투와 소리 없는 싸움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른 방안을 모색할 생각이었다면 새 봉투하나를 꺼내어 담으면 끝날 일이었다. 아무리 위에서 눌러도 부피는 줄어들지 않았다. 내게 존재하는 모든 악력을 동원해 비닐 끝을 여미는 작업을 하려 했지만 이것마저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5분 이상을 쓰레기봉투와 씨름했다. 그동안은 이렇게 하면 대부분은 억지스럽지만 채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예외였다. 한참을 애써보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투명테이프였다.
종종 쓰레기 담은 관급봉투가 모이는 곳으로 가보면 테이프로 사방이 도배될 정도인 것들이 보였다. 왜 그리 억지스럽게 붙였는지, 비닐봉지 하나가 얼마나 된다고 저런 수고로운 일을 벌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른 일에는 쉽게 돈을 내어주면서도 내가 쓰다가 남은 것들의 마지막을 시원히 보내주는 일조차 사람들은 아까워한다고 여겼다.
이건 타인의 모습이 아니라 내 일이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절약 정신인지 혹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택했는지도를 모를 행동을 하고 있었다.
결국, 묶지 못한 쓰레기봉투의 마무리는 테이프가 해주었다. 사방으로 확실한 목적 없이는 절대 열 수 없을 정도로 덕지덕지 붙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밖으로 나가 그것을 두는 곳, 야트막한 언덕을 이루고 있는 곳에 던지고는 돌아섰다.
다른 때 같으면 지나쳤을 텐데 이날 따라 밤까지 내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그동안 나를 억눌렀던 것이 그리도 많은가.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없기에 쓰레기봉투에 괜한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닐까.
아니면 그 비닐 한 장에 들어가는 얼마의 비용을 아까워하는 것인가? 어찌 보면 비교적 저렴한 프랜차이즈 커피 한 잔 값도 아니다. 매번 묶음으로 사두기에 그것 한 장에 얼마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땐 그냥 지나쳤고 오늘은 달리 보일 뿐이었다.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열어 보이는 일이 갈수록 어렵다. 좋은 일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말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조심스럽다. 쏟아내면 가벼워질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제자리라는 걸 알기에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 중이다.
쓰레기봉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힘을 쓴 건 그동안의 이런 행동과도 연결되는 게 아닐까 싶다. 불가능한 것을 해낸 기분은 다른 곳에서 느끼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을 이런 작은 일상에서 맛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간 내 주변에서 잘 활용되었던 것들이 마지막을 내 손으로 마무리했다는 일종의 뿌듯함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비밀이며 흐뭇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강한 압력을 행사하는 건 지극히 부자연스러웠다. 원하는 대로 결론지어지지 않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감춰두었던 감정일 수도 있겠다.
지금 내가 어떠한지를 바라보는 일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어려운 고수의 행동이다. 대부분은 그냥 흘러 보내거나 우울하다고 뭉뚱그려 버린다. 그리고 어떤 이는 삶은 당연히 그런 거라고 한다. 어떤 장대한 꿈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보다는 그냥 태어났으니 살아가라는 것이라고 말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하는 일들 사이에서 현재의 나를 마주한다. 그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괜찮다고 하면서도 힘들었나 보다. 그것은 쓰레기봉투에 애초 들어가지 못할 것을 가능하려 하는 마음과 연결되었다.
저녁즈음에 서서히 어깨가 뻐근해왔다. 다음날 아침에는 손가락 마디가 쑤시고 손바닥은 살짝 부어있다. 홀로 얼마나 고집 피우며 애썼는지를 알 것 같다.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