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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머리에 쓰기로 했다

멈춤과 시작

by 오진미

거리를 두었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었다. 단풍 드는 계절보다는 겨울을 떠올릴 정도로 춥다. 매일 생각만 할 뿐이었다.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떠올리기만 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무엇을 하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멈춰있다는 걸 알면서도 반은 인정하기 싫어 애써 반기를 들었다. ‘매일’의 힘은 실로 강력하다. 그리고 그건 누구에게나 가능할 것 같지만 어려운 수행이라는 단어를 붙여놔도 어울린다. “하다 보면 하게 된다”라는 엄마의 오래전 말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하지 않기에 오히려 지금의 나와 반대되는 말과 생각이 커진다.

종종 챙겨보는 한국기행에 나오는 깊은 암자에 머무는 스님의 하루 생활이 그리해 보였다. 발걸음을 어느 쪽으로 옮기든 모든 것은 현재와 자연을 중심에 둔 수행이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몸은 당연히 고단할 터다. 그것이 살아가는 일이라고 노승은 허허 소리 내어 웃으며 자연스레 지난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스님의 하루는 매일 아침 앞마당에 쌓인 낙엽을 쓸고, 개울가로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작은 채소밭에서 자신이 먹을 양식을 키우는 노동에 집중한다.


매일의 일을 멈춤 없이 해나가기는 부단히 자신을 돌보지 않는 이에겐 힘든 일이다. 뜨거웠던 여름을 기점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언제나 고민과 먼 거리를 둔 적이 없기에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일상에서 습관처럼 옆에 있는 두려움과 불안에 다른 상황이 더해졌다. 고3 수험생 아이가 대학원서를 쓸 무렵이었다. 이제 성인이 되는 그에게서 그동안 달려온 내 일상이 보였다.


원서를 쓰는 과정에서 학교 선택은 마지막 날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힘들지만 애써 태연한 것처럼 보이려는 아이의 속마음이 읽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는 공부를 좀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아이가 바라는 대로 되었으면 하면서도 그 뒤로는 내가 바라는 세상에서 아이가 살아가기를 바라는 억지스러움이 있었다.


아이는 결혼생활의 시작과 현재까지를 함께했다. 지금의 아이는 내 모습이기도 했다. 조용하고 속 깊은 모습은 어딘지 쓸쓸함과 힘듦을 떠올리게 했다.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 특히 엄마는 아이의 모든 세상이었다. 지금에야 보이는 모습을 그때는 떠올리지 못했다.


내 삶이 흔들릴 때마다 아이도 같이 느꼈을 터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잘해주자는 아이를 향한 바람을 꼭꼭 숨긴 채로 뜨거운 계절을 보냈다. 혼자 울기도 했고 답답해서 온몸이 다 젖을 만큼 여름밤을 달렸다.


그러고 나면 별다른 것들이 머릿속에서 돌아다니지 않을 만큼 단순해졌다. 글 쓰는 일은 이 과정에서 밀려났다. 아침이면 써야지 하다가 오후가 되면 내일은 꼭 한다는 마음을 잡는다. 그날이 오면 다시 다음날은 달라진 내가 되어 있을 것이라며 괜찮다고 했다. 그 틈에 끼어든 것은 무엇일까? 빚진 것처럼 글에 대한 미안함은 커졌지만, 현실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작은 용기가 자랐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력감 사이에서도 근근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또렷한 현실 인식은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 먹고 싶은 걸 만들어 주는 엄마는 줄곧 그런대로 유지했다.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는 꼭꼭 감춰두었다. 그러다가도 그것이 드러나는 날이 있었다.


“엄마 지쳐?”

아이가 문득 이런 말을 걸어올 때면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 이성의 무게추가 약해졌다는 의미였다. 어떤 일 때문에 그러한지는 입 밖으로 꺼내놓지도 않으니 아이는 그냥 더운 날 밥 하는 일에 엄마가 힘들다고 여길 뿐이었다. 더 들어가 보면 내가 미뤄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다른 뜻을 감으로 알고 있을 테다. 단지 아이는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좋지 않은 걸 세상으로 꺼내놓는 건 어른이나 아이에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날에도 쓰고 싶었다. 그럼에도 쓰지 않았다. 이 말 자체로 모순 가득하다. 그냥 하면 될 것을 하지 않은 불편하지만 쓰지 않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버렸다. 마음이 힘들다는 이유는 글 쓰기를 쉬어가야 할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쓰기가 필요했다.


서늘해졌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동안 써왔던 글에서 난 얼마나 나를 보일 수 있었을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포장하는 일에 급급했던 적도 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부터는 글 쓰기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일었다. 오래 묵혀 두었던 글을 정리해서 오랜만에 브런치에 올렸다. 어제와 다른 하루가 열린 듯했다. 찬바람머리에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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