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내 몸같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병원 채플린 삶, 삶과 죽음 사이에서 환우들과 가족, 병원 스태프들을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돕는 일을 항상 잘 해낼 수는 없습니다. 직업으로 슬픔과 고통을 대하다 보면 때때로 더 이상 마음속에 울림, 공감이 생기지 않고 단지 직업적으로 환우와 가족들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근사하게 설교하며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이웃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폼나는 일들도 많은데, 나는 왜 매일 죽음을 대면하며 힘들고 슬픈 일만 해야 하는가? 특히, 병을 고치거나 낫게 하는 일도 아니고, 이야기 들어주고, 코로나 19로 병원에 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화상전화로 도와주는 일이 허드렛일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2019년 11월 첫 폭설이 내린 날 겪은 일을 기억합니다. 이면 도로 언덕길에 갇혀 큰 사고를 당할 뻔했던 상황 속에서 나의 손을 꼭 잡아 주고 내 곁을 지켜 주었던 한 백인 청년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합니다.
미국 중부의 한 도시로 이사 온 지 1년이 될 무렵, 미국의 한 채플린 협회에 전문 채플린 자격을 얻기 위해 시험과제를 우편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폭설을 뚫고 시내로 가다가 이면도로의 한 언덕길 중간쯤에 제 차가 멈췄습니다. 눈길에 바퀴가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지나가던 다른 차량에서 한 청년이 내려 제 차로 오더니 뒤뚱거리는 차를 손으로 밀어줍니다. 몇 분이 지난 뒤, 제 차가 왕복 2차선 좁은 도로 한편에 제대로 자리 잡으려고 하는 순간, 언덕길 꼭대기에서 흰색 SUV 차량 한 대가 쏜살같이 제 차를 향해 돌진해왔습니다. 그 언덕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진 겁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사고를 당해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눈길에 미끄러져 내려오던 그 차가 갓길 도랑 부분에 바퀴가 끼면서 제 차 옆 차선에 난 도랑을 따라 쭉 내려가다가 다시 도로 위로 튀어 올라 그대로 도로를 따라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제 차 옆으로 몸을 피해 있던 그 청년에게 괜찮으냐고 물은 뒤, 제 손을 한 번 잡아 주면 내가 정신을 좀 차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은 장갑을 벗고 제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그 순간 멈췄던 내 머리와 가슴에 다시 피가 도는 것 같은 온기를 느꼈습니다. 생명활동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떠나는 그 청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슬픔 속에서 내가 잡아 주는 손에도 환우들이 이런 안도감을 느낄까?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은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일 텐데...'
내가 왜 태어났는지, 태어나는 순간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 죽음의 의미가 뭔지, 나는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어쩌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그 모든 현상들을 오직 타인을 통해서 보고, 느끼고, 깨닫게 되는 이유- 나에게 선의를 베풀어 주고, 그 선한 행동을 통해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해 준 그 청년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도록 부름 받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지난 5년간 환우들의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 기록한 글을 통해 제가 얻은 결론입니다. 내 곁에 있는 타자, 나 아닌 또 다른 나, 그 이웃이 없다면 나의 태어남도, 죽음도, 그것들의 의미를 아는 일도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