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
2019년 10월 12일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어린이병원 응급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제 몸은 이미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잠시 기도를 한 뒤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입구에서 제일 끝에 있는 외상 치료실 , Trauma bay 밖으로 10여 명의 스태프들이 응급처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치료실에는 응급실 레지던트, 영유아 담당 외과의사, 어린이 중환자실 담당 펠로우, 호흡기 치료사, 간호사 등 10여 명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아기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 바로 뒤로 젊은 부부가 서로 껴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두 팔로 우는 아내를 감싸며 비교적 차분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부모들은 대기실이나 치료실 근처에 임시로 마련된 가족방에 대기합니다. 환자 가족들이 그 상황을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힘들어서도 그렇고, 수많은 의료진들이 각자 맡은 임무에 따라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응급상황은 변수가 있고 그 변수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순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분들은 바로 환자 가족들이니까요.
10 분 넘게 심폐소생술과 관련 처치가 이어지는 동안 아기의 아빠와 엄마는 두 손을 아기와 의료진들에게 향하며 기도했습니다. 저도 그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하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아기가 누워있는 침대와 두 부모 사이에 소아과 의사가 진행상황을 알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시도를 더 해보고 반응이 없으면 손을 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순간, 그때까지 침착했던 아기 아빠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열했습니다. 아내도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제 딸을 돌려주세요! 제 딸을 돌려주세요! "
저를 포함한 수많은 스태프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군 간호사, 두 손을 모으고 뭔가 되뇌는 응급운송팀 요원,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고 고통의 순간을 함께 하는 스태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죽어가는 아기, 사투를 벌이는 외상 진료실 의료진, 오열하는 부모와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 고통의 순간에 자신들도 고통을 참으며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5주 된 아기는 의료진의 노력과 부모의 애타는 기도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떠났습니다. 디브리핑 시간에 모두가 함께 고통의 순간에 침착하게 그 고통을 함께 해 준 스태프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했습니다. 특히, 급박한 응급 상황에서 침착하게 부모들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기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소아과 의사에게도 감사를 전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아기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저의 감정을 대면했습니다. 정말 슬펐습니다. 그리고, 힘들었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통상의 경우처럼 아기 부모를 그 현장에서 분리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습니다. 수차례 아기 부모에게 권유했지만 그분들이 그곳에 있고 싶어 했고, 의료진도 양해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은 편치 못할까?
사실 그건 표면적인 문제였습니다. 제 마음 더 깊은 곳에는 또 다른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기의 부모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기원했는데... 허망하게 떠나버린, 그렇게 떠나도록 내버려 둔 절대적 존재에 대한 섭섭함'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라지만 5주 된 아기가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고 심장 박동이 멈추고 그렇게 병원에 실려와 모든 응급 처치를 다 했지만 그렇게 죽은 사실... 너무 허망하고, 그 가족과 스태프들의 간절한 기도가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기도했어야 했는데...'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나락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가 회복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에 열에 아홉은 모두 제 바람과 간구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죽음으로부터 조금 초연 해지나 싶었는데 이내 넘어져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얼마 전에는 태어나자마자 한 아기를 데려가시더니 오늘은 5 주된 아기를... '
사는 곳은 달라도 오늘도 자식을 잃은 사람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 이 고통을 통해 종교적인, 영적인,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과 종교적 체험으로 우리 자신이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초연해지더라도, 예기치 못한 죽음, 그 큰 슬픔 앞에서는 어떤 교훈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저 함께 아파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