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새벽에 콜이 왔습니다. 급히 어린이 병원 응급실로 행했습니다. 5 개월 된 아기가 심정지가 와서 의료진들이 CPR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울며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병원 채플린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곁에 서서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10여 분이 흐르고, 의료진들이 하나둘씩 방을 빠져나갔습니다. 담당 의사가 곧 사망을 선고했습니다. 아기 엄마는 오열했습니다. 응급 구조사가 기도를 청했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제 손바닥에 느껴졌습니다. 눈을 감고 숨을 거둔 아기는 평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기 엄마도 진정돼 보였습니다.
힘든 새벽을 보낸 탓에 조금 늦게 출근해 신생아 중환자실에 다시 들렀습니다. 다행히 지난 5개월 간 수술과 회복을 반복했던 신생아가 퇴원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병원에 와서 처음으로 세례를 베푼 쌍둥이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형은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태어 난 날 숨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이 아기는 끝까지 살아 남아 지금 제 앞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습니다. 태어나서 5개월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살아온 아기... 제 손으로 축복 기도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잠든 아기 머리에 손을 얻고 기도를 마치고 난 뒤 제 머릿속에서 사진 한 장이 찍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벽 죽은 5개월 된 아기의 모습이 이 살아 있는 아기의 모습 곁에 마치 데칼코마니 같이 제 머릿속에 각인된 것입니다.
'5개월 아기의 죽음과 5개월 아기의 퇴원...'
왜 다른 두 사건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 한 장의 사진처럼 보이는 걸까? 한 달 넘게 또 생각나고 또 생각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왜 다른 두 사건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내 머릿속에 인식된 걸까? 이런 우연한 경험에도 이유가 있을까? 답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체험에 대해 우연히 은퇴한 원로 채플린과 나누게 됐습니다. 그분은 "삶과 죽음이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며 "결코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Life and death is like both sides of a coin. Those are one, rather than two).
여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근데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전혀 다른 두 사건이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제 머릿속에 한 장의 그림처럼 남겨진 경험을 해서 그런가 봅니다. 과연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로 순환하며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저는 삶이 죽음보다 기쁘게 느껴지고,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삶과 같은 것이 아니라 제 삶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