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이의 일상 이야기
“으이구 소심하기는!”
나는 소심한 성격이니 맞는 말이긴 한데 정말 듣기 싫은 말이기도 하다. ‘소심하다’는 말만큼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단어도 없다. ‘버릇이 없다’, ‘자기밖에 모른다’. ‘입이 험하다’ 같은 안 좋은 성격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딱히 대상이 초라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쁘게만 보일 뿐이다. ‘소심하다’는 말은 ‘널 깔보고 있어’라고 들린다. 또 ‘너 쉬운 사람이네’라고 들린다. 그래서 들으면 위축된다. 때론 반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결국 소심해서 그러지 못하지만 말이다. 들키지 않으려고 꽁꽁 숨기며 지냈는데 결국에는 들키고 말았다. 그래서 ‘소심하다’는 말에 더 기분 나쁘다. 숱한 노력도 소심함을 감추기엔 역부족이구나. 허탈함을 느낀다.
기분이 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울분이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 ‘소심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무례함 때문이다. 이기적이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허세가 심한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성격에 대해 당당히 말하는 걸 보지 못했다. 상대가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를 하는 것에 그친다. 그런데 왜 ‘소심하다’는 평가는 내 눈앞에서 당당히 내려질까? ‘널 깔보고 있어’라고 들리는 이유는 그래서 일 것이다. 따지거나 화를 내지 못할 것을 알기에 앞담화를 해댄다. 소심한 내 성격을 이용해서 소심하다는 낙인을 당당히 찍는다. 누가 그런 권리를 내줬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소심한 건 나쁜 성격이 아니다. 다양한 성격 중 하나일 뿐이다. 활발한 성격과는 상반된 성격일 뿐이고,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성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소심함 때문에 손해를 볼 때도 있고, 머뭇거릴 때도 있다. 놓치는 것도 많고 때론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문제다. 어떤 성격보다 남들에게 적게 피해를 끼치는 성격이다.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소심하다는 것은 나쁜 성격의 일종으로 치부된다. 게다가 사람들은 대게 소심하다는 것을 얕잡아보듯 말한다. 성격이 좋은 사람에게 부럽다는 듯 얘기하는 것도, 담담히 하나의 성격으로 수긍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조차 상대의 앞에서 대놓고 평가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는데 비아냥에 가까운 말투로 상대방의 소심함을 평가해댄다. 그러면서 앞담화를 해대는 자신의 성격이 더 나쁘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참 나쁜 사람이다. 그렇다고 무섭진 않다. 정확히 하자면 비열한 것에 가깝다. 그래서 더럽다.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고 싶다. 따지고 드는 사람에게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소심한 사람들은 따지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자기 편한 대로 내뱉는 사람이니 치사하지 않은가. 이런 치사한 언사에는 딱 한 마디면 충분하다. “흥”이다. "흥"하고 무시하면 그만이다. ‘소심해도 잘만 살 수 있어’, ‘피해 끼치면서 사는 것보단 낫지!’, ‘소심한 게 어때서?’라는 정신승리는 조금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괜히 마음에 담아두면서 어디서 소심함이 티가 났는지 고심하고, 소심한 게 드러날 만큼 내가 못나 보이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나를 못나게 보든, 내가 정말 못났든 소심하다고 얕잡아보듯 말하는 사람의 말은 '무시'외의 어떠한 반응도 필요치 않다. 다만 소심하지 않아서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는 마음만 가지면 된다. 이 또한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 소심이들의 자기 위로 아니겠는가. 소심한 것은 나쁜 게 아니다. 나쁜 것은 무례하게 얕잡아보듯 상대를 대놓고 평가하는 인간네들이 나쁜 것이다.
매일 같이 혐오스러운 사진을 메신저에 보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의 대화방에 '사진'이라는 단어가 뜰 때면 미리 대화방 목록에서 '대화방에서 나가기'를 누른다. 그리고 다른 메시지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사람을 앞에서 평가하는 것은 어떤 평가이든 나쁘다. 내가 평가 좀 내려달라고 자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사람들이 가장 쉽게 상대의 앞에서 내리는 부정적인 평가가 '소심하다'인 것 같다. 약간의 얕잡음을 띄는 경우도 많다. 나는 현실에서도 '대화방 나가기'를 누른다. 삭제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기억하거나 되새길 필요도 없는 하나의 혐오스러운 대화일 뿐이다. 무시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