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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Feb 11. 2020

'아무거나'란 메뉴는 없는데요?

소심이의 우정 이야기

 어느 날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친구의 전화에 그날 저녁에 보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퇴근 후에 차가 없는 친구를 데리러 친구의 직장으로 갔다. 친구의 기분이 좋지 않으니 최대한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차에 탄 친구에게 “뭐 먹을래?”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어디든 들어가자”는 친구의 말에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별 때문에 슬픈 친구와 슬픔을 위로해야 할 나 사이에도 메뉴를 정하는 관문을 통과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무거나 대충 먹자”는 친구의 말에도 결정은 힘들었다. 여러 개의 메뉴를 읊어봐도 친구의 반응이 신통찮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짜증이 났다. 이별한 아픔보다, 위로해주겠다는 선의보다 지금 당장의 메뉴 선택에 힘이 부쳤다. 결국 친구가 지난 주말 갔었던 삼겹살 가게로 가자고 했다. 그 삼겹살을 먹으며 술에 취했고 우리는 새벽까지 신나게 놀았었다. 이날이 아니고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그 이유로 친구는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늘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에게 서운함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가게를 가자는 친구를 보니 어떤 메뉴나 가게든 정말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 이별한 마당에 메뉴가 무슨 소용이었나 싶다. 어디든 먼저 보이는 곳에 들어갈걸. 친구와 자주 가던 막창집에 갔어도 됐는데. 왜 그게 그토록 어려웠을까? 하지만 그 당시에는 어려웠다. 친구를 위로해줘야 되니 친구가 속 시원히 한탄을 풀어놓을 분위기의 가게를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메뉴가 친구의 입 맛에 맞아 안 좋은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랬다. 또 술을 한잔 기울이면서 먹기 좋은 메뉴여야 했다. 마지막으로 친구의 여자 친구와 마주칠만한 곳은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다 핑계였을 뿐이다. 많은 것들을 고려한 것 같지만 종합해보면 고려한 것은 딱 한 가지다. 바로 친구의 호응이다. 내가 메뉴를 말했을 때 친구의 긍정적인 반응, “바로 그거야”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만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 나오지 않으니 끝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다. 결국 위로해주고 싶은 친구의 취향이나 기분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내 결정에 호응받고 싶은 심리였을 뿐이다.      


 그런 심리 때문에 소심이들은 항상 결정 장애에 시달린다. 호응은 받고 싶은데 그럴 만큼 좋은 결정을 내릴 자신이 없다. 부족한 자신감은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내 결정에 내려질 평가에 겁부터 난다. 그래서 결정을 피할  틈이 생기면 덥석 파고든다. 누군가가 먼저 메뉴를 말하면 얼른 긍정의 신호를 보낸다. “그건 좀 별론데”란 대답을 피할 수 있다. 각자 주문을 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과 같은 걸로 주문해버린다. “맛도 없는 그걸 왜 먹냐”는 반응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별한 친구처럼 먼저 메뉴를 선택할 의욕이 없거나 나와 같은 소심이들끼리만 있을 때는 아무도 먼저 결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때?”로 시작하는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피자 어때?” “삼겹살 어때?” 좋은 반응이 나올 때까지 던져본다. 무언가 제안을 하고 결정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결정은 상대가 해야 한다. 자신이 받는 부담과 압박을 은근슬쩍 상대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상대의 취향을 배려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참 비겁하다. “내가 너에게 맞춰줄게”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이 부담감을 네가 좀 안아야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을 상대에게 미루는 문제에 있어 나와 소심이들은 변명의 거리가 없다. 누구나 그렇다는 위로도, 자신감을 가지라는 응원도 할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부담감을 상대에게 떠넘겨버리는 나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대를 위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그러니 과감히 고쳐야 한다. 혹여 뻔히 공감을 없지 못할 만한 결정이라도 내려야 한다. 그리고 평가받아야 한다. 나쁜 평가가 이어진다면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외식 메뉴를 선택한다면 약속 전에 좋은 음식점을 알아보고, 평소 친구의 취향을 기억해두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카테고리만 나열하며 “이거 어때?”라며 결정을 떠넘기기보다 “이게 먹고 싶은데 혹시 좋은데 알고 있니?”라는 진짜 질문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이다. 사람들의 평가가 두려워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꼭 내 몫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자꾸 모른 척 피한다는 것은 나쁘다. 이제는 우리의 부담감을 되찾아와야 한다. 좋은 것만 내 것 일순 없다. 비겁하게 상대를 위하는 척하며 떠넘겼던 자신의 의무를 이제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이제라도 남을 위하는 위선에 숨어 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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