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버지 애인 모시고 제주여행 1
아빠와 아줌마와의 제주 여행 마지막 밤이었다. 주차해놓고 호텔로 올라가는 길에 아줌마가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공항에? 한 번 물어보고 전화할게."
아빠한테 물어본다는 것 같았는데 아무 말씀도 없으셔서 내가 잘못 추측했나 보다 하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 호텔방에서 약간의 정비를 했다. 짐 정리를 하다가 먹다 남은 제주마음샌드가 있어서 아줌마에게 부산에 들고 가라고 했다. 제주에 도착하기 전 파리바게트 어플로 총 3박스를 예약 구매했는데, 하나는 여행하면서 셋이 다 나눠먹었다. 땅콩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잘 드셨다. 한 박스는 먹다가 4pc가 남았고, 남은 한 박스는 내가 들고 가서 먹을 참이었다. 들고 가라고 내민 4개의 마음 샌드가 찌그러질 것 같아 락앤락 통에 담아 드렸다.
"이거 깨진 거 아니야?"
일회용품을 줄이고자 해서 플라스틱 락앤락을 들고 다니는데 약간 금이 가 있었다. 아줌마는 기어코 그런 결점(?)을 찾아 묻는데 이게 받는 게 미안해서 그런 건지, 늘 내 결함을 찾아내기 바빠서 그런 건지 의중을 잘 모르겠다.
"아니에요. 제가 들고 다니고 계속 쓰는 거예요. 만약 깨지면 이제 버리세요."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자기는 소고기만 먹지, 돼지고기는 안 먹는다며 큰소리치는 아빠에게 '제주도 왔으니까 흑돼지 먹는 거지!' 한 번 면박을 줬다.
"나는 돼지고기는 생전에 먹어본 적이 없다. 소고기만 딱 입맛에 맞지."
"실제론 소고기가 몸에 안 좋아. 소고기 기름이 몸에 안 좋다잖아. 돼지고기는 돼지고기만의 맛이 있다 아이가. 소고기 먹는 사람들은 비싸니까 괜히 '우쭐대는 맛'에 먹는 거지."
돼지고기 안 먹는다는 소리를 백 번쯤 들었을 때, 난 다시 한번 아빠를 비꼬았다. 아빠를 정면으로 보고 비꼬기에는 미안해서 아줌마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소고기가 싼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난 소고기는 절대로 안 먹는다.'며 우쭐댈 아빠였다.
"흑돼지는 그나마 먹을만하네. 난 처음 먹는다, 돼지고기는."
과장과 허영과 거짓말로 범벅된 말들에 3일 동안 지쳐 초점을 잃고 있었다. 아빠가 내 눈앞에서 손을 훽훽 흔들어서 짐짓 안 힘든 척, 더 맛있는 척하며 저녁을 먹었다.
호텔방에 돌아와서 아줌마는 입을 뗐다.
"OO이가(아줌마 딸) 공항에 데리러 온다는데 오라 할까요?"
괜한 자존심에 지하철 타면 된다고 큰소리칠 줄 알았던 아빠는 수긍하는 눈치였다. 나는 모르는 척 욕실에 들어가 목욕물을 받았다. 화장을 지우고 욕조에 들어가 앉아있는 동안 내 몸의 피로에 대해 살피기보다는 아빠가 김해공항에 도착해서 아줌마 딸을 만나 차를 얻어 타는 상상을 했다.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해서 미안해하실 텐데, 손에 뭐라도 들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제주도 다녀오는데 기념품이라도 주면 괜찮지 않을까? 제주마음샌드 하나 남았는데 드릴까? 내가 먹으려고 샀는데.... 그나저나 유통기한은 충분한가? 줬는데도 욕먹으면 안 될 텐데. 목욕물에 빠져 있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미리 사 둔 제주마음샌드를 슬그머니 들춰보니 유통기한이 꽤 남아 있었다. 끝까지 '내가 먹을까...' 고민하다가 아빠에게 내밀었다.
"이거 아줌마 딸 만나면 드려. 그래도 제주에서 가는데 손이 민망할까 봐..."
아빠는 덥석 받더니,
"와, 이거 맛도 없는 거 다 토할 텐데~"
"내가 어렵게 산 거야. 예약까지 해서 구매한 거다. 제주에서밖에 못 산다."
"뭐 이거 맛도 없는 거 먹겠나."
아빠는 여행하면서 한 박스를 혼자 다 먹은 셈이었다. 장난이라는 걸 알았지만 속에 벌레가 꼬이는 기분이었다. 내 기분은 모르는 채로 아빠는 TV를 걸며 껄껄 웃고 있었다. 기분을 가라앉히려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열이 더 뻗쳤다. 내가 왜 얼굴도 모르는 아줌마 딸에게 저걸 줘야 하지? 내가 가서 먹을 요량이었는데 아빠는 어쩜 저렇게 덥석 받지? 아빠는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지난 3일 간 쓴 돈과 운전한 시간과 아빠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추느라 고생한 것들이 주르륵 스쳐갔다. 사실 스쳐갔다기보다 내 머리를 잠식했다.
"내놔."
"???"
"나 기분 너무 나쁘니까 내놔. 내가 왜 주고도 욕먹어야 해?"
아빠는 당황했고, 옆에서 아줌마가 끼어들었다.
"아빠가 장난친 거잖아~"
"장난이지."
"장난이고 뭐고 너무 기분 나쁘다. 내가 어렵게 산 거라고 했잖아."
아빠 손이 제주마음샌드를 보호하듯(?) 올라가 있었다. 뺏기는 그렇고 손을 계속 내밀고 있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빠가 주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미쳤냐. 준 걸 왜 뺏어. 나 자신이 너무 치졸하다. 그만해. 여기서 그만해.
그러나 자존심에 제주마음샌드를 내 캐리어에 넣기까지 했다. 아빠의 곤란한 얼굴을 보니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만해.
"장난이다... 가져가라."
아빠는 또 냉큼 받았다. 얄미웠다.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난 애써 아빠의 곤란한 표정을 지우려 했다. 내가 기분 나쁜 걸 티 냈으니까 됐어,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참지 않아서 다행인 거야.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 상대방도 내 기분을 알 거 아니야.
하지만 아빠는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여행 끝난 지 4일째에 카톡이 왔다.
'과자 맛 없다에.성질머리같네'
온몸에 열이 확 올랐다. 기분이 나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나를 비꼬는 것처럼 해석이 되었다. 내 성질이 더럽다고?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를 정녕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말 같았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줌마랑 같이 살기 싫다고 울자 나를 내쫓았던 사람이었다. 내가 화를 내면 그 화를 이해하거나 수용해주기보다는 '성질이 더럽다'라고 다시 한번 나를 비난했다. 똑같은 패턴이었다. 내가 아빠 입장을 생각해서 준 거였는데 안 좋은 소리 들어서 서운한 마음을 아빠는 이해를 못 하시는구나. 내가 더 잘 설명했어야 했나?
아니겠지. 혹시 다른 의미는 아닐까? 저 카톡 문자는 내가 아빠의 사진을 보낸 다음에 온 문자니까 자기 사진을 보고 자조적으로 한 말은 아닐까? 자기의 사진 모습이 못나서 그런 성질머리 같다고 비유한 건 아닐까? (가능성이 희박하다)
육지로 올라오기 전 제주공항 파리바게트를 다시 한번 갔다. 제주마음샌드와 심지어 한라봉 제주마음샌드까지 구매했다. 나만 먹을 거야. 아무도 안 주고 나만 먹을 거야. 나를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분한 마음으로 먹어 치우는데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