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버지 애인 모시고 제주여행 9
아빠는 나를 포함한 타인을 무시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무시한다는 생각도 했다.
"너네는 내가 돈 다 까먹었다고 무시하제? 나도 너희한테 뭘 가르쳐주고 싶지가 않다."
본인이 마치 대단한 걸 가지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자주 하는 말이었다. 아빠랑 떨어져 지낸 지도 15년이 넘어서 종종 잊고 지냈는데 여행하면서 3박 4일을 붙어 있다 보니 점차 나도 아빠의 말이 듣기가 싫고, '아빠가 뭘 안다고' 하면서 무시하는 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빠에겐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마치 특별한 것을 지닌 듯 얘기해서 계속 속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을 익히기 어려웠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일으키는 투사적 동일시를 잘 알아차리고 활용하라고 하는데 체화하기가 어려웠달까. '투사'는 내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이나 생각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두는 걸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A를 싫어하는데 A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혹은 내가 A를 좋아하지만 A가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투사적 동일시'는 자신이 견디거나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을 타인에게 넘겨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떤 감정과 행동을 하게끔 만든다. 'A가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투사하면서 실제로 A가 나를 싫어하게끔 만드는 결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투사는 실제로 A가 그런 행동을 일으키면서 결론적으로 나의 생각과 동일하게 된다.
아빠는 자기가 타인을 무시하면서 남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투사'했고, 사람들은 실제로 아빠를 무시하게 되었다.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난 것이다. 아빠는 가진 것도 없으면서 가진 척하네. 아빠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네. 아빠는 뭐가 잘났다고 저럴까? 속으로 짜증이 많이 났다.
친구나 회사 동료에게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난다고 하면 짜증이 나는 것에서 그치면 된다. 그러나 아버지나 내담자는 조금 달랐다. 아빠를 무시하게 될수록 내 가슴이 어두워졌다. 죄책감이 일었고 '아빠 밑에 태어난 나는 뭐지?'라는 내 존재에 대한 불안감도 피어났다. 아버지를 존중하고 잘 따르는 착한 딸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아빠를 무시하게 될수록 나는 거리를 뒀다. 이건 내 게 아니야, 아빠 거야. 근데 아빠는 왜 이렇게 나를 무시하는 거야? 또 화가 났다.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지."
아줌마나 나를 앞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줌마와 나에게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메시지임과 동시에 너네는 그 정도 급이 안 된다는 비난이 섞인 말이었다. 아빠는 자꾸 고립되고 외딴섬으로 자신을 집어넣었다. 어릴 때는 곧잘 물살에 휩쓸려 그 섬에 당도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리를 두려고, 섬은 섬대로 두려고 노력했다. 버림받은 기분과 쓰레기가 되는 기분이 다시금 들었다.
육지로 올라와서 2주 정도 옅은 우울감에 빠졌다. 커피를 무슨 5, 6천 원씩 주고 마시냐며 아빠가 극혐하던 카페에도 여러 군데 갔다. 일부러 카페에 찾아 가 커피를 사 마시고, 디저트를 먹었다. 오빠에게 조카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귀여운 아기 얼굴을 보니 내 얼굴도 꽃핀 것처럼 환해졌지만 조카는 오빠와 닮고, 오빠는 아빠와 닮았기에.... 비슷한 생김새의 얼굴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느낌이 들까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고, 약간의 우울감을 겪고 있다고 하자 주변 사람 몇몇은 왜 아빠와 여행을 갔냐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아빠와 거리를 두라는 조언을 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걸 염려하는 뜻이었다. 내가 힘들었던 점에 대해 이해받는 느낌도 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왜 이 여행을 선택했고 감행했는지에 대해서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제 겨우 2년째였고, 나는 아무리 이상한 아빠일지라도 이 사람이 나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를 염두에 두며 나는 내가 할 도리를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자꾸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내가 얼마나 아빠를 사랑하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집단상담 선생님께 내 아버지에 대해 설명했을 때 "당신이 마주한 실존이네요."라고 하셨는데 그 말은 내가 어떻게 하든 아빠의 성격이나 관점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내가 이 이상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웃긴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현실은 바꿀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어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빠에게 여행을 제안하는 것, 편안한 숙소와 이동수단을 제공해주는 것, 농담을 받아주는 것, 농담하는 것, 아빠의 고통을 어림짐작하는 것, 당신의 비난에 넘어가지 않는 것, 내 안에 외로움과 우울함이 다시금 찾아왔음을 알아차리는 것, 이것은 내가 객관적으로 못난 사람이거나 쓰레기여서가 아니라 아빠가 일으킨 역동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 아빠를 충분히 미워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만약 내담자가 상담자인 나에게 투사적 동일시를 일으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독 싫은 내담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남들에게 헌신하고 배려하는 듯했다. 본인은 '절대로' 공격적이지 않고 화를 내지 않는 순교자 같은 사람이었다.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나쁜 사람이었다. 내가 하는 말들은 그에게 있어 냉정한 말들이었고, 차가운 현실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냉혈한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아마 자기의 어둡고 공격적인 태도를 소화하지 못하고 통합하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상담자인 나에게 공격성을 투사하고, 그런 행동을 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부드럽고 여린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돌봄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본인은 언제나 나쁜 놈이었고 상담자는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다. 이론서에서는 '돌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성장과정에서 적절한 돌봄을 못 받아봤기 때문이라고 해서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주 뛰어나고 민첩한 상담자는 아니기 때문에 초반에 이런 역동을 잘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적어도 몇 회기가 지나서야 '어, 왜 이 사람이랑 상담하기가 싫을까?', '이 사람만 만나면 내가 너무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네.'라고 자각이 된다. 자각을 하고 나면 이런 감정이 나로 인한 것인가, 상대방(내담자)에 의한 것인가를 알아본다. 최근에 나에게 별 일이 없고, 다른 내담자에게는 이런 감정이 안 든다면 보통은 상대방의 것인 경우가 많다. 이 감정은 내담자의 주변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감정일 것이다. 내가 이 사람이 싫어진다면 대체로 내담자의 주변 사람들도 내담자를 싫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휘둘리지 않고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내담자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점들에 대해 논의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밝히지 않기도 한다.) 충분한 자기 이해가 이루어지고 나와 상대방 사이에 공감적인 연결감이 생긴 상태에서 새로운 행동 변화나 생각 전환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빠는 나의 내담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아빠에게 이러한 시도는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아빠의 상담자가 아니라 귀여운 딸로 영원히 남고 싶은 마음이다.
Image: Photo by Marc-Olivier Jodoi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