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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Oct 11. 2022

비춘 삶

아버지와 아버지 애인 모시고 제주여행 8

  아빠와 아줌마에게 제주 여행을 제안하고 나서 어디를 가볼까 고민했을 때 '제주'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typical) 곳을 가야 될 것 같았다. 아빠는 40년 전에 한 번 와봤고 아줌마는 처음 오시는 거였기 때문이다. 한라산, 만장굴, 성산일출봉, 비자림, 천지연폭포, 정방폭포 등. 이 중에 천제연 폭포나 엉또 폭포가 낄 자리가 있을까? 해결책은 '1박 2일(TV 프로그램)에 나왔다!'라고 하면 될 터였다. 비가 오면 '빛의 벙커'나 '아르떼 뮤지엄'같은 곳에 가서 미디어 아트를 보면 의외로(?)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잠수함을 타는 경험도 재밌어하지 않을까 짐작했다. 하지만 아빠는 늘 예상 밖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또 나는 아빠에 대해 많이 모르기 때문에 나의 계획과 추측이 어긋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가짐 또한 미리 준비했다.

  여행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한라산에 가려고 성판악 코스를 예약해두었으나 비도 오는데 아빠와 아줌마가 등반하기에는 경로 우대(...)에 해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빠도 '힘들 것 같아서 가지 않겠다.', 또는 '등반에 자신이 없다.'와 같은 말은 하지 않고 은근슬쩍 아무 등산용품을 가져오지 않는 것으로 본인의 뜻을 전했다. 아빠다운 방식이었다. "빌리면 되지. OO 유튜브 못 봤냐? 히말라야를 가도 다 빌리면 돼." 어디서 보고 들은 단편적인 지식도 아빠는 모두 '자기의 생각'처럼 말했고 OO 유튜브를 안 보는(못 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

  

  "비가 와서 한라산은 무리일 것 같다. 그냥 성산일출봉 올라갈까요?"

  "제주 하면 한라산 아니냐. 한라산 왔다고 딱 보여줘야지."

  

  아빠는 계속 아줌마를 인형처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찍기보다는 모든 비석 앞에서... 만장굴 간판 앞에서, 성산일출봉 비석 앞에서, 심지어 올라가지도 않은 송악산 비석에서도 아줌마를 앞세웠다. 물론 본인 사진도 찍긴 했지만, 아줌마를 찍어주기 바빴다. 마치 '내가 너를 이곳에 데려왔다. 너를 여행시켜준다.' 내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내적인 만족감과 행복감보다는 타인에게 반영되는, 인정받는 것이 아빠에게 더 중요했고 그것 자체가 아빠의 삶이었다.

  부모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 여행지 스폿마다 사진을 찍어 두면서 '이 부모의 고생과 고마움을 두고두고 기억해라.'는 태도라면 아이들은 그 여행이 재밌을지 의문이다. 내가 아이일 때 좋았던 기억은 부모가 날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니라 함께 놀 때였다. 롯데월드에서 혼자 회전목마를 탈 때도 좋았지만 부곡하와이에서 같이 온천했을 때가 더 좋았다. 영화 보라며 용돈을 줄 때도 좋았지만 같이 눈썰매장에서 썰매 타고 누가 누가 더 빨리 내려오나 경쟁했을 때가 더 재밌었다. 

  아빠가 아줌마를 말에 태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했다.

  "미리 말하지. 그럼 예약해뒀을 텐데."

  "제주도 하면 말이지. 지나가다가 보이는 곳에서 찍으면 되지."

  "입장료나 말 타는 값 내야 될 걸? 보자... 얼만가... 아빠랑 아줌마랑 둘이 타."

  "나는 안 탄다."

  여기서 아줌마가 화가 났는지, "당신은 그 안 한다는 소리 좀 하지 마라!"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아줌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본인은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게 해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게 화가 날만 했다. 나 자신을 대상화시키는 것, 나라는 사람을 피동 형태로 만드는 건 화가 날만한 일이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진단 기준은 9개 정도가 되지만 이런 진단 기준 보다도 핵심적인 특징은 타인을 자기를 비추는 거울(또는 호수)로 생각한다는 점, 즉 자기를 비추는 도구로 만드는 점인 것 같다.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보다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거나 본인의 찬사나 인정을 위한 군중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경우에 상담소를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호수에 비친 모습에 푹 빠진 나르키소스처럼 맥락(환경) 속의 자기를 종합적으로 살피기보다는 반영된 자기 모습 하나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두 번째 핵심적인 특징은 속이는 것이다. 진짜 자기가 아니라 비춘 자기로만 스스로를 내보이다 보니 옆에 있는 사람은 자꾸 속는 느낌이 든다. 결국 한라산이 아닌 성산일출봉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어차피 산이어서 사진 찍고 한라산이라고 하면 되겠네."

   왜 성산일출봉을 성산일출봉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처음 '비자림' 근처를 지나갈 때였다

  "여기 비자림도 참 좋은데."

  "? 니는 언제 와 봤는데?

  비자림에 대해 모르는 눈치였다.

  "난 스무 살 때 친구랑 왔었다. 그때 스쿠터 타다 넘어져서 다리 부러졌잖아. 여기 예쁘다. 나중에 시간 되면 한 번 걸어도 되겠다."

  아빠는 별 대꾸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또 '비자림' 근처를 지날 때쯤 아빠가 먼저 "아, 여기 비자림 유명한데~ 엄청 예쁘디." 하며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아줌마와 나는 비자림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다. 이렇게 교묘하게 말을 바꾸는 것도 어릴 때는 잘 알아차리지 못해서 뭔가 이상하다, 의아하다는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심리검사 중에 문장완성검사(SCT)라는 게 있는데 여기는 빠진 문장을 수검자가 떠오르는 대로 작성하면 된다. '우리 아버지는'이라는 문장 다음이 빠져 있었는데 20대 초반의 나는 이어지는 문장으로 '이상하다'라고 썼다. '우리 아버지는 이상하다.'


  웅대한 자기상을 가지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매우 심하다. 거대 자기를 만드는 이유는 초라한 자기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담사로 있으면서 3 사례 정도 만난 적이 있는데 모두 장기 상담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상담이라는 것도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오기보다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상담확인서'를 받아 인사이동 자료로 활용하려든지. 상담사도 자기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더불어 상담사인 나를 무시하는 태도도 불쾌했다. 그러나 드러내 놓고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역시 상담사님은 서울에 사시니까 잘 아시겠네요. 여기 지방 사람들은 다 수준이 낮거든요."

  "저는 상담사님밖에 없어요. 상담사님만 믿습니다.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요."

  논리나 근거 없이 나를 추앙하고 곧추 세웠다.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는 말은 곧 상담사인 나 역시 무시한다는 말과 같았다. 그에게 나는 다른 사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말뿐인 아첨으로 자기가 인정받고 싶은 만큼 나를 비행기 태우는 느낌이었다.   


  직업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질수록 함부로 누군가를 진단하는 일에 더욱 조심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도 했다. '성격장애'라는 진단 역시 쉽게 이름 붙이기는 어렵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한다고 해서도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거나 칭찬받고 싶은 모습이 두드러진다고 해서 성격장애라고 판단하진 않는다. 타인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측면이 있고,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조망이 안 되는 경우(자각이 안 되는 경우)가 진단의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아빠는 심각했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좌절이나 결핍 경험을 통해 자기 이미지나 자기 개념에 손상을 받았을 때 이를 그대로 수용해주거나 보호해주는 대상이 부재한 환경에서 아이가 스스로 '이상화된 자기상'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즉 어릴 때는 충분히 어떤 대상으로부터 비치고, 돌봄과 보호, 지지와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호수에 비친 자기도 보고, 거울에 비친 자기도 보는 등 다른 대상들에게 적절히 수용받으면서 자라는 경험이 필요하다. 특히 상처되는 경험을 했을 때 아무도 이런 고통을 비춰주지 않으면 진실한 자기보다는 호수에 비친 자기상(狀)으로 보잘것없는 자기를 숨긴다고 말한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는 친척들을 통해서 들었다. 할머니가 얼마나 의존적이고 충동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러나 아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서도 아주 자애롭고 위대한 인물인 것처럼 말했다. 아빠에게는 그러한 부모여야 했을 것이다.


  "특정 정신병리의 발병은 어떤 촉발 사건과 고통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격장애는 인생 전반이 고통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참 공부하고 있을 때 들은 말이었는데 마음이 욱신 아팠다. 아빠의 고통스러운 삶을 잠깐 상상했고, 고통을 '고통스럽다'라고 말하지 못했을 상황도 생각했다. 지금도 아빠는 자신의 힘듦이나 어려움을 마주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나는 똑똑하고 세상 사는 법을 다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 100억을 번다'는 것에 대해 떠벌렸다. (나는 응원해줘야 하는 대상이고, 응원을 해주든 안 해주든 본인을 무시한다며 날 비난한다.) 아빠의 춘추는 70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대한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성격적인 측면이기 때문에 바꾸기 어렵지 싶다. 


  제주 여행 역시 아빠에겐 얼마나 남에게 잘 비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더 이상 아빠 옆에 남아있는 대인관계는 아줌마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줌마는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아줌마의 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랑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중독자들과 뭐가 다른가 싶기도 했는데 달랐다. 아빠는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기 대신 자랑할 수 있는 대상인 아줌마(=호수)가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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