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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Oct 10. 2022

놀릴 수 있어서

아버지와 아버지 애인 모시고 제주여행 7

  아빠는 장난기가 많고 좀 웃기다. 감정에 솔직하기도 하고 그래서 순수해 보일 때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성적표에 부모님의 사인과 함께 한 마디 적어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아빠에게 들이밀자 아빠는 '딸 놀리는 재미로 삽니다.'라고 적었던 것 같다. "아, 이렇게 적으면 어떡해!"라고 투덜댔지만 사실 그 말이 퍽 다정하게 들렸다. 아빠는 나랑 노는 게 재밌구나.

  아빠는 피부가 까매서 어릴 때부터 하얘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까만 것만 보면 '어, 아빠다!'하고 놀렸는데 제주도엔 정말 까만 게 많았다. 흑돈, 현무암, 밤에 보는 바다, 때때로 밭 색깔까지...! 아빠는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나를 '돼지'라고 놀렸기 때문에 우리는 '흑돈'이라는 글자만 보면 서로 약 올리기 바빴다. 여행 전날 아빠가 보낸 '흑돼지 많이 먹고 싶다'는 카톡은 농담 섞인 말이었다. 아빠도 이 여행을 설레 하고 있다고 느꼈다.

  "또 흑돈이다! 여기도 흑돈!!"

  "역시 흑돈 눈에는 흑돈밖에 안 보이나 봐. 아빠 친구들 먹어도 되겠나?"

  피곤한 와중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놀렸고 우리는 낄낄거렸다.


  아빠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운전할 수 있을 때) 제주도에서 운전을 한 번 해보면 좋지 않겠나 해서 해보겠냐고 제안했다. 아빠는 해안도로를 달려보고 싶었다며 냉큼 운전대를 잡았다. 아빠는 운전을 하면서도 어찌나 말이 많은지 조수석에 앉은 내 왼쪽 귀에서 피가 나진 않나 한 번씩 손을 대볼 정도였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내비게이션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나는 안내 음성이 말하는 걸 반복해서 아빠에게 말씀드려야 했다(차라리 내가 운전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당신은 운전할 때 말 좀 하지 마라니깐."

  뒷좌석에서 아줌마가 단단히 경고를 주는데 난 웃음이 빵 터졌다. 

  "아빠한테 말하지 말라니, 거의 고문 아닌가?"

  아빠랑 아줌마도 빵 터졌는데 공감이 많이 됐던 모양이다. 잘 때 빼고 아빠 입은 먹거나, 말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회전, 좌회전 안내가 나올 때마다 "아빠, 말하지 마!!"라며 명분 있게(?) 아빠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었다. 내가 운전하면서 조수석에서 말이 너무 많을 때는 "아빠, 운전할래?" 제안하며 아빠의 수다스러움을 자각시켰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걸 보면 나는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믿음이 없다면 아빠를 놀리거나 장난치거나 심지어 (제주마음샌드 사건처럼) 화를 낼 수 있을까? 어떻게 대해도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 어떤 식으로든 아빠라는 자리에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나는 가소로운 딸의 입장에서 마음껏 놀려댈 수 있는 거 아닐까.

  아빠가 아닌 사람들과 만날 때는 '이 말을 하면 기분 나쁠까?' 늘 신경을 썼고 불편한 걸 적절히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때론 수동 공격적인 말도 했다. 가끔은 머리채 쥐어 잡고 싸우는 친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다. 날감정 그대로 싸우고 화해하고.

  아빠랑은 치열하게 싸울 수 있었다. 물론 미성숙한 아빠였기 때문에 달래고 위로하는 쪽은 나였다. 학창 시절에도 내가 본인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나에게 가르쳐주거나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빠, 기분이 왜 안 좋아?" 나는 여러 번 묻고 수십 번 추측해야 했다. 집단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부모라기보다 애인 같은 아빠였다. 그래도 나에게 유일한 아버지였다.

  

  가끔은 엄마, 아빠의 연애 시절을 상상해보곤 했다. 외할아버지의 형제가 도서관 관장으로 일하고 계실 때, 엄마가 그 도서관에서 잠깐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에 아빠는 그 도서관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하다가 엄마랑 눈이 맞았다고 했다. 까무잡잡하고 날씬한 아빠와 하얗고 귀여운 엄마는 꽤 재밌게 연애했을 것 같다. 아빠는 엄마에게 장난을 많이 쳤을 것이고 엄마는 살짝 눈을 흘기며 웃지 않았을까? 아줌마가 나무 밑을 걷고 있을 때 아빠가 나뭇가지를 잡고 와르르 흔들어서 나뭇잎에 쌓인 빗물이나 눈 같은 걸 아줌마가 쫄딱 맞게 할 때가 있었다. 그런 장난을 엄마에게도 쳤을 것이다.

  부산 아빠 집에 가서 혼자 누워있으면 아빠와 아줌마가 꽁냥꽁냥 하는 게 TV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아빠가 옥상에 널어놓은 이불빨래를 가지고 들어왔다.

  "어, 이거 우리 집 꺼 아닌데?"

  "아니라고? 아이씨....!"

  진심으로 개탄하는 아빠를 보고도 웃겼다. 아줌마를 도와줘야겠다는 좋은 마음으로 빨래를 걷어왔을 텐데, 다시 옥상에 올라가야 되니까(당시에 아빠 집은 1층이었다). 꼬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잘 오지 않는 부산에 함박눈이 내릴 때도 아빠는 얼른 파카를 입고 나갔다.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다음 날 등산이 예정되어 있으면, 미리 등산복을 입고 잤다. 어린이도 저렇게는 안 하지 않나? 의문이 듦과 동시에 순수함도 느껴졌다. 한 때 캠핑용품에 빠져 있을 때 아빠는 한참을 베란다에서 탁, 탁 뭘 하고 있었는데 보니까 파이어 스타터로 불을 붙여 보고 있었다. 갑자기 오리알을 주문해서 망치와 정을 가져와 어두운 부엌에서 혼자 알을 깨고 있는 모습도 웃겼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갑자기 마라도에 가보자는 결론이 났다. 아빠, 아줌마, 나는 다 즉흥적인 사람들이어서 목적지를 그때그때 정했는데 아마 외돌개에 갔을 때 보이는 다른 바위들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마라도 얘기가 나왔던 것 같다. 나는 얼른 여객선을 예매했고, 당연히(?) 시간은 어긋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마라도에 도착했다. 허기졌던 우리는 자장면과 짬뽕을 허겁지겁 먹었다. 아빠 앞으로 그릇을 다 모아주고는 먹는 모습을 사진 찍었다.

  "아, 아빠 혼자 다 먹었네! 걸신들렸냐고요~"

  사진을 본 아빠는 적잖이 충격을 먹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악마네..."

  놀릴 때는 나를 면박 주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객관화(?)가 되는 것 같았다. 난 그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까지 해 놓고 아빠를 계속 놀렸다. 그래도 놀림당해주는 아빠여서 엄마나, 아줌마나, 잠깐 만났던 여자들이나 이 사람을 매력적으로 느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Image: Photo by Katrina Berb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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