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로-드의 첫 난관. 내가 말도 못 뗐다니이-!
*사진 출처 Unsplash, patrick tomasso
내가 처음 입을 열고 말을 뗀 건 생후 16개월이란다. “엄마, 아빠, 언니, 이모.” 모든 부모가 그렇듯 ‘우리 애 천재 아닌가’ 싶게 말을 잘했다던 내 인생 최고의 전성기. 지났다. 나는 코리안 네이티브라고 자만할 것도 없이 성우학원에서는 말 못 하는 애송이다.
“그냥 읽지 말고 말을 해야지~”
“말, 말하자! 읽지 말고.”
“자, 지금 말한 건 읽기고, 우리는 말을 해야지!”
매 수업마다 같은 지적을 받으면서도 귀에 딱지가 안 앉은 건 전부 선생님 목소리가 좋아서다. 같은 말을 1년 넘게 하고 계신 우리 슨생님은 을~매나 짜증이 나실까아~ 아, 나는 언제쯤 말이 트일까?
한국어로 쓰인 문장을 그저 또박또박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대본을 받아들든 ‘남의 말도 내 말처럼!’ 자연스러운 말로 들리게 하는 건 당연하고, 그 속에서 문장의 의도와 말하는 이의 의식, 달리 말하면 입장과 목적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또 마이크 앞에서 소리로만 표현해야 하니 얼굴을 얼마나 찡그렸든, 팔다리를 몇 번을 휘저어가며 용을 썼든, 그 에너지가 소리로 담기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확실히 학원에서 배우는 말하기는 평상시의 말하기보다 더 밀도가 있다. 주어지는 대본을 받아 들고 ‘뭐, 별 어렵지도 않은 내용이네.’ 했다간 곧 그 대략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자꾸만 내가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의미들이 선생님의 손짓 하나로 툭, 툭 드러날 때마다 하얀 종이에 빼곡히 들어찬 까만 글씨들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내가 이렇게 독해력 없는 인간이었다니…. 아니, 어떻게 이 단어에서 저 느낌을 발굴하지? 하… 어디 가서 문과라고 하지 말자.
성우의 대본은 의미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말이 아닌 호흡 하나에도 감정과 상황이 담긴다. 의미 없는 대사와 문장이 없듯이, 의미 없는 호흡도 없는 거다. 내레이션, 라디오 드라마(소리로만 진행되는 드라마), 오디오북, 애니메이션… 그저 흘러가는 말은 없는 세계. 그러니 대사 한 조각이라도 그 의미와 뉘앙스를 읽어내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다. 아마 작가의 세계가 그렇기 때문이겠지? 철저히 목적이 있는 세계. 성우는 누군가 그렇게 공들여 써 놓은 이야기를, 그러니까 단어 하나, 문장부호 하나, 침묵 하나 고심해서 쌓아 올린 세계를 들리는 소리로 구현해내는 일을 하는 거다. 아, 이것은 언어의 세계, 글자와 말의 세계, 말해지면-들려지는 살아있는 세계! 미치도록 매력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2018년 4월은 내가 한참 지쳐 입을 꾹 닫아버린 때였다. 그런 사람이 귀는 열어 뒀을 리 없다. 세상에 대한 내 요구 사항은 간단했다. “다 닥쳐. 그리도 나도 닥쳐.” 말하고 싶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는 현실의 말들엔 입장과 목적만 필요한 게 아니라 권력도 필요해서, 말해봤자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 넘쳐났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들은 허공을 쩌렁쩌렁 울리는데 어떤 말들은 말해지지도 못한 채 묻힌다.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나는 그런 세상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거기에 대한 어떤 설명도 위로도 듣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 굿-바이 각이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스피치학원엘 등록했다니!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마저도 좀 더 살아보고픈 본능이었나, 아니면 기어이 무언가 말하고 싶은 답답함이었나 싶지만, 아무래도 그냥, 사람은 자기 상태를 잘 못 본다. 입을 꿰매는 법을 배우고 싶었을 사람이 스피치 학원엘 등록했다?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바닥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던 게 틀림없다.
다행히도 학원을 다니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다. ‘내 말’을 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의 말을 적어 놓은 종이를 들고 그것을 읊는 곳이니까. (물론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한다는 게 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건지도! 허헣.) 아무튼 나는 속 편하게도 ‘남의 말’이나 하면 편하겠다고 생각하며 학원을 다녔다. 학원에 가 있는 세 시간이나마 ‘내가 내가 아니면 좋겠다, 그럼 그야말로 홀가분하겠다’ 생각했었다. 누군가가 나를 앉혀 놓고 “네 얘기를 좀 해 봐.”라고 하면 그건 너무 버거워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나로 가득 차 있던 내 속에 내 말이 아닌 것들이 들어왔다. 남의 말이 내 목소리로 들어왔다. 숨통이 좀 트였다. 그때 내 세상엔 의미 없는 것이 하나도 없어 정말로 미어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겐 의미 없이 지나가는 말, 의미 없이 새어 나오는 한숨, 의미 없이 터지는 웃음,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일상이 너무나 간절하던 때였다.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의미 없는 구절 하나 없는 대본들이 내 속에 바늘구멍을 냈다.
내 미천한 경험에 따르면 아직 믿기지 않지만, 경지에 도달한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꾸준히 하다 보면 대본이나 글을 감각하는 감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이 글에서 이 말이 나온 상황, 배경, 감정을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구체성이 높아진 만큼 문장의 의도와 목적도 더 잘 살릴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음… 내 말하기에서 도망친 내가, 남의 말을 더 깊이 감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건 뭐랄까, 이건 나를 감싸고 있는 겉의 피부가 아주 얇아지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아주 위험한 일. 그런데 희한하게도 시도할수록 가벼워지고, 내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아무런 힘없는 사람인 양 남의 말을 적어 놓은 대본을 있는 그대로 읊어댔다. 가끔 내가 소화할 수 없고 이해도 할 수 없는 문장들이 나를 치고 지나가도 저항하거나 뻗대지 않았다. 사실 거기에 저항할 나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럴 때, 문득문득 내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주 잠깐씩이었다.
선생님은 매번 말도 떼지 못한 우리에게 ‘네 중심을 가지고 말할 것’을 요청하신다. 그게 뭘지 생각해봤지만 알듯 말듯 희미하기만 하다. 다만 겉으론 드러나지 않은 말의 의미를 예민하게 감각해낸다는 것은, 점점 더 단단하고 견고한 사람이 되는 일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추측해 본다. 그건 딱딱하고 틈 없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인데, 땅에 든든히 발을 딛고 서 있는 사람의 이미지랄까? 누가 달려와 안겨도 흔들림 없이 꼭 안아줄 수 있는 상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상태.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 읽어내고, 감각해낼 수 있는 상태. 말해지지 못한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말해지지 못한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나는 이 무정한 세상을 살면서 그게 늘 슬프고 궁금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세상에 아직 그 아픔을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답답한 이들이 많으니까. 힘껏 짜내 말을 던져도 가 닿지도 못하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니까.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말이 그렇고, 국민 중심의 체제에서 비국민의 말이 그렇고, 이 인간세를 살아가는 동물의 언어 또한…. 하지만 그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말해지지 않았어도, 거기에 있다. 나는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돌아보니 나는 너무 열심히 말을 했었다. 국경을 넘어오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이들을 대신해서 쉬지 않고 말을 했다. 폭력이 왜 폭력인지도 모를 만큼 그것에 익숙하던 전남편을 설득하느라 내가 가진 모든 언어를 동원해 말을 했다. 내가 왜 고통을 겪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세상에 내 상황을 납득시키느라 세상의 모든 말을 그러모았다. 영원히 살 것 같던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들을 사람도 없는 허공에 말을 해댔다.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말을 했다. 생각을 했고, 단어를 조합했고, 문장을 만들어 이 거지 같은 세상을, 인생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말, 말, 말, 또 말로….
그러나 그건, 초짜들이 하는 짓이다. 성우학원에 처음 온 지망생들이 하는 짓. ‘숨도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가기.’
“포즈(pause)*를 두려워하지 마. 거기에 청자의 감정이 머무는 거야.”
성우가 잠깐 말을 멈춘 그사이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사이에 듣는 이의 마음이 들어와 머문다던 선생님의 말씀. 그 빈 공간 없이는, 상대도 없이 그저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아마 나는 그 포즈가 무서웠던 것 같다. 내가 말을 멈추는 순간, 내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거나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말을 멈추어야, 거기에 무어라도 스며들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이제 나는 바란다. 내 인생의 화자이자 청자인 내가 포즈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를. 말해지지 않았어도 거기에 무언가 있음을 감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누군가의 포즈가 두려워 거기에 감히 내 말을 욱여넣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아마도 내가 말하는 법을 배우려면, 그게 먼저일 것이다.
* 직역하면 ‘잠시 멈추다’라는 뜻. 연기나 낭독에서는 문장과 문장 또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쉼, 쉬어가는 구간을 뜻한다.

* 매주 화/목 찾아옵니다! 성-우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