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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너구리 Feb 26. 2021

형제, 새카만 고등어

“누나, 남자친구 없지? “

저녁밥을 먹다가 동생이 뜬금없이 묻는다.

“응, 없긴 한데, 못 만나는 건 아니야. 내가 안 만나는 거지.”

이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동생은 전 남자친구를 심지어 본 적도 있다. 그런데 왜 너의 누나를 당연히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애처로운 눈빛으로 보는 것인지, 아뿔싸! 대답이 구차했다 생각하는 찰나 동생이 말을 이어 갔다.

“에이, 안 만나는 거나 못 만나는 거나 같은 거라.”

고등학교 1학년이 대학생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것도 그렇지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변명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나는 당당한 성인의 분위기를 풍기며 피식 웃어주었지만 표정과 다르게 몇 숟갈 먹지도 않은 국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성급히 피했다.

“누나 말이 맞다면 내 생일까지 남자친구를 데려와봐. 대신 조건은 잘 생겼고 키는 183 이상이어야 돼!”

이렇게 말 안 되는 조건을 내세우는데 당당한 성인의 자세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 마침 떠오르는 학교 후배가 한 명 있긴 했다.

동생의 생일은 10월 13일, 우리가 공식적으로 사귄 날은 10월 14일, 생일 날 미역국을 먹으며 그 둘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

<함께 있을 때 우린 두려울 것이 없었다.> 라는 영화 친구의 명대사처럼 우리 셋은 항상 뭉쳐 다녔다.

고등학생인 동생이 학교에서 유행하는 게임을 알아오면 PC방으로 자전거 2대가 줄지어 달렸다. 날이 갑자기 추워진 주말이면 찜질방으로 자전거 2대가 줄지어 내달렸다. 누나가 개업 세일하는 전단지를 보는 날이면 맛집으로 기꺼이 자전거 2대가 달렸다.

어느 날인가 서울 이모집을 다녀온다 며칠 집을 비운 적이 있는데 둘이 함께 밥을 먹었다고 한다.

“형이 고등어 구워줬는데 대개 맛있었어!” 새카맣게 탄 프라이팬과 새카맣게 탄 남은 고등어 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친구는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는데 주방 한편이 치열했던 전투처럼 어지럽혀져 있었다. 환풍기를 몇 시간 틀어놨지만 고등어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밥을 2그릇이나 먹었다며 서로 쳐다보며 웃는 동생과 남자친구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마움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먹먹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환풍기 앞에서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태운 고등어를 탓하며...

둘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한 여자로 인해 인연이 되었지만 세상 둘도 없는 매형과 처남 사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아니 형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일찍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동생의 나이 8살이었지만 이미 그전부터 가족의 관계는 깨졌기에 아빠라는 존재는 벌써부터 우리에게 없었다. 아빠의 빈자리가 큰 만큼 동생은 동성 성인의 롤 모델이 없었다. 나는 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서툴게 면도를 하다 살짝 베어도 모른 척하기 바빴다. 아빠의 존재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 순간을 아프게 굳이 건드리는 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동생에게 우리가 처음 만난 날부터 남편은 꽤 괜찮은 어른이자 단순히 누나의 남자친구가 아닌 ‘친형’ 이었다.

동생은 늘 같은 농담을 한다.

“누나 나한테 잘해. 나 때문에 형 만났잖아.”

“형 미안해요. 나 때문에 누나 만났잖아요! 제가 더 잘 할게요.”

이제 시내를 누볐던 자전거 2대는 없지만 각자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함께 떠난다. 즉흥적으로 떠나자는 형의 말에 아침 잠 많은 동생은 투덜거려도 새벽같이 일어난다.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함께 하자는 동생의 말에 형은 한숨을 쉬며 생수부터 얼린다. 형의 차였다가 동생의 차였다가 움직이는 자동차는 바뀌지만 앞 좌석에 앉는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동생과 남편은 내가 뒷자리가 편해 항상 뒷자리에 앉는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뒤에서 바라보는 둘의 모습은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어진다.

피보다 진하지는 않지만 형제는 여전히 지금도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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