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한다 뿐이지 책을 잘 읽는다 자랑할 정도는 아니며, 뭐든 가리지 않고 쉽게 읽어낸다고 할 수도 없다. 주변에서 '크게 감동받았다', '내 인생 책이다'며 꼭 읽어보라고 해서 시작했지만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아 덮어버린 책도 더러 있다.
솔직히, 늘 책을 가까이하면서도 무슨 책을 또 읽어야 하나 고민하는 편에 더 가깝다. 아마 책 좋아하는 이라면 어느 정도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새 읽을거리를 찾기 위해 여러 권의 후보 책을 구해다 놓고 첫 몇 페이지를 훑어보며 책의 느낌을 가늠한 다음 최종적으로 읽을 책을 정한다. 다행히 요즘은 인터넷에서 책 미리 보기가 가능하다. 오디오북은 첫 10여 분 정도만 들어도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이 정도로 읽다가 (혹은 듣다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싶으면 덮어버리고 곧바로 새로운 후보 책을 시도한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부터 90% 이상의 독서를 오디오북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오디오북을 읽어주는 성우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책을 포기할 때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예전에는 어렵다 여기거나 흥미가 가지 않아 내버려 두었던 책을 오디오북으로 접하고는 내가 그때는 왜 그랬나 싶게 술술 잘 읽어 내기도 한다.
참 까다롭다.
뭐 어떠랴.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책이지 않은가. 같은 책이라도 출판사가 다르고 발행 연도가 다르면, 또 성우가 다르면 읽거나 듣는 느낌이 다르니 이토록 풍요로운 독서 환경이 주어지는데 독자가 까다롭게 고를 자유가 있지 않은가.
이런 까다로운 책 선정 과정이 있기에, 나와 독서 성향이 비슷한 이가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거나 개인적인 견해를 들려주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내가 책을 선택하는 다른 방식으로는, 한 작가가 쓴 책을 연이어 읽는 식이다. 물론, 모든 작가의 작품이 이런 독서 방식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이래저래 따지다 보면 책 선택에 며칠씩 걸릴 때도 있어 내 고민이 깊어지는데, 그런 나의 고민을 덜어주는 웹사이트가 나타났다.
인터넷으로 고전도서를 검색해 본 사람이라면 이미 봤을 텐데,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는 책이 있다.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딱 한 번 펼쳐보았고, 지금껏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01권의 목록이 담긴 웹사이트만 주로 참조하고 있다.
책과 관련하여 내 브런치에서 이미 다루었거나 앞으로 다룰 예정인 작품 중 상당수가 이 목록에서 나오고 있다.
이 목록에 소개되는 작품이 문학 작품으로만 한정되어 있고 2000년 전후 발행된 책을 제외하면 대부분 말 그대로 고전도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원하거나, 신간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한글과 영문 버전이 다 있다.
처음에는 웹사이트에 매번 들어가 스크롤을 열심히 내리거나 '다음' 버튼을 누르며 책을 고르곤 했는데 이토록 많은 책을 웹사이트 환경에서 보기가 불편하다 싶어 언젠가부터 여기에 담긴 내용을 엑셀 파일로 옮겨 편집하여 활용하고 있다.
나만의 책 목록 만들기는 꽤 오래전 시작한 작업임에도 아직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1000권이 넘는 책의 제목과 저자, 출판 시기까지 간단한 정보 만으로도 7400여 개의 단어가 나왔다. 이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책을 고르고 분류할 수 있도록 편집해 넣는 다소 지루한 작업이므로, 어쩌면 완성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다 노벨상이나 퓰리처, 맨부커 상 등 참조할 만한 작가의 경력도 추가로 찾아서 입력한다. 누가 시키면 절대 안 할 것 같은 일인데, 내가 읽을 책, 내가 읽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추천할 책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힘이 나서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걸 앉은자리에서 완성해야지' 할 정도의 힘은 아니었나 보다.
이 도서 목록에는 조정래와 박경리까지 한국인 작가도 있다. 더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찾은 자료에는 작가의 국적에 대한 언급은 없고, 나의 편집 작업도 미완성인 데다, 책 검색도 다 해보지 않은 상태라 아직은 모른다 (혹시 이 목록에 포함된 다른 한국인 작가를 알고 있는 분 알려주시면 감사).
죽기 전에 다 읽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 나처럼 책을 좋아하면서도 책 고르는 작업을 힘들어하는 이의 책 고르는 수고를 덜어준다는 고마움과 동서양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작품을 읽는다는 자부심만으로도 만족한다.
1001권의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어, 영문 버전 모두 발행 시기별로 작품을 분류할 수 있고, 한국어 버전은 작품을 가나다 순으로도 정렬할 수 있다.
발행 시기가 오래될수록 고어가 많고 문체도 예스러우며 종교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편이라 읽기가 쉽지 않다. 나는 목록에 나온 1번부터 차례대로 고르기보다는 시대별로 구분하여 최신 책을 우선 선택하고 있다.
2006년에 첫 발행된 피터 박스올의 책은 그동안 많은 개정을 거치면서 영어권 국가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던 것에서 과감히 탈피해 비영어권 작품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1001권의 목록이 실제로는 1001권 보다 많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Sylvia Yang on Unsplash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