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근무하는 A의 말이다.
영국에 있는 저자에게 문의할 사항이 있어 이메일을 보냈건만 답변이 없었다고 한다. 저자의 의견을 들어야 일을 진행할 수 있는데 2주가 지나도록 묵묵부답이라면 곤란하지 않겠나.
갑갑해진 출판사 사장이 다시 연락해 보라고 재촉하자, A가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떨구더니 이내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영어에 자신이 없던 A는 저자에게 연락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번역기를 돌려가며 이메일을 작성하고는 내용을 제대로 갖춘 건지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보냈다고 한다.
번역기로 작성한 이메일을 보냈다는 말에 사장은 기가 막혀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주로 국내 작가들의 책만 다루던 출판사라 외부 관계자와 영어로 소통할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A를 탓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외국인 작가와 소통하는 건 무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한 번도 연락해보지 않은 사이에서 말이다.
A가 보낸 이메일을 받았을 영국인의 반응을 상상해 보라. 참고로 6~7년 전의 일이다.
문장 성분이 흩어지고 일부 단어는 엉뚱하게 해석하는 바람에 전체 맥락마저 어색해진 글로 구성된 이메일 말이다. 거래 업체의 이메일 주소를 교묘하게 모방한 스팸 메일이거나 피싱 메일로 판단하여 저자가 당장 지워버리지 않았을까? 특히나 그 당시 수준의 번역기를 돌려 작성한 이메일이라면 말이다.
나도 한 번씩 받는 이메일이 있다. 어색한 어투의 영어로 시작하는 글로, 자신이 어느 나라 왕자라거나 갑부라는 말로 소개해놓고 막판에 절호의 투자 기회가 있으니 연락하라는 등 뜬금없는 주제로 마무리하는 글 말이다.
A의 고민을 우연히 들은 후 내가 도와주기로 나섰다. 마침 A가 연락하려는 영국인 저자와의 일이 잘 마무리되어야 내가 하는 일도 수월해지기에, 발 벗고 나서는 편이 유리했다. 같은 영국에 살고 있으니 적어도 내 이메일을 보고 저자가 의심하지는 않으리라는 엉뚱한 자신감도 생겼다.
사실, A가 보내려 했던 이메일은 출판사와 저자 사이에 흔하게 주고받는 대화 내용에 해당하는데, 이를 영어로 옮기는 일은 내게 맡겨지는 번역거리 중에서도 상당히 쉬운 편에 속했다.
하지만, 아무리 쉬운 내용이라 하더라도 모국어를 외국어로 옮겨야 한다는 부담은 떨칠 수 없으며, 상대의 지위와 상황에 맞는 이메일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영어 초보자에게 쉽다고만 할 수는 없다.
앞으로 AI 기술이 무한대로 진화한다면 번역 정도는 누구나 믿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될지도 모른다. 나 같은 인간 번역가의 입지가 그만큼 줄어들 것 같아 걱정이긴 하다.
영화로 제작되면서 더 유명해진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바벨피시처럼 귓속에 넣기만 하면 지구촌 모든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외계 행성에 사는 생명체와도 소통이 가능한 기술이 나올지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당분간 아래 링크에 담긴 영어 편지와 이메일을 보며 글쓰기 연습을 해보자.
↑ 영어권 국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편지와 이메일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
영어로 편지나 이메일을 작성할 때 참조할 만한 글이 상당히 많다. 당장 필요는 없더라도, 원어민이 작성한 글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글을 써보며 영어공부를 할 수도 있고, 영어 글짓기 주제로 삼아도 된다.
영어 이력서와 이력서에 첨부할 커버 레터, 추천서, 제안서 등 한국인에게 생소한 문서 양식을 익히는 기회도 된다. 단순히 한국어로 된 서류 내용을 영어로만 옮기는 방식이 아닌, 한국에서 통용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꾸며야 하는 문서도 있기에 해외 취업이나 유학을 고려하는 사람에게도 유용하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Nick Morri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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