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될 무렵, 아들이 한 말이다.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TV를 보다가 엄마가 나가자고 하면 함께 집을 나서서 20여 분 걸어가 도착하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아들의 세상이 너무나 바빠졌다.
중등학교가 집에서 멀리 있기에 통학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이를 타려면 집에서 8시 10분에 나가야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4시가 넘는데, 방과후 수업까지 받으면 5시가 넘어서 올 때도 있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은 초등학교 때와 비슷하지만 왕복 90여 분 가량을 버스에서 보내니, 아들 입장에서 자유 시간이 줄어든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초등학교 때 내주던 과제를 그대로 이어가겠다고 하니 불만이 터진 것이다.
학교숙제와 과목별 공부, 독서, 피아노는 별 불만 없이 받아들이면서, 하필 일기 쓰기에 불만을 가지냐 말이다.
신기하게도 영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일기 쓰기를 과제로 내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개학을 앞두고 밀린 일기를 쓰느라 밤잠을 설치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지도 않고 친구들도 안 쓴다고 하는 일기를 자기만 써야 한다니, 그것도 이제 훨씬 더 바빠진 중등학교 학생이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그 어려운 한국어로 쓰라고 하지 않는가.
일기 쓰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길래, 아들이 이토록 반발하는 걸까?
일기 검사를 하다가 빼먹은 날짜가 있다고 지적하면, 아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 즉각 일기를 쓰기 시작해 5분도 안 되어 한 편을 끝냈다. 초고속으로 써 재끼느라 나처럼 다년간 숙련된 이가 아니고는 도저히 해독하기 힘든 필체다. 한글 표현력과 맞춤법마저 부실하여 일기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한국어로 쓰는 글이긴 하지만, 대부분 이날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글로 옮겨 적는 형태라 영어 단어와 숫자, 기호가 어우러진 문제 풀이가 공간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어쨌건 노트 한쪽을 다 채웠으니 더 이상 지적은 하지 않았다.
5분도 안 되어 끝내는 일기에 그토록 불만을 가질 필요가 있냐는 내 지적에 잠시 주춤하던 아들이 다시 반격에 나섰다.
억지 변명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비교적 짧은 시기이긴 하지만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어서다. 집단으로 왕따를 당하거나 폭행을 당한 정도는 아니지만 평소 친하다 여겼던 친구의 돌출 행동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런 과거가 있는 아들이 놀림을 당한다며 울먹이는 소리에 내가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이런 식으로 내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다니.
필리핀-중국계 미국인 저자의 엄격한 자녀 훈육 방식을 담은 책인 '타이거 마더'가 화제가 된 적도 있고, 각종 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학생들 중 유독 아시아계가 많다 보니, 아시아계 부모의 높은 교육열이 서양인 사이에 익히 알려져 있다.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소수 민족인 아시아계가 보이는 행동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이를 코미디 소재로 삼을 정도니.
이런 상황에서 아들은, 너도 타이거 마더의 강요에 의해 맨날 공부만 하냐는 비아냥을 들었나 보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은 한국어로 말할 때도 영어적 사고를 하는 편인데, '친구'라는 단어가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한국어적 사고를 하는 내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만나는 또래 사람을 모두 친구라 부르겠지만, 아들은 특별히 친한 사이만 친구라고 했다. 영어의 'Friend'가 한국어의 '친구' 보다 개념적으로 좁기 때문이리라.
아들이 지금껏 '친구'라 불렀던 아이들을 한 명씩 떠올려보았다.
생일을 맞은 아들에게 밥을 사주고 볼링장에 데려간 친구...
아들의 대학 합격 소식이 전해지던 날 전기밥솥을 축하 선물로 사다준 친구...
방학 때 심심하다고 아들을 불러다 놓고 함께 도서관에서 체스를 두는 친구...
전교에서 유일하게 젓가락을 들고 다니는 아들에게 젓가락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 친구...
졸업시험 결과가 발표되던 날 최고 성적을 받은 아들에게 한꺼번에 몰려와 환호성으로 축하해 준 친구들...
이런 착한 친구들이 공부만 하는 아이라고 놀렸다 해서 무슨 악의가 있겠나. 그저 조금이라도 자유 시간을 확보해 보려는 아들의 의지가 만들어낸 핑계라 할 수밖에 없다.
네가 맨날 공부만 하는지 노는지 친구들이 어떻게 안다고 놀리냐, 그리고 집에서 공부만 한다는 소리에 부끄러워할 일이냐, 며 반문했더니 아들도 더 이상 대꾸하지는 못했다.
영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인 중에는 자녀의 낮은 학습의욕을 걱정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배우자의 학업이나 해외 파견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잠시 영국에 체류하는 경우, 한국의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살던 자녀가 영국의 자율적인 학습 환경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걱정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 아이가 한국의 교육 환경에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이 때문에 아이에게 학업에 대해 강조하지만, 느슨한 영국의 교육 환경에 이미 적응한 아이가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럴 테다. 주변에서 타이거 마더, 호랑이 부모라는 말을 들으며 놀림까지 받는다면 아이의 반발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대학준비반에 다니는 자기 아들을 가리키며 라지나가 한 말이다.
인도 출신인 라지나 또한 영국의 교육 환경에 불만을 토로했다. 인도에서도 한국 못지않게 높은 교육열로 자녀를 훈육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아직 내 아들이 초등학교에도 가기 전이라 대학준비반이 무엇인지, 영국의 수험생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을 때였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4과목만 공부한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라며 의문을 가졌던 기억도 난다.
알고 보니, 3과목만으로도 대학 입시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학생의 의지와 전공과목에 따라 그 이상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라지나의 아들의 경우 의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다른 학생보다 과목수가 더 많았을 수도 있다.
3과목이든 4과목이든 한국의 입시 제도에 비하면 지나치게 단순해 보이지 않는가.
내 아들 또한 4과목을 공부했는데, 이런 아들의 입장에서 변명을 한다면, 학기 내내 시험공부 못지않게 신경 써서 준비한 과제를 제출하고,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16차례나 시험을 치르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내 입장에서는 정말 단출한 입시 과정이라 하겠지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 일기를 쓰느냐 마느냐, 공부를 얼마나 하느냐에 대한 두 모자의 논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하게 끝을 맺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열린 수학 캠프에 다녀온 아들의 말이다.
수학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학생을 초청해 운영하는 캠프다. 이는 이전 브런치 글에서 언급한 국제 대회에 출전할 학생을 뽑는 캠프와는 다르다.
캠프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을 아들과 함께 보다가 궁금해졌다.
아시아계가 제일 많아 보이지만, 그 외 다양한 국가 출신도 있다. 호랑이 부모가 아시아계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었다 보다.
수학 실력이야 다들 비슷하겠지만, 다른 분야에서의 실력은 어떨까?
영국에 사는 외국인 중에는 자녀에게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아들이 만난 학생들은 어떤 가정에서 성장했을까?
이런 내 궁금증을 털어놓았더니 아들은 다들 모국어와 영어, 외국어도 능숙하고 악기까지 다룬다고 했다. 심지어 이 자리에 초등학생도 끼어 있었다. 유난히 키가 작고 어려 보이더니 초등학생이었나 보다. 대부분 아들 또래의 중등학교 학생이지만 연령 하한선은 없기에 참여가 가능했던 것이다.
캠프에 다녀온 후 아들의 태도가 바뀐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친구들이 놀린다는 핑계를 대며 한국어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줄여보려 안간힘을 쓰지도 않았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RDNE Stock project on Pexels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