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간 캠프에 참가한 아들의 말이다.
바이오 (BIO)는, 'British Informatics Olympiad' 즉 영국 정보 올림피아드의 준말이다. 1차 예선에서 뽑힌 15명의 학생을 캠프에서 훈련시켜 최종 목표인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에 출전할 영국 대표 4명을 선발한다.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들과 경쟁을 벌여 15명만 뽑는 예선에 통과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가 싶어 부모는 난리법석인데, 아들은 캠프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로 더 흥분해 있었다.
처음에는 무료로 배포하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으로 아들이 코딩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을 들으며 급우들과 경쟁하고 나중에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벌이는 대회에 참여하면서 코딩에 대한 관심이 열정으로 확대되었다.
논리적 사고를 요한다는 점에서 코딩과 수학이 연관성을 띤다고 하는데, 코딩을 모르는 나로서는 이를 가늠할 재간은 없다. 다만, 아들이 코딩을 하는 동안 수학은 물론 다른 과목의 성적까지 우수했던 건 사실이다.
실제로, 아들이 2년 연속 정보 올림피아드 캠프에 참여하면서 만난 학생 중 대다수가 수학 실력마저 뛰어났다고 한다. 정보 올림피아드와 수학 올림피아드를 동시에 참가하는 학생이 나올 정도니.
여름에 열리는 국제 대회 일정에 맞추면서도 학교 수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부활절 방학에 집중적으로 과목별 캠프 및 본선 대회가 진행되므로,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대회에 참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들의 경우, 옥스퍼드 대학에서 열리는 물리 올림피아드 캠프에도 초청되었지만 다른 학생에게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열리는 정보 올림피아드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정보/수학 올림피아드 캠프의 경우 둘 다 케임브리지에서 열리기에 당사자가 원한다면 전체 캠프 행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회 참가는 가능했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이 처음부터 이 정도 규모의 대회에서 실력을 뽐낼 수준은 아니었다. 매년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한국의 학생들처럼 과학고 출신도 아니요, 경쟁을 대비해 전담 교사의 지도와 프로그램 혜택을 받는 영국의 사립학교 출신도 아니다.
일반 공립학교를 다니며 급우들과 경쟁하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친구를 만나 자극을 받기도 하고, 교사와 친구로부터 정보를 얻어 더 깊게 공부할 방안을 터득했다.
아들은 학교에 다니며 친구를 만나고 같은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과 경쟁하는 행위 자체를 즐겼다. 친구가 체스 클럽에 간다고 하니 덩달아 클럽에 가입하여 체스를 두고, 또 다른 친구가 테니스 클럽에 가자고 하니 여기에도 따라갔다. 수학과 컴퓨터에 대한 관심도 비슷한 패턴에서 시작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수학과 컴퓨터에 관심이 더 쏠렸다.
각종 대회에 참가하고 클럽 활동을 하며 자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또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고, 실력이 더 뛰어난 학생의 비결은 무엇인지 관찰했다.
실력을 더 키워보겠다 결심하면서도 한 번도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들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대회 참가나 클럽 활동에 대해서도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아들의 판단을 믿기도 하지만, 아들 또래가 참여하는 대회나 클럽은 대부분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기에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믿음도 작용해서다.
이런 대회와 캠프가 아들에게 미친 가장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하면, 학업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다. 비교적 교육열이 낮은 편인 영국에 살면서 자신의 부모가 지나치게 학업에 관심을 보인다며 불만을 토로하던 아들이다. 수험생임에도 9시간이나 자게 하고 학원, 과외도 안 시키는 우리더러 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대회를 휩쓸던 학생을 캠프에서 만나고 공부하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난 후 아들의 불만은 뚝 그쳤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학원과 과외 없이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려 쓴 글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다. 대신,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들어보고 아이에게 맞는 학습 수단을 아이와 함께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캠프와 대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회가 있으니 나가라'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 참여한다면 아이가 대회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아이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 보자. 무엇보다, 학교 생활을 즐기도록 해주자.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발음하지도 글로 적지도 못하던 시절 아들의 말투 그대로 옮겨보았다.
세계 책의 날이 다가오면 영국의 초등학교에서는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책 관련 행사를 개최한다. 아들의 학교에서는 학생이 독서 카드를 작성하여 교무실 입구에 비치된 투표함 모형의 상자에 넣게 했다.
엽서 크기의 종이에다 책 제목과 페이지, 날짜를 기록하도록 된 형태다.
독서는 물론 학습 의욕마저 떨어지는 아이들까지 보듬어 행사에 참여시키고 꾸준한 독서 습관을 쌓게 한다는 의도리라.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마다가 아닌, 단 한쪽이라도 읽을 때마다 카드 한 장씩 작성하게 하면서 말이다.
어제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25쪽까지 읽고, 오늘은 30쪽까지 읽었다면 이틀 만에 카드 2장을 채울 수 있다. 읽은 내용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거나 감상문을 적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작성한 카드를 학생이 투표함에 넣으면 정기적인 추첨을 통해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독후감 대회도 아니요, 다독왕 자리를 다투는 경쟁도 아닌, 단순히 책을 몇 쪽까지 읽었다는 기록만으로 상을 준다고?
처음에는 무의미한 행사로 보여 참여가 망설여졌지만, 상을 받고 온 아들의 뿌듯해하는 표정을 보며 반드시 경쟁만이 살 길은 아니구나 싶었다. 영화제에도 비경쟁 부문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아들을 포함해 같은 날 당첨자 명단에 오른 다섯 명의 학생들은 오후 수업을 면제받은 뒤 교장선생님과 함께 시내로 나가 책을 사고 다과도 즐겼다.
수업 도중 급우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외출하는 것만으로도 초딩에게는 크나큰 기쁨일 텐데, 교장선생님이 '너희 마음대로 책 한 권씩 집어 오렴', 또 '메뉴판에서 아무거나 골라도 돼'라며 선택의 자유까지 주었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나.
이날 있었던 일을 들려주다가 아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한 대목이다.
다들 자기 나이대에 맞는 동화책을 고르고 있을 때 아들은 전혀 엉뚱한 코너에 가서 책을 집어 들었다. 영국의 축구 역사상 손꼽히는 경기 장면과 기록을 담은 책이었다. 설마 초등학생이 이런 비싸고 두꺼운 책을 고를까 싶었던 교장선생님이 이날 예산을 초과하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다.
다행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축구팬이라면 가볍게 즐길 만한 내용이었다. 세월이 제법 지나고도 아들이 책을 꺼내 참조하는 걸 종종 보았으니.
* 아들이 직접 참여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분야로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훨씬 더 다양한 기회가 있으니 학교에서 공지하는 대회 일정을 확인하세요.
전년도 대회에서 출제되었던 문제지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므로 대회를 준비할 때 참조할 만하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Taylor Flow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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