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도중 내가 던진 질문이다.
오후에 있을 북클럽 모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겠다고 시작한 질문인데, 곧이어 남편과 아들까지 각자가 생각하는 작품 속 주요 내용을 문제로 내면서 우리의 대화는 퀴즈대항전이 되고 말았다.
"폴리 이모가 톰에게 페인트 칠을 시킨 이유는?"
"인디언 조 대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사람은?"
이 남자들이 이토록 책에 대해 열정적으로 외쳐댄 적 있던가?
<톰 소여의 모험>을 읽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싶다. 성인에게도 추천되는 책이지만, 주인공 또래의 어린이가 더 즐겨 읽는 작품이지 않은가. 영어 단어도 비교적 쉽고 이야기 구조도 복잡하지 않다.
남편과 나의 경우 어린 시절 TV 만화로 친숙해진 작품인 만큼, 책으로 다시 접하면서 자동으로 떠올리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남다르다. 아들은 영국과는 사뭇 다른 배경의 미국 문학이 주는 감동에 이어, 어린 시절 실천해보지 않았던 악동들의 온갖 장난과 모험에 심취했을 테다.
주말마다 가족이 함께 산책을 하는 시간이었다.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공원까지 가서 호수와 놀이터, 숲을 따라 걸을 때도 있고, 이번처럼 집 앞에서 도보로 출발해 주변 동네까지 돌다 올 때도 있는데, 매번 한 시간여 동안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마침 이날은 책이 주제로 나왔다.
가족 모두가 한 가지 주제로 대화에 몰입하는 것까진 좋으나...
지금 거리에서 이러고 있으면 이날 집에서 하기로 한 북클럽에서는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또한, 대화가 퀴즈대항전으로 변질되면서 남편과 아들은 억지 퀴즈까지 만들어내고, 또 먼저 정답을 맞히겠다고 몸싸움까지 벌이느라 길거리에서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빠른 속도로 걸어야 할 우리의 산책은 무한정 느려지고 말이다.
언제든 차가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는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퀴즈 풀이에 집중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먼저 책을 주제로 꺼내면서 벌어진 사태니 뭐라 탓할 거리가 없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지난 수년간 가족 북클럽을 운영해 왔다.
처음에는 두 모자가 한 페이지씩 번갈아가며 책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완독하기 부담스럽다 싶은 고전도서를 선택해 왔지만 <톰 소여의 모험>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처럼 혼자서도 충분히 읽어낼 정도로 내용도 쉽고 흥미로운 책을 선택할 때도 있었다.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싶었던 북클럽 운영이 예상보다 순탄하게 진행되면서 남편까지 합류하고 나니,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완독이 아닌 독서 토론에 집중되었다. 책 읽는 행위 못지않게 읽은 뒤 감상을 이끌어 내고 주변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중요한 배움이니까.
방식은 조금 다르긴 하나, 두 모자만의 북클럽은 사실 이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독서기록장에 내가 남긴 글이다.
아직 글자를 익히지 못한 아들을 위해 내가 직접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책을 한 장씩 펼칠 때마다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본문 내용을 읽어주며 아들과 대화도 시도하곤 했지만, 이날만큼은 모든 걸 생략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받아온 책을 아무런 의심 없이 펼쳤다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주인공의 엄마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클로스 역할을 맡기 위해 분장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빨간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을 달기만 하면 산타클로스가 된다고? 아이에게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야 할 산타클로스의 탄생 과정을 그림까지 곁들여 가며 책에서 묘사한다고?
학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내게 줘서 고민하게 만드냐 말이다. XXX 출판사는 어쩌자고 이런 책을 초등학생용으로 만들었냐 말이다.
이날의 독서는, 책을 대충 훑기만 하고 아이가 질문할 틈을 주지 않으려 엉뚱한 이야깃거리를 즉석에서 들려주는 걸로 얼버무렸다. 아들의 독서기록장에다 항의성 글을 남기는 건 잊지 않고.
다행히 이토록 나를 당황하게 만들만한 책은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가 자녀의 독서를 지도할 수 있도록 책과 독서기록장을 학교에서 배포해 주던 시절이다. 이를 받으면 함께 책을 읽고 아이의 반응을 노트에 기록해야 한다.
당시 학교에서 지급하던 책은, 영국의 초등학생이 교과서처럼 읽는 동화책으로 독서 능력에 따라 등급별로 나누어져 있다. 난이도는 각기 다르지만 책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은 거의 동일하다.
처음에는 글자 보다 그림이 더 많은 책이 지급되더니, 아들이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글자 비율이 점차 늘어났다.
노트에 기록할 '아이의 반응'이라고 하면 아이가 모르거나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단어가 있는지,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이 무엇인지 등을 가리킨다. 사실, 이건 내가 기억 + 추측하는 독서기록장 이용 방식이다.
독서기록장을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 학부형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아예 작성을 안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새로 익힌 단어만 적으면 된다, 다른 이는 책 제목과 읽은 날짜, 쪽수만 기록하면 된다고 했다. 의견이 상충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교사에게 확인하려 하지도 않고, 이에 대해 교사가 지적하는 일도 없었다.
아무도 정답을 모르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내 맘대로 작성하면 되거든.
이날도 아들과 책을 읽고 독서기록장에 정보를 기입하고 있을 때였다.
아들이 직접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기에, 독서기록장에 적을 내용도 길고 풍요로워졌다.
예전에는 아들의 감상문이라고 해봐야 '슬퍼요', '불쌍해요', '웃겨요' 등 단답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법 길게 답변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가.
그런데, 아들의 그 모든 진술 내용을 내가 일일이 기록하는 일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남의 말을 일방적으로 받아 쓰는 꼴이지 않은가.
손으로 글씨 쓰는 걸 무지 싫어하는 내가 그토록 인내심을 가지고 노트에 길게 써 내려가는 작업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두 모자의 역할 변경에 대해 독서기록장에 공식적으로 밝힌 뒤 아들이 직접 감상문을 적도록 했다. 악필이긴 하지만 누구든 알아볼 수 있도록 인쇄체로 또박또박 글을 채워가던 독서기록장이 하루아침에 삐뚤빼뚤한 초딩 글씨로 대체되었다. 그런 중대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
꾸준한 독서와 토론은 아들의 언어 능력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받아오는 책의 등급으로, 중등학교에 다닐 때는 성적표로 그런 변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단순히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아이의 학습 능력 전반에 변화를 보였다.
아들의 면접을 담당했던 교수의 말이다.
아들이 지원한 대학은 칼리지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교로 어느 칼리지에 지원할 것인지 선택한 다음, 해당 칼리지가 정한 입학 절차를 따라야 한다. 같은 대학, 같은 전공이라 하더라도 칼리지마다 입학 조건과 성적이 다르다.
하필, 면접을 혹독하게 치르는 것으로 유명한 칼리지를 선택한 아들이 면접에서 이런 말을 들은 것이다.
별도의 공간에서 수학 시험을 치른 뒤, 면접관 앞에서 자신이 풀었던 문제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자리에서 아들이 틀렸던 문제는 다시 풀고, 미처 풀지 못한 문제 중 하나는 스스로 풀어내고, 나머지는 힌트를 얻은 뒤 풀었다고 한다.
아들의 태도에 흥미를 느낀 교수가 새로운 문제지를 가져다 주자 그 문제마저 풀어낸 모양이다.
수학 시험에 이어 면접까지 연이어 치른 날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아들의 얼굴은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면접 내내 긴장을 풀지 못해 녹초가 되거나 결과를 기다리며 초초해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다 온 모습에 가까웠다.
응시한 학생 중 4분의 1만 통과한다는 면접을 어쩌면 그토록 의연하게 받아들일까, 또 낯선 면접관 앞에서 긴장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을까, 부모인 남편과 나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수학에 대한 아들의 열정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지만, 여기에 조금 보태면,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해온 독서와 토론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같은 북클럽 출신인 내가 믿고 싶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Mikhail Nilov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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