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못지않게 영국에서 흔하게 나오는 불평이다.
영국 체류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부터 속도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사무소에 연락하면, 최소 24시간 전에 세입자나 집주인에게 통보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나온다. 여기에 주말까지 걸리면 최소 2~3일은 기다려야 집을 볼 수 있다.
운 좋게 마음에 드는 집을 당장 찾았다 해도 계약이 곧바로 성사되지 않는다. 집 계약에 필요한 신용 조회를 거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의 집 계약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외국인은 신용 조회 과정에 시간이 더 걸린다.
집 구하는 데 걸린만큼은 아니지만 집에 채워 넣을 물품이나 서비스를 신청할 때도 인내심이 필요하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품도 늦게 오고 직접 사람을 불러야 하는 서비스도 원하는 날짜에 맞추기 힘들다.
물론, 이런 느린 현상은 영국에서만 경험하는 일은 아니다. 솔직히 한국의 초고속 서비스는 세계 어느 나라, 어떤 문화든 따라오기 힘들 테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가 해외 어디를 가서 뭘 하더라도 한국인에게는 느리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영국의 느린 문화가 좋다고?
나는 '느림' 대신 '느긋함'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번 글을 쓴 계기가 된 영국의 장점인 사람들의 무관심과 느긋함 중 두 번째가 여기에 해당한다.
* 한국과 영국, 두 문화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좋든 싫든 영국 문화에 적응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익숙하다 여기던 한국 문화가 오히려 생소하게 다가온 순간을 기록한 글입니다.
다들 느긋하게 사는데 나 혼자 빨리빨리를 외치고 다닐 수는 없다. 반대로, 한국에 살면서 다들 서둘러 다니는데 나 혼자 굼뜨게 행동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집 구하기나 물품 배달, 서비스 개통이 늦다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는 건 아니다. 약속한 날짜와 시간은 지킨다. 뭘 하든 한국에서 보다 느리다는 점을 각오하고 살면 마음이 편해진다. 조금 귀찮더라도 여유 시간을 확보한 뒤 집을 구하고 물품 주문이나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
오랜 세월 이런 느긋한 문화에 젖어 살다가 한국인을 만나면 정신이 퍼뜩 들곤 한다.
B의 집을 방문했을 때다.
오전 중으로 침대가 배달된다고 해서 가족 모두 외출도 안 하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얼마 뒤 배달 트럭이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B가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잔뜩 화난 얼굴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직원이 부품을 빠뜨리고 왔다며 물류 창고로 돌아갔다는 소리다. 짜증 날 만한 일이긴 하지만, 이후 B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침대 회사에 항의하겠다고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평소에도 통화 대기가 길어지는 업체인데 주문이 한꺼번에 몰리는 토요일 오전에 제때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까스로 콜센터 직원과 연결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우리 침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빨리 갖다 주지 못해?"
이렇게 따지려고? 그런다고 물류 창고로 간 직원이 더 빨리 돌아오기라도 한단 말인가? 잘잘못을 따지려면 침대를 무사히 받은 후 하면 되는 일 아닌가?
나의 이런 반문에도 B는 멈추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까지 전화해 보라고 재촉했다.
이날 B의 집에 내가 간 목적은 따로 있기에 이 일을 처리하며 기다리자 제안했지만,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는 막무가내로 전화하라고 강요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 떠밀려 시키는 대로 했지만, 통화 대기음으로 흘러나오는 아바 노래를 두어 번 들은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급한 볼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그 집을 나왔다.
이후, B의 가족을 돕던 일에서 나는 자연스레 손을 떼버렸다. 앞으로도 영국 정착 과정에서 속 터지는 일을 겪을 것이 뻔한데, 이 정도 일에 격분하는 사람 곁에 있다가 날벼락이라도 맞을까 두려워서다.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우리 집에서 먹어 본 시리얼이 맛있어서 동일한 제품을 사려고 마트를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나 보다. 자신이 찍은 마트 코너 사진에서 이를 집어 달라는 소리다.
쇼핑 중 대답을 초조히 기다리는 상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한 시간이나 지난 뒤 메시지를 확인했다.
솔직히, 내가 즉답을 했더라도 상대에게는 별 소득이 없었을 테다. 눈앞에서 진열대를 마주하고도 원하는 상품을 찾지 못할 수도 있고 또 해당 상품 자체가 없을 수도 있는데, 수십 여 개의 시리얼이 한꺼번에 담긴 사진 한 장으로 내가 어찌 파악하랴.
우리 집에서 시리얼을 포장째 사진으로 찍어 간 사람이다. 상품명과 제조사까지, 이런 명확한 자료를 가지고도 현장에서 못 찾는다면, 다른 방법을 스스로 구해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지인에게서 온 연락이다.
은행에서 서류를 받았는데 이게 뭔지 궁금해서 이 사람도 사진을 찍어 보냈다.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서류가 얼마나 많은데, 은행 직원도 금융 전문가도 아닌 내게 굳이 물을 필요가 있는가. 은행에 문의하면 그만인 것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트와 은행에서 연락한 두 사람처럼 사진을 찍어 내게 질문하는 것보다 지척에 있을 직원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현명한 상황이다. 둘 다 이 정도 영어 구사에 문제가 없음에도 당장 내가 더 빨리 답변해 주리라 기대한 모양이다.
이들이 영국에 온 목적과 체류 기간, 사는 지역, 가족 구성원, 직업에 따라 내게로 향하는 질문은 각기 다르다. 사람도 다르고 질문도 다르지만 이들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한국인이라면, 질문한 즉시 곧바로 답해주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노골적으로 재촉하지는 않지만, 늦게 답변하면 실망하는 눈치다.
영국에 오기 전부터 장롱면허 출신이던 나는 영국에서 초보 운전자 시절을 보냈다.
신호 대기 중 시동이 꺼지는 바람에 신호가 두어 번 바뀌고도 차를 출발시키지 못해 쩔쩔매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뒤 운전자가 경적 한 번 안 울리고 기다려줬다. 도로 사정에 여유만 있다면 차선을 변경해 조용히 추월해 가기도 했다.
* 영국의 운전자가 대체로 느긋한 편이지만, 일부 대도시에서는 성격 급한 운전자도 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을 향해 소리치고 난 뒤,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집 근처 재활용센터를 다녀오는 길이다.
차량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센터로 접근하는 도로와 출구가 모두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는 곳이다. 센터에 차를 세울 때도 한 번에 5~6대 정도만 가능하다. 앞서 내린 운전자가 차에 싣고 온 폐기물을 정해진 구역에 버리거나 재활용 코너로 옮긴 후 차를 뺄 때까지 뒤차는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재활용센터 입구부터 차량이 길게 늘어서기 일쑤다. 우리도 그런 일행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작업을 끝내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이날은 출구 도로마저 줄이 길게 이어졌다. 센터 입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일방통행이 끝나고 도로가 넓어지는데 말이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앞을 내다봤더니, 70대로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수레를 끌고 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노인과 수레...
이렇게 말하면 폐지 줍는 노인을 연상하겠지만, 이 노인의 수레는 정원 작업에 쓰는 작은 손수레다. 나뭇가지와 풀 등의 정원 쓰레기를 모아서, 이 또한 재활용센터에 버리고 가는 길이리라.
노인은 도로 중앙을 따라 걷고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에 다리까지 저느라 속도는 더욱 더뎠다. 일방통행이다 보니 당장 눈앞에 차가 안 보이기에,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도로인지 모르는 듯했다. 자동차 행렬이 뒤로 길게 이어진다는 사실도 눈치를 못 채고 말이다. 사실, 이런 정원용 수레를 집 밖으로 끌고 나오는 사람도 드물다만.
우리 차가 이들 거북이 행렬의 선두가 되었을 때 나는 앞서와 같이 남편에게 당부한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앞에 두고 남편이 성급하게 나오리라 염려는 안 했지만, 우리 뒤로 길게 이어지는 차 행렬을 신경 쓰는 눈치여서다.
시동이 꺼지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로 속도계 바늘이 바닥을 치는 걸 보며, 우리는 노인 뒤를 최대한 조용히 따랐다. 다행히 뒤편에 있는 그 어떤 운전자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기에, 무사히 정해진 구간을 최대한 조용히 지나갔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청력이 약한 노인이 아닌 30대 초반의 여성도 위 노인처럼 도로를 막은 경험이 있다.
좁은 인도의 반 이상을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어서 유모차를 통과시킬 수 없자, 이 여성은 도로변으로 내려갔다. 중간중간 이런 식으로 주차된 차가 계속 나오는 바람에, 당시 한산한 도로 상태만 믿고 도로를 따라 계속 걸었던 모양이다. 아이도 제법 크고 짐까지 실어 무거워진 유모차를 인도에서 도로로, 도로에서 다시 인도로 반복해 옮기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다. 그것도 주차된 자동차 틈 사이로 말이다.
가로등이 없는 곳, 날은 어두워지는데 점차 자신의 뒤로 불빛이 하나씩 반사된다 싶어 뒤를 돌아다보니...
이런...
장엄한 군인의 행렬처럼 자동차들이 소리도 없이 줄줄이 여성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이렇게 민망할 수가...
십수 년 전, 바로 내 얘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