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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Mar 27. 2022

무성무취(無聲無臭)

5.[오늘의 단어집 펴보기]


마음을 다하여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적이 있었을까요. 


도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가슴이 울려 내 마음을 동하게 하는 그런 사람. 성의와 호의를 보냈음에도 무언가 바라지 않았음에도 거절의 의사를 받게 되면 괜스레 숨고 싶은 생각이 들죠. 바라지 않은 상대방의 눈빛으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도 듭니다. 


무색무취

(無色無臭, 아무 빛깔과 냄새가 없음/깨끗함)


보통 이 단어는 좋은 의미로 자신을 일컫을 때 사용하는 수식어이죠. 반면 소리가 나지 않고 향도 없는 일련의 상태를 '무성무취'하다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사전에 살펴보니 은유적인 표현을 반영하였는지 '이름이 나지 않거나 세상을 피해 숨어있는' 상태'를 뜻하기도 하고요. 또 다른 상황에서 자연(自然)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자연에서는 향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청각이 더 돋보였죠. 돌아보니 출근길도 그렇더라고요. 출근길에 뺨과 몸을 스치는 긴장된 공기, 촉각은 곤두서 있는데 향을 맡을 정도로 예민한 센서가 발휘되지 않았어요. 출근길 버스 안이나 회사 엘리베이터 등 실내 장소에서 어느 누구의 향수가 코끝을 자극하기도 했지만요.


유독 어제는 많은 향기를 맡은 날이었어요. 오랜만에 백화점에 들렀거든요. 양 쪽 손등에 핸드로션의 향을 테스트하며 선물꾸러미를 챙겨 오니, 옷깃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 여러 향 수냄새 즉 인공적인 향들이 진동했죠.


향에 예민했었던 적을 기억하면, 임신했을 때였어요. 삼겹살, 목살 등 돼지고기 냄새가 그리 역겨울 줄 몰랐습니다. 한동안 고기를 멀리했지요. 자연스레 채식으로 배를 채운 날도 있었습니다. 이후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무향만 선호했어요. 일본인들이 그 향을 우선시한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사람의 체취도 그 사람을 알리는 데 한몫하잖아요. 그 체취도 얼마나 깊은 향인지 임신 때 깨달았습니다. 가장 예민한 우리의 감각은 후각이었음도. 


어느 소리와 어느 향을 맡지 않을 그 공간은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민낯의 그 세계. 우리 몸에 붙은 여러 향들은 세상에 만든 인공적인 향도 있고, 그 사람만의 고유한 향도 있겠지만..  


이달 들어 4개의 밑미 리추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참여 횟수가 많지 않은 리추얼은 '명상하며 향기노트'를 쓰는 리추얼이었어요. 리추얼 메이커 선생님이 전해주신 아로마향으로 명상 시간에 향을 맡고 그 향에 대한 감정일기를 쓰는 셈인데, 리추얼 중 고난도 리추얼입니다. 고요한 나와의 시간을 보내야 할 명상도 쉽지 않은데, 향을 맡아야 하니깐요.


향을 맡는 공간은 향에 지배받지 않은 공간이어야만 합니다. 무향의 세계이죠. 그 세계에 눈을 감고 들숨날숨을 통해 명상에 집중합니다. 어느새 제 몸은 붕 뜬 기분마저 들며 귓가에 들리는 소음이 들리지 않은 상태까지 다다릅니다. 그때 시향지를 코끝에 스치면서 그 향에 대한 감각을 일깨웁니다. 제가 선호한 향은 레몬 머틀, 팔마로사, 그린 만다린, 버가못 민트 등 순이었어요.  

나뭇잎, 껍질 등에서 가져온 향들은 애초 그런 향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도 듭니다. 식물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자연에서 무색무취, 무성무취한 세계가 온전한 세상이지 않을까요.


티끌 없이 온전히 그 상태로 나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 그 사람에게서 체취이든 잘 맞는 향수이든 목소리이든 좋아하는 마음은 이유가 필요 없잖아요. 그 자체로 좋은 거지. 가끔은 그 어느 편견 없이 나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지만요. 

[️️아로마테라피 x 향기노트] 리추얼 중


출처. [#출근전읽기쓰기] 뉴스레터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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