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밈의 관점에서 본 윤회

by 밈바이러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글, 그리고 제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목소리의 기반은 밈(이런저런 단어와 생각 조각)입니다. 저는 1부(‘전지적 UI시점’)에서 뇌에서 흘러가는 목소리를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이야기를 지어내는 좌뇌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편파적인 정보를 가지고 제멋대로 지어낸 소리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밈과 자아, 그리고 불교의 윤회 개념을 엮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해보려 합니다.




이번 생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각과 행동의 고리

윤회는 불교에서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번 생의 업보가 다음 생에 이어진다는 개념이죠. 저는 생과 생 사이를 넘어 이어진다는 전통적인 윤회를 믿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죽으면 원자나 분자 단위로 해체되어 그 원자가 다른 생명의 일부를 이루게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런데, 업보를 통해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것만을 윤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번 생에도 끊임없이 윤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스님께 여쭤보니, 하나의 생각과 하나의 행동이 일어날 때, 한 생이 일어났다고 한답니다. 한 번 일어난 생각이나 행동은 다음에 올 생각과 행동에 분명히 모종의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의 생각이 업을 일으켜 다음에 올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특정 생각이나 행동은 습관이 되어 반복하게 되고, 중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행동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분투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억력이 몇 초밖에 지속되지 않아 마치 매 순간 의식이 처음 깨어나는 것처럼 행동하는 클라이브 웨어링의 사례를 부록에 첨부하고자 합니다. 그의 자아는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짧은 주기의 윤회를 겪는 셈입니다.)




우울한 자아의 윤회를 깨려면

급진적인 표현으로, 뇌 = 캐릭터 공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뇌는 그때그때 상황적 필요에 따라 특정 감정과 함께 캐릭터(=’나’)를 만들어냅니다. 다만, 그 캐릭터에 일관성이 있는 이유는 기억 혹은 ‘자아’라는 밈 플렉스가 기반이기 때문이며, 연속성을 느끼는 이유는 뇌의 편집 작업 덕분입니다. 뇌는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이야기와 이미지를 중심으로 순간순간 조금씩은 다른 캐릭터를 계속해서 만들고 연결합니다.


아무튼, 한 번 발생한 생각이나 ‘나’는 자아라는 밈플렉스에 누적되며 다음 생각이나 ‘나’에 영향을 미칩니다. 윤회를 끊는다는 것은 우울이나 특정 강박적 행동에 빠진 캐릭터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생성하는 뇌를 바꾸어, 조금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해서 좋은 쪽으로 변화를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뇌는 어떻게 습관에서 벗어나 뇌 자신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걸까요? 지금의 나를 생각할 때와 미래의 나를 생각할 때 뇌의 다른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상상할 때와 미래의 내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더 비슷하다고 합니다. 즉, 내 친구가 24시간을 굶었으면 얼마나 배고플까를 생각하는 것과, 내가 앞으로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먹으면 내가 얼마나 배고플지 생각하는 신경 메커니즘이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관찰한다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뇌 밖에서(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고 가능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뮬레이션 하는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뇌는 좌뇌의 이야기 생성 과정에 ‘훅!’하고 개입할 수 있었습니다. 관찰함으로써 조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른 선택을 내리면서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데닛의 다중 원고 이론을 참조하면, 이 순간 가능한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지금 막 우세해지려는 (습관적인 고정 행동 유형) 원고를 슥 밀어놓고 그 다음의 원고를 읽어보고 채택하는 것입니다.


언어, 그러니까 밈의 힘은 어마어마합니다. 지금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부정적인 이야기를 조금씩 대체해 가는 것으로 앞으로 등장할 수많은 ‘나’ 캐릭터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좋건 싫건 ‘나’와 자아 이야기는 우리 의식의 핵심 자리를 차지합니다. 저는 우리의 캐릭터가 제각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주환 교수는 ‘나’라는 것이 주체적으로 소통한다기보다는, 내면소통의 결과로 태어나는 것이 ’나’라고 합니다. 그것이 혼잣말(셀프 토크)일 수도 있고, 제가 하던 이야기에서 연장해 보면, 밈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관찰하면서, 셀프 토크 방식을 교정해 볼 수 있으며, 어떤 밈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밈을 어느 정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밈과 셀프 토크가 바뀌면 ‘내’가 바뀝니다. 다만, 뒤에서 조금 더 이야기 해볼 것이지만 감정과 충동에 사로잡혔을 때는 움직임을 동반해야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김주환 교수가 말하기를 “감정은 본질적으로 몸에서 시작되며 생각이나 마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생각을 죽이고 나를 살려라

토끼나 쥐 같은 동물들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립니다. ‘왼쪽, 오른쪽 어디로 도망가지? 왼쪽으로 가면 뭔가 여우에게 먹힐 것 같다는 계산이 나오는군.’ 그렇게 토끼는 왼쪽이라는 선택지(가설)를 죽이고 자신이 살아남습니다.


우리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립니다. 언어와 함께 돌려서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부정적인 생각, 심지어는 죽고 싶은 마음이 마구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와 가설을 죽이고 내가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일 뿐인 시뮬레이션과 가설을 죽이지 못하고 자신이 죽거나 평생토록 괴로워합니다. 괜히 자신을 불쌍하게 괴롭히는 ‘나’들을 계속해서 찍어냅니다. 자아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문득, 죽고 싶어지는 이유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뇌는 본디 움직임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절대로 거지 같은 이야기에 속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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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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