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라는 밈 복합체

유전자와 밈이 춤을 출 때

by 밈바이러스
나 역시 구별 밈이다. 우주에서 망치로 때리면 고통을 느끼는 어떤 ‘것’을 구별하기 쉽도록 만든 밈.
- 리처드 브로디



우리는 내키는대로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 뇌는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진 것 같은 밈들의 각축장이기 때문이죠. 여분의 사고 용량이 있다면, 생각은 계속해서 싹틉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불안도, 새로운 아이디어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마구 떠오릅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생각을 내뱉지 않고서야 못배길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합니다. 밈들이 재촉합니다. 나를 세상에 표현해줘. 에취. 기어코 말을 참지 못해버렸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서 외부에 표현하면 어느 정도의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생물학적 복제를 위한 번식 행위뿐만이 아니라 음악, 미술, 글을 통한 문화 요소 전파에도 그에 엇비슷한 보상감이 제공됩니다. 굶어가면서까지 그림을 그린 가난한 예술가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앞서 살폈듯, 훌륭한 밈의 전파자는 지위의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우리는 외부에서 밈을 포집하고, 뇌 안에 있는 다른 밈과 재조합 과정을 거쳐 다시 다른 뇌에게 전하려 애씁니다. 그것이 생각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어떤 형태든 상관 없습니다. 한편, 우리의 눈을 만드는 유전자는 혼자서는 살아가지도, 복제의 기회를 잡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눈은 팔과 다리를 만드는 유전자와 함께 다니며, 그럴때 비로소 더 자주 복제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밈도 혼자서는 복제할 기회를 얻기 힘들어서 홀로는 강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다른 밈과 함께하면서 복제될 기회를 노립니다. 가령 음표와 단어 몇 개는 함께 묶여 노래의 한 구절을 이루고, 구절 단위로 복제됩니다.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여러 밈이 함께 뭉친 것을 밈 복합체, 또는 밈 플렉스라고 합니다.


밈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인간은 단순히 DNA라는 생물학적 복제자만을 실어 나르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DNA와 밈이라는 두 가지 복제자를 동시에 실어 나르는 상호작용자(interactor)입니다. 우리의 몸과 기본적인 본능은 DNA를 통해 제공받지만, 우리의 생각, 신념, 가치관,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밈에 의해 형성됩니다. ‘나’라는 존재는 유전자와 밈이라는 두 복제자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물입니다.



잠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유전자(DNA)는 뇌라는 웨트웨어를 포함한 생물학적 몸, 그리고 생존과 번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을 제공합니다. 밈은 우리의 뇌에 침투한 두 번째 복제자로서 우리의 생각, 가치관, 문화적 행동 양식을 형성합니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것을 옳다고 믿는지는 밈과 관련됩니다.


수잔 블랙모어에 따르면 앞서 우리가 이야기했던 ‘나’라는 이야기, ‘자아’도 여러 밈의 복합체로 이루어진 산물입니다. ‘자아’라는 개념은 유전자가 제공한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 우리가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함께 오고 간 밈이라는 문화 복제자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낸 복잡하고 다층적인 결과물입니다. 내가 내가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것들이 이어져왔고, 복제되었고, 변이되어 지금의 나를 ‘표현’합니다. (뇌에서 가장 늦게까지 성숙하는 영역이 전두피질입니다. 문화나 기타 요소에 의해 특히나 후천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영역인 겁니다.)




‘나’라는 밈플렉스

다른 사람이 제 물건을 훔쳐 가면 저는 속상할 것입니다. 뇌는 나의 소유물을 ‘나’의 연장이자 확장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믿음이 공격받을 때 아픕니다. 우리는 그 생각과 믿음이 ‘내 것’임을 넘어 ‘나 그 자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밈이 파고 들기 좋아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자아’라는 밈플렉스의 영역입니다. 우리 사용자가 생각과 신념(밈 덩어리)에 대한 공격을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철통같이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수전 블랙모어는 우리의 뇌와 사회가 (또, 최근의 인터넷 역시) ‘나’라는 밈 복합체의 융성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합니다. 또, 밈플렉스 안의 밈들은 홀로 있을 때보다 집단의 일부로 있을 때 더 잘 생존하기 때문에 자기 조직적이며 자기 보호적인 구조를 형성하면서 자기 집단과 양립하는 밈은 기꺼이 환영하여 보호해 주고, 양립할 수 없는 밈은 배척한다고 합니다. 이 밈플렉스적인 자아가 범주적으로 나인 것과 너인 것,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밈이 자아의 보호 안에 들기 위해 경쟁합니다. 일단 자아와 결부되기만 하면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자아’는 특정 밈들의 복제를 돕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자기 조직적으로 뭉친 특정 밈 뭉치가 ‘나’라는 느낌과 함께 연결되어 번성합니다. ‘나’라는 밈 복합체에 포함된 밈은 선하거나 아름답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성공한 것은 더더욱 아니죠. 어떤 밈들이 뇌를 설득해서 자신의 확산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했습니다.




자아 밈 플렉스의 번성

앞서 살펴보았던 지향계와 상호-이유 대기 게임은 자아라는 밈플렉스를 강화하는 데 사용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의 행동에 ‘이유’를 부여하고 ‘설명’을 요구하며, 이 과정에서 ‘나’라는 자아가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행위자라는 서사를 구축하게 됩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타인에게 자신을 설명하며,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는 ‘언론 홍보부’와 함께 ‘자아’를 자주 활성화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라는 밈플렉스는 더욱 견고해지고, 더 많은 밈을 자신의 보호 아래 편입시키며 번성합니다.



+ 밈을 실은 기계 관점에서의 우울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소통하면서 밈을 퍼뜨리고 받아들이고, 재조합합니다. 내가 가진 밈과 새로 들어온 밈에 차이가 있으면 그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새로운 밈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헤겔의 정반합이라고도 할까요) 밈의 왕성한 교환과 재생산이 인간의 창조력과 문화의 근간입니다. 그런데 이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단을 찾지 못하거나, 사회와 고립 / 단절되어 자신의 생각을 들어줄 다른 밈 기계(또는 밈 상호작용자)가 없을 때 우울이 발생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AI 챗봇 같은 비인간 밈 상호작용자가 이 외로움과 우울에 도움이 될까요?)


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 문화와 자신의 감성, 자신이 생성하고 퍼뜨리고 싶은 밈의 결이 강하게 어긋남을 느꼈을 때도 우울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지닌 밈(생각)이 사회에 통용되거나 퍼져나가기 힘들 밈이라서, 그러니까 다른 뇌로 퍼져나가기 적합하지 않은 밈이라서. (그런데 그 밈이 ‘나’라는 밈 플렉스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밈인데!) 그 탓에 슬프다는 생각이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밈은 분명, 몸의 생리학과 내분비, 그리고 정신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상상 그 이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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