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력한 예린이 Oct 27. 2024

가방끈이 길어진 이유

    어른들의 사랑을 찾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한 여성 출연자의 자기소개가 논쟁거리에 올랐다. 00대를 졸업했다고 얘기하면서 일찍이 소개를 마친 남성 출연자를 바라보며 “저랑 동문이시더라고요!”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00대학교 <캠퍼스>를 다녔고, 남성은 00대 <본캠> 의대를 졸업했다. 학교 입결 순위로 봐서는 전혀 다른 학교인데 동문이라고 표현한 것이 여러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악에 받친 댓글을 단 사람들이 모두 00대 출신은 아닐텐데 왜들 저렇게 화가 났을까 싶었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감정을 그대로 쏟아낼 만큼 맹목적인 악의를 품은 사람들이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논란이 심화되자 남성 출연자가 직접 자신의 SNS 계정에 해명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자기소개 이후에 그녀가 직접 캠퍼스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먼저 말해주었고 본인은 그 사실을 듣고 친해질 수 있는 귀한 공통 주제가 있어서 좋았다고 언급했다. 당사자의 반응에도 논란은 계속되었다. 00대학교는 캠퍼스가 아니라 분교인데 어떻게 같다고 하느냐며 그녀가 살아온 삶의 태도까지 비난하는듯한 댓글이 생겼다. 이번엔 씁쓸했다. 내가 다닌 학교도 <캠퍼스>가 아니라 <분교>였기 때문이다.


    일단 캠퍼스는 본교의 특정 학과를 타지역에 옮긴 형태다. 같은 대학 소속이기 때문에 학생 정원 중 일부와 교육인프라를 나눈 채 지역만 분리된 교육기관을 의미한다. 분교는 본교와는 아예 다른 별개의 대학이다. 그래서 같은 학과가 본교에도 있고 분교에도 있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가 그러했다. 우연한 계기로 이 사실을 알게 된 몇몇 사람들은“그 대학교 00학과 가고 싶었으면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곳 가면 되는데 공부를 진짜 안 했나봐”라며 가벼운 농담조로 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무례하다고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학벌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안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못된 습관을 가진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 한 사람과 ‘안’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차이가 크다. 전자는 열심히 했는데 어떤 이유로 잘 안 된 케이스를 의미하고, 후자는 노력조차 안 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공부를 안 했다는 이미지가 생긴다는 것이 억울했다. 당장 분교에서 벗어나 무조건 상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생활한 뒤,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캠퍼스 이동제도>에 지원을 했다. 서울 소재 명문대로 갈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내가 택한 선택지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학과에서 마련한 술자리는 모두 마다했고, 동기들과의 개인적인 만남도 최대한 자제했다. 조별과제를 마치고서 조원들과 뒤풀이를 할 수도 있었지만, 친구가 생겨버리면 목표가 멀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점점 더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맨날 뭐 하느라 바쁜 언니’쯤으로 불리게 됐다.


    그해 11월, 캠퍼스 이동제도 1차 서류전형에 수월하게 합격했다. 2차 심층면접 날까지 열심히 준비했고, 당일이 됐다. 긴장된다는 이유로 다 큰 성인이 엄마와 함께 시험장에 갔고, 시험직전까지 엄마를 붙들고 면접준비를 했다. 추워지면 코끝이 빨개지는 우리 모녀는 라디에이터가 켜진 화장실에서 질문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나는 나대로 준비한 부분에서 빈틈이 보일까봐 걱정하며 엄마의 표정을 살폈고, 엄마는 엄마대로 딸이 준비가 잘 된건지 걱정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엄마, 그런데 혹시 기분 안 좋아?”
 “아니? 안 좋을게 뭐가 있어. 얼른 다시 해보자.”
 “엄마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못하겠어.”
 “엄마 표정 살피지 말라니까. 얼른 해보자.”


“강력한 예린이님. 들어오세요.”



    긴장되는 마음에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땡깡을 부리려던 때에 조교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모녀의 불필요한 언쟁을 막아 주셔서 감사하기도 했지만, 정말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우리는 찝찝한 마음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잘 하고 와’, ‘잘 하고 올게’라는 말은 서로 건네지 못한 채 면접장에 들어섰다. 그래도 면접에는 최선을 다 했다. 잘 한 것 같았다. 빨리 합격소식을 들려드리고 싶었다. ‘대학에 잘 못 가서 많이 미안했는데, 시험날 마저도 징징대서 죄송했다고, 엄마 많이 사랑한다’고 얘기하면서 함께 축하하고 싶었다.


    다음해 1월 학교 홈페이지에 합불결과가 나왔다. 당시 계절학기를 수강 중이었고, 하필 결과발표 시간과 수업이 겹쳤다. 게다가, 그 수업은 캠퍼스 이동제도 지원서에 직접 사인해주신 학과장 교수님 과목이었다. 본인이 이끌어 온 학과를 떠나겠다는 학생에게 어디서든 잘 할거라며 무한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던 교수님이셨다. 눈치가 보여서라도, 감사한 마음에라도 열심히 들어야 했지만 그날은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펼쳐질 금빛 미래에 설레며 합격화면을 보기 위해 새로고침 버튼을 계속 눌렀다. 사전 공지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발표가 됐고, 그만큼 오래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대학과 관련한 실패를 또 경험할거라는 시나리오는 아예 없었기 때문에 망연자실 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감정에 압도되어 계속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항상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수강하던 내가 딴짓만 하고 있으니 교수님께서는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 방으로 부르셨다. 오늘 캠퍼스 이동 지원결과가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잘 안 된거냐고 물으셨다. 울음을 꾹 참고 그렇다고 말씀드렸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도 말씀드렸다. 괜찮다며 Plan B가 있는지 물으셨다.


Plan B?


    그런 건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똑부러지는 모습만 보여드리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에 마치 생각해 뒀던 계획이 있는 척하며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다. 일단 조기졸업을 해야 겠다고 말씀드렸다. 23살에 입학해서 인생에 조급함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감히 교수님 앞에서 나이를 운운하며 떠들었고,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다. Plan B 내용 중 대학원에 대한 계획만큼은 즉흥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가족 중 가방끈이 긴 어른들이 많았고, 적어도 석사과정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공부는 좋은 것이고, 오래 할수록 더 좋은 것이라고 맹신해왔기 때문이었다.


   더는 인생계획에서 실패를 맞이해서는 안 됐다. 또 실패하면 그때는 회복되기가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졸업까지 교생실습과 졸업시험 등 산 너머 산의 과정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해치웠다. 그리고 졸업 전에 대학원 합격증을 따내기 위해 총력을 다해 공부했다. 그렇게 남들보다는 한 학기 빠르게, 3.5년을 다니고 졸업에 성공했고, 총 3개의 대학원에서 최종합격을 받았다. 그 중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했고, 드디어 내 인생에도 인생 2막이 펼쳐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