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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judan Sep 25. 2024

1. 그때는 우리 선조들도 몰랐을 것이다.

1. 그때는 우리 선조들도 몰랐을 것이다.


     

계급을 나누는 것,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한때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개개인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있었다. 다 가치 왕이 되어 세상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시대 말이다.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꿈같은 소리. 하지만 지금은 현대 사회이다. 우리 조상들은 개미를 보고 조직 시스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배웠고,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로운지를 깨달았다. 지금은 지구가 멸망하기 전이니 말이다. 다 가치가 죽는 것보다 사회악 몇 놈만 제거하면 된다. 그 악이 바로 우리 집안이다. 태어나면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하는.. 그때는 우리 선조들도 몰랐을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용서할 수 있었다. 우리 집안은 소규모 염색공장으로 시작해서 패션 사업을 하며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했고, 사업이 더 커져서는 할아버지의 욕심으로 일회용으로 입고 버릴 수 있는 의상들을 제작하며 기업을 유지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환경이 악화되고 기후가 변하던 시대, 사람들은 대책 마련을 강구하였고 결론은 모두가 다 욕심을 채워 잘살다 보면 결국 인류는 멸망한다는 것이었다. 모두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서 인류는 강력한 리더를 원했다. 그 덕에 인류는 살아남았지만 우리 집안은 파국을 맞이했다. 지구를 오염시킨 기업은 대대손손 그에 합당한 보상을 요구받았고 통합국의 최하층민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최하층민이었고 내 자손들도 그럴 것이다. 찰나의 쾌락을 잠시 맛본 지구를 오염시킨 자들의 대가는 그 이상이었다고 하기도 안 어울릴 정도로 참혹했다. 그들은 식량 보충을 위해 지어진 스마트 온실 팜에서 끊임없는 노동과 기계처럼 취급받는 심리적 고통까지 함께 느끼며 살아야 했다. 나는  그때 지구가 멸망해 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가끔 집이라고 하기도 그런 건물에 들어가 좁은 공간에 겨우 누워 쉴라치면 할머니는 본인 전 세대까지 얼마나 큰 집에서 호화롭게 살았는지 자랑을 하셨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집이다. 쉴 곳을 마련하려면 독립이 필요한데 이것도 경제적으로 쉽지 않다. 경제적인 것도 경제적인 것이지만 똑같은 일상 속에서 안 그래도 아무도 날 알아봐 주지 않는데 이런 지긋지긋한 할머니의 허황되고 씁쓸한 옛 자랑 시간도 없다면  정말이지 고독하고 외로워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아무튼 집이라고 하기도 그런 곳을  세 칸 나눠 놓은 내 방으로 들어가면 방사능에 피폭된 상태로 태어나 희귀하고 귀여운 연분홍색 애완 지렁들이 날 반겨줄 때 나는 하루 중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 “잘 지내고 있었어? 빵이야~루카야~오구구구”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지렁이들이 몸을 움직인다. 행복한 시간도 잠깐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다.

“오전 6시 일어날 시간입니다. 오전 6시 일어날 시간입니다”

몸은 천근만근 물먹은 솜뭉치 마냥 무거운 몸을 끌고 팜으로 다시 노예생활을 하로 간다.

누런빛인지 연둣빛인지 모르는 잎들이 무성하다.

'열매가 맺히긴 할까?' 손톱에는 검은 때가 잔뜩 끼고  갈라지고 괜찮아지고 수천번은 반복한 손끝이 아리기 시작한다.

오후 2시쯤 볕이 뜨거워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언니..............”

 나에게 전화할 일이 없는 사촌여동생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불안하다.

“무슨 일이야? 주영아 혹시 할머니 돌아가셨어?”

“언니.. 아빠가...”

말을 잊지 못하는 동생... 그때 막내삼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단아 셋째 삼촌 돌아가셨다,,,,”

“왜?”

아직 젊은 삼촌이 왜... 왜라는 소리 밖에 나오지 않는다.

슬픈 것이 이상했다. 보통 전문가들은 가족에게 사랑과 애착을 배운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런 형편이 되지 못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하루종일 농사일에 힘들었던 가족들은 서로를 향해 비난하기 일쑤였다. 육체적으로 서로가 힘들었다는 핑계를 하기엔 안 그런 가족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저소득층 가정은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할머니나 아빠는 남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 공감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시스템에 빼앗겼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집안에 셋째 아들로 태어난 셋째 삼촌은 형제 중에 부모님한테 관심받기는 힘든 위치였다. 그래서인지 돈을 많이 벌어 할머니에게 인정받고 기쁘게 해주고 싶으셨나 보다. 삼촌은 자신이 진정하고 싶은 일은 뭘까를 망각한 채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었다. 우주오염물을 치우는 우주선을 타는 일, 배달 일, 야구심판, 야구코치, 점 보기, 사기... 다소 특이한 이력이지만 생각해 보면 목적은 돈이라는 이유가 분명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배회하던 중 아이들의 야구코치를 맡게 되었다며 기뻐하던 삼촌은 나에게 돈을 좀 빌려줄 수 있냐고 전화가 왔고 난 짜증이 나서 거절했었다. 삼촌은 큰 사람이 되고 싶었고 할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고 초라했는지 밤이면 술을 한잔씩 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검정옷과 검정구두를 찾아 나갈 채비를 했다. 장례식장에는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곡소리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셋째 삼촌의 사진이 보였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던 도중 할머니가 나에게 한 말이 더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내 말을 안 듣고 관리 안 하고 굶더니..”

셋째 삼촌은 사형제 중에 가장 할머니 말씀을 잘 들은 아들이었다. 착한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도 희생량이 된다. 그게 인간이다. 어떻게 아들이 죽은 마당에도 본인 말을 안 들었다고 면박이라니 삼촌은 이 피곤하고 집착적인 가족이라는 굴레보다 하늘나라가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순간 들었다.

 “할머니는 삼촌이 죽은 마당에 그게 할 말이야??”

쏘아붙이고는 절을 했다. 끝까지 이런 식이다.  무당일을 던 삼촌은 본인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삼촌은 본인이 대단해 보이지 않는 농사일 따위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저 부모에게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감정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 배회하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좋았는지 아이들 야구를 가르치는 일에 목숨을 받혔다. 매일 술을 마셔가며 아이들을 야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야구선수라면 은퇴했어도 벌써 했을 나이에 아이들과 동등한 훈련을 본인도 함께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였던 어제도 분명 무리하게 훈련하고 사람들과 뒤늦게까지 술을 마셨을 것이고  뇌혈관이 수축되었는지 모른 체 집에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 쓰러졌을 것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각성하지 박 주단’

사실 나는 요즘 농사일을 하며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펜싱을 배우고 있었는데 강사에게 이용만 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말도 안 되는 대우를 요구했고, 내 시간을 마치 본인의 시간인양 선을 넘는 여자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래..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여기저기 끌려다닐 필요 없어.. 내 수확량에 지장을 주고 나에게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잖아... 이제 더 이상 그런 정신 나간 여자들한테 이용당하지 않아. 더군다나 이제는 그녀를 포함해 그녀를 추앙하는 플라잉 몽키들은 아니 나도 그녀의 플라잉 몽키 중 한 마리였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 여자들은 이른 아침마다 신을 믿어야 하고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며 단체 전화를 걸어왔다. 나 또한 신을 믿는다. 단지 신을 이용해 선민의식과 함께 자신을 뭔가 대단한 사람처럼 포장하는 인간들이 싫을 뿐이다. 처음에 미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삼촌처럼 누군가의 관심이 그리웠는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따르고 있었다. 핸드폰에서 수신차단을 눌렀다.

 “수신이 차단되었습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삼촌은 돌아가시며 큰 깨달음을 줬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누군가 나를 괴롭힌다면 피하던지 응징해야 한다. 그녀의 눈 동공은 흐릿했고 소시오패스처럼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혐오와 학대를 받은 자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나도 갖고 있는 것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뜯긴 돈을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제자리를 찾을 시간이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난 농장으로 돌아갔다. 노예에겐 배려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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