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키우는 아이들

by 린다

분주한 아침, 부랴부랴 바 정리를 마치고 출입구의 오픈 팻말을 돌려놓기 무섭게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가 출입문을 빼꼼 열었다.

“카페 문 열었나요?”

열었다고 답하니 손님은 마치 이불 같은 옷에 꽁꽁 감싸진 아기를 소중히 안고 살며시 들어왔다. 곧이어 온갖 아기용품이 들어있을 커다란 가방을 둘러맨 젊은 아기아빠도 따라서 들어왔다. 시원하고 달콤한 커피 두 잔을 주문한 부부의 테이블은 내가 커피를 가져다주기도 전에 이미 아기 우유병과 물티슈, 쪽쪽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아기용품들 사이로 유리잔에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가 놓이자 그 모습이 너무 아슬아슬하고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잠시뒤 중년과 노년의 사이쯤으로 보이는 또 다른 부부가 들어와 커피를 주문했다. 얼음이 가득한 시원한 커피를 마시는 젊은 부부와 달리 노부부의 커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다. 노부인은 젊은 부부의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귀여워하며 쳐다보다가 자연스럽게 물었다.


“아기가 몇 개월이에요?”

“8개월이에요.”

“저는 아직 100일도 안된 손주가 있어요.”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더니 마치 원래부터 함께 온 일행인 것처럼 이야기꽃이 피었다. 난생처음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되었고, 첫 손주를 품에 안은 노부부는 며느리가 아닌 다른 젊은 아기엄마를 통해 좀 더 좋은 시부모가 되고자 하고, 처음 해보는 육아와 더불어 시부모의 큰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했던 젊은 아기엄마는 카페에서 만난 노부부와의 대화를 통해 시부모의 마음을 가늠해보고 있었다. 그밖에 아기를 키우는 집에서 생기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면서 좁은 매장이 따뜻한 말소리로 가득 찼다. 아빠의 무릎을 밟고, 아빠의 손을 잡아가며 이제 막 다리에 힘을 쥐어보는 아기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이야기하는 어른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 아기는 알고 있을까? 이 건설적인(?) 대화는 모두 자그마한 자신이 가져왔음을.


복잡한 번화가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한 우리 카페엔 아침이면 아기를 유아차에 태우고 산책을 하는 젊은 엄마들이 종종 찾아온다. 매장이 협소한 편이라 유아차를 끌고 들어오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만, 언뜻 봐도 값비싸 보이는 유아차를 바깥에 두고 들어오시라고 할 수도 없고, 매장에 아기의자도 없으니 아기를 태운 채 그냥 들어오시라고 안내하는 편이다. 어차피 아침 시간엔 손님도 많지 않고, 화장기 없고 왠지 파리해 보이는 낯빛으로 ‘유모차가 들어가도 될까요?’라고 잔뜩 미안해하며 묻는 얼굴을 차마 외면할 수 없달까. 어렵게 유아차를 끌고 들어와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아기가 울기 시작하거나 다른 손님이 들어오면 쫓기듯 카페를 나서는 엄마들을 보면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7~8년 전만 하더라도 도심의 카페들 중엔 노키즈존이 꽤 있었다. 울고, 뛰고, 손에 잡히는 건 냅다 던져버리는 시끄러운 아이들 없이 고상하고 지적인 어른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책도 읽는 그런 쾌적한 공간을 상징하는 듯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노키즈존 카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일부러 그런 카페를 찾아다니진 않았지만, 우연히 들어간 카페가 노키즈존이었던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럴 때면 어쩐지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처음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던 매장은 노키즈존은 아니었다. 그래서 평일 낮이나 주말이 되면 일명 ‘유모차 부대’라고 지칭되곤 했던 엄마들이 하나씩 유아차를 끌고 들어와 가장 큰 테이블을 차지했고, 매장 곳곳에서는 아기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테이블 사이사이의 간격도 촘촘한 편이었는데 그 사이에 아기의자와 유아차까지 놓여있어서 손님들은 물론 서빙하는 직원들도 다니기 어려웠다. 걸을 줄 모르는 아기들은 울고, 걸을 줄 아는 아기들은 뛰고, 그 사이를 뜨거운 커피나 유리잔이 올려진 트레이를 들고 서빙을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빈 테이블을 치우러 가면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아기의 응가를 감싼 기저귀가 덩그러니 놓여있기도 했고, 어마어마한 물티슈가 눈꽃빙수처럼 쌓여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종종 ‘우리 가게는 왜 노키즈존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뛰던 아이가 넘어져서 어디 이마라도 찧거나 유리컵이라도 깨뜨릴까 봐 마음을 졸였다. 그리고 가끔은 그렇게 울고 뛰는 아이를 왜 부모가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그냥 두는지, 왜 나 몰라라 내버려 둔 채로 커피를 마시며 같이 온 사람과 수다만 떠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기를 낳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기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온전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주변에 아기를 낳은 친구들을 보거나 카페에 오는 젊은 부모손님들의 모습을 통해 짐작해 볼 뿐이다. 더구나 주변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친구들도 없었던 예전에는 지레짐작조차 못해봤으니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가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이런 일반 카페에 오는 부모들이 조금은 이기적인 것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살짝 다른 마음이다. 내가 나이를 든 탓도 있을 테고, 육아 중인 지인들을 통해 그들의 삶과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 것도 이유겠지만, 좀 더 협소하고 덜 바쁜 매장으로 근무지가 옮겨진 이후 젊은 엄마아빠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 영향도 있다. ‘여기 커피가 너무 먹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자주 못 오는 게 너무 아쉬워요.’라고 말하며 울상을 짓는 손님과 주문할 땐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시고 가겠다고 했지만, 얌전히 앉아있기로 약속한 아이가 뛰기 시작하면 ‘죄송한데 그냥 테이크아웃잔으로 해주세요.’ 하며 얼굴이 붉어지는 손님들을 많이 만났다.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잔을 마실 여유조차 없다며 아쉬워하는 파리한 낯빛에도 급하게 커피 한 모금이 들어가면 잠깐이나마 눈에 빛이 돌기 시작하는 젊은 부모손님들을 보며 그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보게 된 것이다. 아이가 있기 전에는 쉽게 들락거리던 곳이 아이가 생김으로써 더 이상 쉽지 않은 곳이 되는 것은 비단 카페뿐만이 아니겠지. 카페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더 이상 그것을 온전히 할 수 없다고 상상해 보면.. 상상만으로도 벌써 서러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확실히 아이들은 많이 소란스럽다. 아이들은 조심성 있게 걷는 모습보다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 뛰어다니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뛰고 있을 때면 반드시 까르르 큰 소리로 웃는다. 그러니 당연히 주변에 아이들이 있다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은 물론 단순한 일을 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고 신경 쓰이는 것은 점점 주변에 아이들이 줄어들어서 그런 상황이 익숙지 않은 까닭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전부터 꾸준히 주변에 아이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봐왔다면 그리 신경 쓰이지 않고 익숙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젠가부터 매장에 오는 아이들과 웃으며 아이컨텍을 시도한다(생각해 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무서울 수도 있겠다). 수줍은 아이들은 눈을 슬그머니 피하면서 몸을 베베꼬지만, 활발한 아이들은 배시시 같이 웃어준다. 스티커를 하나 주며 ‘안녕~’하고 손바닥을 흔들어 보이면 대부분은 엄마들이 ‘안녕하세요~ 해야지’하고 대신 대답하시고 아이들은 스티커만 내손에서 슬쩍 채가지만, 그렇게 아이컨텍에 성공하고 나면 미워 보이는 아이는 거의 없다. 거울에 비친 내 눈에서는 보이지 않는 순수함을 아이들의 눈에서 마주하고 나면, 더러웠던 마음이 조금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까? (아이컨텍을 좀 더 빈번하게 시도해야 할 것 같다. 내 마음이 너무 더러워..)

그렇게 하다 보니 어디에서 뛰는 아이들을 봐도, 목이 아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말을 하는 아이들을 봐도, 개다리춤을 추고 신나게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을 봐도 크게 신경 쓰이거나 거슬리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넘어지거나 다치진 않을는지 한동안 지켜보게 된다. 그렇게 이전에 비해 한결 너그러워진 내 마음을 확인하고 나면 지난날보다 조금은 더 좋은 어른이 된 것 같은 우쭐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자그마한 한 명의 아기가 카페 안에 있는 어른 다섯의 마음을 한순간에 말캉하게 만들고, 서로 따뜻한 대화를 하게 만든 것처럼 작은 아이들에겐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힘이 있다. 아이들을 통해 얻는 웃음과 기쁨은 어른들끼리 만들어낸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아기들을 한 명의 어엿한 어른으로 길러내는 것은 또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거의 매주 결혼식장에 가서 스냅촬영을 하는 내 눈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피부로 잘 느껴지지 않고, 매장에서 총총 걷고 뛰는 아기들을 자주 보는 터라 출산율이 낮다는 뉴스 역시 크게 느껴지진 않지만, 그럼에도 학생이 없어 서울시내의 고등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와 한 학급의 학생 수가 스무 명 남짓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확실히 아기가 귀한 시대임을 체감한다. 미혼인 데다가 미출산 여성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젊은 부부들이 마음 놓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세상도 되었으면 좋겠다. 훗날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날이 올진 모르겠다. 꼭 내가 부모가 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아이를 길러내는데 필요한 마을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은 해내는 어른이고 싶다. 그리고 가끔은 어른들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좋은 어른이 되고 싶도록 만드는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오늘도 유아차 한 대가 조심스럽게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유아차의 차양이 내려져있어 잠들어있는 아기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커피를 들고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자 고소한 우유비린내의 아기냄새가 느껴졌다. 주책맞은 바리스타 이모는 아기냄새에서 벌써 심쿵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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